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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에 사로잡히지 않는 화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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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에 사로잡히지 않는 화이처럼

[이태경의 고공비행] <화이>를 보고 악을 생각하다

* 영화 <화이>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악(惡)은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매혹과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의 성현과 석학과 예술가들이 악의 본질을 궁구하고 악의 기원을 탐문한 이유 중의 하나도 악이 지닌 불가해성 때문일 것이다. 악의 내재적 속성 가운데 하나가 폭력성 혹은 난폭함이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단연 악이란 무엇이며 왜 생기는가, 어째서 어떤 사람은 악에 굴복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장준환은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지구를 지켜라>(2003)를 만든 이후 10년 만에 <화이>를 들고 대중들 앞에 섰다. 한때 장준환과 쌍벽으로 불리던 봉준호는 이제는 거장이 됐다. 장준환은 봉준호가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를 통해 빠르게 영화판을 평정하는 동안 십 년의 세월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화이>에 등장하는 석태(김윤석 분)는 악의 인격화라 할 만한 사람이다. 석태의 반대편에 영택(이경영 분)이 있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석태는 영택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보육원에서 자라고 친형 같은 영택의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석태는 내면에서 자라난 괴물에게 삼켜진 후 괴물이 되어 잔혹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른다. 어둠이라 할 석태와는 달리 영택은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한 채 빛으로 남는다.

석태가 괴물이 혹은 어둠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석태는 다양한 이유로 버림받은 고아들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 훌륭한 원장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고, 친형 같은 영택이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태는 내면에서 점점 커가는 괴물을 제어하지 못하고 괴물에게 먹히고 만다. 모든 걸 다 갖춘 영택에 대한 석태의 질시(嫉猜)의 감정을 악이 교묘하게 파고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석태는 악을 이기지 못했고 악에 제압당해 악당이 됐다. 석태의 대척점에 있는 영택은 선한 마음과 행실을 끝까지 유지하며 석태가 저지르는 악행들도 용서한다. 영택은 악의 줄기찬 침노를 번번이 격퇴한다.

석태는 악에 굴복해 악인이 되었지만, 영택은 악을 극복하고 선인으로 남았다. 두 사람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 이유에 관한 입장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뉜다. 보수적 가치와 이념은 개인의 생래적 기질과 특성에, 진보적 가치와 이념은 환경과 구조에 각각 방점을 찍을 것이다. 석태와 영택이 꽤 정형적인 인간형이라면 화이는 비정형적 인간형이다. 화이는 비극과 불행으로 점철된 기억에 사로잡히거나 갇히지 않고 이를 지양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화이는 그러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화이를 그렇게 몰고 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분명 악은 생래적인 원인과 구조적인 원인에서 각각 기인할 것이다. 물론 때로 혹은 자주 그 경계는 흐릿하고 모호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도 존재할 것이다. 악을 이기기는 어렵고 악에 지기는 쉽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인간인 한 악에 먹히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경험과 기억에 포획 당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가는 화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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