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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경영 참여' 폭스바겐 vs. '무노조' S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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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경영 참여' 폭스바겐 vs. '무노조' S그룹

[이봉현의 신뢰경제] 독일 배우기 열풍이 우리를 초라하게 하는 이유

최근 우리 사회에 독일을 배우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에서 온 연사의 강연에는 청중이 몰린다. 대학에는 독일과 유럽모델을 다루는 연구소와 야간 특수 과정이 등장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올 초 독일에 가서 8개월간 유학을 하고 돌아왔고, 몇몇 국회의원들은 독일 연구모임을 만들어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방송사에서도 잇따라 독일 특집을 편성하고 있다.

독일과 우리는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은 두 나라의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1300개에 이르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중소기업이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나 이에 조응하는 노사관계, 교육제도 및 직업훈련 체제, 금융시스템, 산업정책 등은 우리가 하루아침에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독일에 자꾸 눈길을 주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무엇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부의 양극화 확대, 성장 동력의 고갈, 분열의 심화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붕괴를 걱정할 단계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기에 우리가 독일에서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은 그 사회가 대내외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타개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가게 한 원동력이고, 이를 사회적 합의의 정신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독일 산업생태계 전문가인 빈프리트 베버 만하임응용과학대 교수는 독일 사회의 힘이 '3C'에서 나온다며 '정성'(commitment), '실용의 문화'(Culture)와 함께 '합의의 정신'(consensus)를 들었다.

▲ 구직 공고를 살펴보는 독일인들. ⓒpicture-alliance/dpa

통독 후유증으로 재정적자가 늘고 임금 비용이 높아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은 10여 년 만에 '유럽의 강자'로 변신했다. 반전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에서 시작한다. 이는 국가가 부담하는 실업수당 등 복지를 줄이고, 노동을 유연화해 중소기업이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 근로자를 늘릴 수 있게 하는 정책패키지였다. 이를 통해 재정 건전화와 노동비용 하락을 주도한 슈뢰더는 기민당이 아니라, 사민당 출신의 총리였다. 이에 따라 독일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2003년 이후 2012년까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다른 유럽국가의 경우 단위임금비용이 10% 정도 올랐으나 독일은 1% 정도 인상되는데 그쳤고, 이는 유로 통화통합이 주는 환율 이익과 결합해 독일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독일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포기해야 독일 경제가 살아난다는데 동의를 했고 이를 감내한 것이다.

노사정이 당면한 위기에 맞서 힘을 합하는 정신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다시 한 번 더 발휘됐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란 금융위기에 대응해 독일 기업들은 단축근무제를 확대했다. 원래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이 2~3개월 정도 한시적으로 채택하던 것이었는데, 이를 6개월 이상으로 확대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면, 줄어든 임금 중 절반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채워줬다. 결국 반만 일하고, 4분의 3의 임금을 받는 것이어서 노동자도 최악은 아니었다. 임금을 보전하는 재원은 모든 노동자들이 실업보험에 냈던 돈으로 충당했다. 그 뒤 독일 경기가 호전될 기미를 보임에 따라 기업들은 다시 원래대로 인력을 완전 가동하게 된다. 경제위기 때 숙련노동자를 대거 해고한 다른 나라와 달리 독일은 이 제도 덕분에 경기가 호전되자마자 앞선 경쟁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 노출되면서 성장과 복지를 조화시키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매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독일은 지난 10년간의 개혁을 통해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고, 국가경쟁력을 살리며, 사회연대와 복지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적어도 단기간에 임금동결이나 삭감 등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 계급 등 국민의 전반적인 동의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는 독일 국민이 선천적으로 합의의 정신을 타고났다기보다, 그럴 만한 조건들을 그 사회가 만들어 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한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 대사는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강연에서 "독일인들이 경제가 민주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을 주요한 배경으로 지적했다. 즉, 자신이 기업에서건 사회에서건 의사결정의 주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요구에 책임의식을 갖고 대응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독일은 직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에 대해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법으로 보장되고, 노동자-사용자가 반반씩 참여하는 감독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돼 있다. 임금협상의 자율권이 노-사에 주어져 있는데 노조도 기업도 모두 산별로 조직이 이뤄져 연대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제도들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당이 도입한 것도 인상적이다. 노동자 경영 참여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장해서 성공한 경우가 바로 세계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조정하는 정치의 역할도 막중한데 국민들이 정치가 특정한 세력을 편들지 않고 공평무사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도 독일은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가 녹색당의 정책을 받아들여 원전 완전패쇄를 약속하는 등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좌우의 정치적 의제를 폭넓게 수용해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는 창업자 할아버지의 유지를 21세기에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정규직 노조를 고임금으로 지속적으로 '매수'하면서 저임금의 비정규직, 사내하청 등을 광범위하게 유지하는 재계의 '두 개 국민 전략'. 진영의 적대감을 한껏 증폭해 그나마 조금 있는 사회적 신뢰마저 까먹고 있는 정치권. 책임의식은 졸아붙고 이기심만 통통히 살이 오른 노동계…. 독일이란 거울에 비춰보니 우리가 갈 길이 자꾸 멀어만 보인다.

* 신뢰경제는 한겨레경제연구소 누리집(http://heri.kr/) 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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