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청문회 뚜껑이 열리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김 후보자를 두고 언론과 국회에서 아직까진 그리 많은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평도 있다. 게다가 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전에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김 후보자에 관한 검증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여러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은 그의 재산 문제. 그는 대법관 시절이었던 1993년 공직자재산이 공개됐을 때 29억88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대법관 가운데 가장 많은 재산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현재 1050원이 버스비가 20년 전엔 250원이었던 것을 기준으로 따지면 현재 약 130억 원에 달하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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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의 두 아들, 7살과 8살 때 수십억 원대 부동산 취득?
김 후보자의 재산 대부분은 상속 재산이다. 김 후보자는 한화그룹 전신인 조선총포화약주식회사 대표를 지낸 김봉수 씨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후보자는 재산신고 당시 "모친이 포목점을 운영해 모은 재산 중 서울 강남의 1필지 땅을 물려받는 등 재산 대부분이 상속 재산"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 재산이 아들에게 불법적으로 증여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김 후보자의 장남과 차남이 각각 8살과 7살이던 나이에 수십억 원대 부동산을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미언론인 안치용 씨는 24일(현지시간) <시크릿오브코리아>를 통해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의 장·차남이 지난 1993년 당시 김용준 부부보다 더 많은 2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장·차남은 이 부동산은 7~8세 때인 1974년과 1975년 각각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안치용 씨가 공개한 자료는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공직자 재산공개가 이뤄졌을 때, 당시 대법관이었던 김용준 후보가 신고한 재산 내역으로 1993년 9월7일자 관보에 실린 내용이다.
관보를 보면, 당시 김용준 후보는 29억8800여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으며 이 가운데 김용준 후보 부부 재산은 11억 원에 그친 반면, 당시 20대 초중반이던 장·차남 재산은 18억여 원으로 신고됐다.
문제는 아들들의 재산 취득 시기. 1967년생인 김 후보의 장남은 7살 때인 1974년 6월 25일 경기도 안성군 삼족면 배태리 산45-3번지의 임야 2만여 평을 취득했으며 이 재산은 당시 시가로 1억6300만 원에 달했다.
또 장남은 차남과 함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06-4번지의 대지 200평, 건평 100평정도의 양옥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재산은 19억8700만 원에 달했다.
부동산 취득일시 등을 기록하는 재산내역 비고란에는 1975년 8월 1일이라고 적혀 있어 김후보의 장남이 8살 때 동생과 함께 이 부동산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동산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양옥으로 지난해 1월 기준 평당 공시지가가 2200여만 원, 주택공시가격은 35억2000만 원에 달했다. 이 주택은 김 후보자가 살고 있는 주택으로 현 시가 약 75억 원에 달하는 걸로 알려졌다.
안치용 씨는 김 후보의 장차남이 고액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을 두고 "경제적 능력이 없으므로 아마도 상속 또는 증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두 아들 관련, 불법 증여 의혹도 있지만 병역면제 의혹도 제기된다. 두 아들이 모두 병역면제를 받은 것도 검증대상이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김 후보자의 장남은 신장과 체중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고, 전경련에 재직 중인 차남 역시 통풍을 이유로 군 면제를 받았다.
'사회적 약자' 상징? 판결은…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는 게 장점으로 꼽히는 김 후보자이지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검증 대상이다.
과거 그가 재판했던 내용을 보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판결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부산의 도가니'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87년 3월, 전국 최대 부랑아 수용시설인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직원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한 사건이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위치한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를 목적으로 해마다 20억 원씩 국고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했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당시 신문 보도내용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했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또한, 원장 박인근(당시 58세)은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여기서 탈출한 원생이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형제복지원 원장과 직원 주영은(당시 48세)등 5명이 구속됐으나 대법원까지 간 재판은 원장만 징역 2년6개월 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끝났다.
검찰이 징역 15년형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원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2심 고등법원에서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게다가 대법원은 한술 더 떠 이 사건 관련, 복지원의 취침시간에 자물쇠로 출입문을 잠그고 행동의 자유를 제한한 것은 사회복지사업법 등 법령에 따른 정당한 직무행위로 감금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원장에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위반(횡령)죄만 적용, 2년4개월형을 선고했다.
주목할 점은 이 사건을 맡았던 대법관이 김용준 후보라는 점이다. 당시 이 재판은 검찰이 살인죄 등의 혐의는 빼고 기소하면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이런 재판에서 재판부가 감금죄까지 적용시키지 않다보니 피의자의 형량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국회 등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특경비 사용 검증도 넘어야 할 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사실상 낙마시킨 특정업무수행비도 김 후보자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총리 청문회 과정에서도 특경비 사용에 대한 검증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1994년 9월부터 2000년 9월까지 만 6년간 헌재소장으로 일했다.
특경비는 외근이 잦은 공직에 대해 번거로운 절차를 없애고 비용을 미리 지급해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편성된 예산이다. 예산에 편성되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하진 않지만 최소한 1980년대 초반이후 부터 존재해왔다.
이동흡 후보자는 월 400만 원 가량의 특경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특경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다른 의혹도 많았으나 결정적으로 이 후보 발목을 잡힌 것은 특경비를 개인 계좌에 입금한데다 이를 단기투자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김 후보자는 24일 기자회견에서 특경비 관련 질문을 두고 "활동비에 대해서는 내용을 확인해보지 않아 뭔지 알지를 못 하겠다.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철저한 검증 필요하다"
이외에도 은퇴 직후 대형로펌으로 직행한 점, 5.18특별법이 형법 불소급 원칙에 위반된다며 헌정위헌 의견을 낸 점 등 여러 논란거리가 산적해있다.
민주통합당은 철저한 검증을 예고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국민통합 능력과 국가경영능력을 두루 갖췄는지, 박 당선인이 공약한 책임총리제 취지에 부합하는지, 헌법재판소장 출신이 총리를 맡는 게 삼권분립에 맞는지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흡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가 시살상 물 건너 간 가운데,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까지 강하게 반대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이에 결정적 하자가 드러나지 않는 한 민주당에서도 강하게 반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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