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녹색당은 과거 사민당과의 적녹연정(1998~2005)이라는 연립정부에서 집권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중단과 폐기를 직접 추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토양이 머뭇거리던 기민당과 자민당의 연립정부를 추동해 원전폐기를 결정하도록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녹색당이라고 부르지만, 이 당의 정식 명칭은 '연합 90/녹색당'이다. 이 정당은 1980년에 서독에서 환경운동, 신사회운동, 신좌파 등의 이념으로 만들어진 '녹색당'과 독일통일 후 1991년 동독지역에서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시민운동 지금', '신포럼' 등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동맹 90'이 1993년에 서로 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한국의 녹색당도 이러한 사실을 참고했으면 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구조나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당에 대한 주제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이러한 통합 이후 녹색당의 주요 모토는 환경정책이며, 특히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성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녹색당은 2040년까지 독일의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주요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전력생산의 경우(2012년 기준 23%)에는 이미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부터 100% 충당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녹색당이 처음부터 원전폐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핵폐기물 등의 문제가 환경보호의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1986년 소련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전폐기에 대한 주장은 보다 더 급진적으로 바뀌었고, 현실정치에서도 타협을 거부했다. 실제로 핵폐기물을 운반하던 열차를 저지하기 위해 이들이 철로에 누워 시위하던 장면들을 텔레비전에서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적녹연정에 참여했던 현실정치에서는 녹색당의 정치인들이 원래의 주장과는 다른 정치적 타협을 많이 함으로써 많은 녹색당원들의 실망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1999년 코소보 전쟁에 대한 나토의 참전에 동의했던 녹색당 출신의 피셔 연방외교부 장관은 한 전당대회에서 당원으로부터 빨간색 물감이 들은 풍선을 맞아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녹색당의 성공의 조건
어떤 국가에서 녹색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일정 정도 확보되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 같다. 일단 먹고 살아야 주변 환경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요소는 보다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또는 규정이나 규칙을 잘 지키는 국민성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불편함을 가져올 수도 있는 여러 가지 환경보호 정책들의 시행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동참을 이끌어내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남유럽보다 북유럽의 국가들에서 녹색당의 활동이 더욱 적극적이고 활발하다는 사실이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대체로 북유럽 국가들이 남유럽 국가들에 비해 1인당 소득이 더 높으며, 국민들의 성향 면에서도 좀 더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독일의 제도를 하나 소개한다.
2003년부터 독일에서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음료수 등을 마신 후 버려지는 폐기물을 회수하는 '빈병 환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적녹연정 시절 녹색당의 트리틴 연방환경부 장관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이미 사용한 페트병, 유리병, 음료수캔 등을 온전히 수거하기 위한 방안이다. 즉 슈퍼 등에서 음료나 주류를 팔 때 그 상품의 가격에 더하여 미리 빈병의 보증금을 함께 받고, 나중에 그 빈병을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상품에는 반드시 환불마크가 붙어있다.
▲ 음료수병에 붙어있는 환불마크. ⓒ조성복 |
그러면 도대체 그 보증금이 얼마인지 궁금할 것이다. 유리병(대개 맥주병)은 8센트(0,08유로, 약 120원)이고, 캔이나 페트병 종류는 25센트(0,25유로, 약 375원)이다. 아마도 페트병은 썩지 않아 환경에 더 유해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높여 놓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슈퍼에서 물을 한 병 살 경우, 물 값보다 그 페트병의 보증금이 더 비쌀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수입상품들도 필요한 경우 환불마크를 붙여 똑같이 처리되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였으나, 안 하던 일이라 매우 번거롭고 귀찮았다. 심지어 음료 및 유통회사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막아 보고자 연방행정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패소했지만.
실제로 슈퍼에서 빈병을 반납하는 과정은 불편함과 더불어 약간의 시간을 더 요구한다. 하지만 시행착오들을 하나둘씩 개선해 나가면서 나중에는 나름대로 잘 정착이 되었다. 비록 어디서나 매번 마시고 난 빈병들을 잘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대신 숲이나 거리에서 페트병들이 대부분 사라졌고, 이에 따라 그만큼 자연환경도 좋아졌을 것이다.
이 제도의 시행 이후 슈퍼에 갈 때 페트병들을 챙기는 것이 주요 일상이 되었다. 가방에는 늘 빈 페트병이 들어있었다. 슈퍼에서는 노숙자들이 빈병들을 모아와 맥주 등으로 바꾸어 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유리병을 모아 오면 무거워 고생하는데 돈은 별로 안 된다.
반면에 플라스틱 병을 가져올 경우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짭짤하다. 현재 이 제도는 유럽에서는 독일 이외에 일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만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환경보호를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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