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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는 박정희 체제의 사생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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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는 박정희 체제의 사생아인가

[편집국에서] <1> 내란 음모 내세워 국정원 개혁 미뤄선 안 된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사건을 터뜨린 국정원이 칼자루를 쥐고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대선 개입 의혹과 부적절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기습 공개로 궁지에 몰렸던 얼마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반대로 생사의 기로에 선 통합진보당은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다른 사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이 사건에 관한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의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일보> 4일 자에 게재된 임지현 한양대 교수의 칼럼 <'국사' 공부 그만 합시다>가 바로 그것이다.

칼럼의 주요 내용은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비판이다. "일본과 한국의 '국사'는 (…) 적대적 공범 관계"이며, "'국사' 패러다임의 자민족 중심주의"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임 교수는 더 나아가 "'국사' 교육 강화가 (…) 제2, 제3의 이석기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주사파의 정신적 자양분은 민족이 역사의 주체이자 지존이라고 가르친 이데올로기로서 '국사'였다는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국사'를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유신 체제라는 점에서 "주사파는 유신 체제의 사상적 모범생이자 정치적 사생아"라는 것이 임 교수의 판단이다. 임 교수는 이 같은 역사를 돌아볼 때 "박근혜 정권의 국사 수능 필수 방침은 모범 청년들일수록 더 열렬한 주사파로 만든 박정희 정권의 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고 밝혔다.

일국사 중심의 역사 인식 및 교육에 대한 비판은 임 교수의 지론이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라 10년 넘게 해온 주장이다. 주사파로 불리는 세력과 극단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대목이 일부 있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하는 것이 역사 교육과 관련해 제기된 문제들을 풀어줄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연합뉴스

'국사' 교육 강화하면 제2의 이석기 나온다?

그럼에도 칼럼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과한 추론이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현행 역사 교육의 핵심 문제인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건 접어두더라도, 주사파의 정신적 자양분을 '국사'로 환원하는 게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다. 시쳇말로 칼럼에서 '국사'로 표현된 자민족 중심주의 교육을 없애면 주사파의 토양이 사라질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들의 탄생과 세력 확장은 한국사 교육으로 한정할 수 없는 현대사 전반의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현실 인식은 이른바 '북한 정통론'과 닿아 있다. 민족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 중 하나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선 해방 후 친일파가 득세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습격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역사가 이들의 자양분 중 하나였다.

미군 범죄 문제를 비롯해 미국과 엮인 사안들에 대해 오랫동안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 또한 이들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들은 그런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로 규정했고, 미국에 맞선 북한이야말로 자주적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내세운 '자주'라는 잣대를 절대화한 이들에게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북한 체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국 문제일 뿐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반공 체제가 역으로 이들을 키운 측면도 있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 안보를 위해 서슴없이 빨간 칠을 해온 역대 정권의 행태는 남한 체제를 부정하는 이들의 입지를 넓혔다. 중앙정보부 이래 국가정보원까지 이어진 정보 기관의 음습한 공작 정치가 심할수록, 이들 역시 탄압에 맞선다는 명목 아래 더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조직을 건설할 수 있었다. 남한의 역대 정권이 반공주의를 앞세워 북한과 적대적 공존을 하는 동안, 휴전선 이남에선 공안 기관이 마녀사냥식 빨간 칠을 거듭하면서 주사파 등과 공생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런 의미에서 공작 정치에 주력한 공안 기관과 자폐적인 주사파는 분단 체제의 쌍생아다.

이석기 의원과 직결된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이 주사파로 불리는 세력의 이러한 경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들의 아집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기 조직 이외의 사람들과는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많은 사람의 눈앞에서 그대로 드러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세력의 탄생과 확장은 한국 현대사 전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박정희 체제만이 아니라 친일파를 중용한 이승만 체제, 미국의 위협을 앞세우며 독재를 구축한 김일성 체제의 사생아이기도 하다.

내란 음모 사건 내세워 국정원 개혁 미루면 안 돼

한국 현대사를 되짚어보면, 이들이 성장할 수 있게 만든 자양분을 하나하나 줄여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왔고, 미국과 맺은 관계에서 불합리한 점들을 줄여왔으며, 시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등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내디뎌왔다. 주사파로 불리는 이들이 설 땅이 줄어든 것이 공안 기관의 탄압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단적으로, 국정원이 지난 대선을 전후해 보인 행태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공안 기관의 그런 모습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주사파로 불리는 세력의 폐쇄성을 강화할 뿐이다. 탄압은 그들의 세력을 위축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순교자 의식과 시대착오적인 신념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사건의 칼자루를 쥔 국정원에 사회가 휘둘리는 건 곤란하다. 내란 음모 사건의 진실 규명 명목으로 국정원 개혁이 뒤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과 더불어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그것이 음습한 공안 기관과 자폐적인 주사파라는 쌍생아 문제를 치유하는 길이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빨간 칠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과 다수 언론이 국정원 개혁 문제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문제는 정치로 돌아온다.

*'편집국에서'는 <프레시안> 선임기자들이 쓰는 글입니다. 오늘(9일)부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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