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는 크게 여섯 가지입니다. 첫째, 현행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은 전액 정부 재원(지자체 재원 포함)으로 조달됩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보험금을 받는 노인들의 보험금을 줄여서 재원의 일부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제도상으로 후자가 더 퇴행적입니다. 둘째, 기초연금은 또 매년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그것을 재원의 일부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전제로 합니다. 역시 제도상으로 기초노령연금에 비해 더 퇴행적입니다. 셋째, 기초노령연금은 독신가구와 부부가구의 수혜액 비율이 1대 1.6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그 비율이 1대 2입니다. 역시 후자가 더 퇴행적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기초연금의 퇴행적인 부분,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악마적인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고 봅니다.
2. 나머지 3가지는 무엇인가요?
⇨ 넷째는 수혜 범위입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중하위 70%를 수혜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 기초연금은 전 계층을 수혜 대상으로 합니다. 다섯째는 소득 연계 여부입니다. 기초노령연금은 소득과 연계해서 차등 지원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올해의 경우 소득 중하위 70% 계층의 99%는 9만7100원(독신가구)을 받고, 1%는 5만 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계층별 차등 지원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비용입니다. 올해 기초노령연금 예산은 지자체 예산을 포함하여 4조3000억 원 규모입니다. 그러나 기초연금의 소요 예산은 2014년에 13조2000억 원, 2017년에 17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 향후 5년간 추가로 필요한 비용이 평균 10조 원 이상인데 실현 가능할까요?
⇨ 불가능합니다. 새해 벽두에 국회를 통과한 새해 예산을 보면 여야 정당의 재원 조달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박약합니다.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연간 27조 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연간 38조 원의 복지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양당이 새해 예산에 반영한 세입 예산을 보면 지출 조정으로 1.4조 원, 조세 개혁으로 2500억 원, 도합 1조6500억 원을 확보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4. 일부 학자들은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기초연금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매우 위험한 주장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연금 관련법은 기금 고갈에 대비해서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2013년 소득대체율은 47.5%이지만 해마다 0.5%포인트씩 낮아져 2028년에는 40%(그 이후에는 40%)가 됩니다. 그런데 그 장치를 만들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됩니다.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기초연금 재원으로 활용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5. 일부 학자들은 기금 고갈의 우려가 있으면 국가 재정으로 보충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 역시 위험한 주장입니다. 그들은, 우리 세대는 국민부담율(GDP 대비 국민부담액 비율) 25% 시대에 살고 후세대는 35% 시대에 살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고 주장합니다. 국민부담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세금을 더 내야 할까요? 우리는 소득세를 지금보다 2배 이상 더 내야 하고, 중소기업들도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를 2배 이상 더 내야 합니다. 그래야 OECD 평균이 됩니다. 언제까지 이 수준에 도달해야 하느냐? 30년 뒤인 2040년까지 그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때 국민연금 기금이 정점을 찍기 때문에 이때까지 이것을 실현해야 그들 말대로 별 문제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세대들은 1억 원을 벌어 900만 원을 소득세로 내고 있는데, 후세대들은 30년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1억 원(동일 시점 가치 환산액)을 벌어 2000만 원을 소득세로 내라고 하면 그들이 그걸 받아들일까요? 그리고 그런 염치없는 주장이 정당한 것일까요?
6. 일부 학자들은 복지가 늘어 국민들의 복지 효능감이 높아지면 증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지나치게 낙관적인 주장입니다. 무상교육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확대될 때 증세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나요? 복지 효능감은 일시적인 겁니다.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는 도로, 철도 등 SOC의 효능감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류세를 높이자고 했을 때 이를 환영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던가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증세에 동의한다는 국민들도 꽤 있다 하는데, 그들도 소폭의 증세에 동의할 뿐입니다.
7. 선진국의 소득세 부담률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 OECD 회원국들의 소득세 부담률은 1975년 9.3%에서 2005년 9.0%로 0.3%포인트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30년 만에 우리나라 국민들을 설득해서 2008년 4%였던 소득세 부담률을 선진국 수준인 9%로 올린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8. 30~40년이 지나면 고령층 비율이 지금보다 3배 가까이 늘기 때문에 의료비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 현세대가 국채 발행과 국민연금 기금 헐기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 돈 나갈 곳은 엄청나게 많고 들어올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세대가 자신들이 조금 힘들다고 '복지 효능감'이라는 그 얇은 살얼음에 기대를 걸고 후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년 전과 20년 후를 비교해 봅시다. 20년 전 20대의 미래는 지금처럼 절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보다 소득 수준은 낮았지만 누구나 웬만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도 100대 70(제조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자 간 임금 격차가 100대 50 아래로 떨어졌고, 누구나 웬만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20년 후에는 어떨까요? 지금보다 상황이 좋아질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9. 일부 학자들은 복지만 확대하면 선진국들처럼 좋아진다고 합니다.
⇨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과거에 정부의 복지 정책이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정부의 복지 정책이 없었다면 소득 5분위 배율(소득 하위 20% 계층 소득 대비 소득 상위 20% 계층 소득 비율)은 3.93배에서 6.02배로 나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 정책 영향으로 그 배율은 3.72배에서 4.82배로 나빠지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 정책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주었을 뿐, 이것을 역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10. 복지를 대폭 확대하면 상황은 역전되지 않을까요?
⇨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대로 27조 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충해서 27조 원의 추가 복지를 이루어 낸다면 상황이 약간이나마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야 정당이 하는 꼴을 봐서는 기대 난망입니다. 국회의원 연금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행태를 보세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누가 증세에 동의해줍니까? 이 사람들이 개과천선해서 국회의원 연금법 폐기하고,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을 이루어낸다면 국민들이 일부나마 증세에 동의해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11. 박근혜식 기초연금에 문제가 많다면 이 제도는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요?
⇨ 현행 기초노령연금제를 일부 수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두 가지 대안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70%를 기준으로 그 아래 중하위 계층에 대해서는 20만 원(부부의 경우 32만 원)을 지원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소득과 연계하여 10~19만 원(부부의 경우 16~30만 원)을 주는 안입니다. 둘째는 40%를 기준으로 위와 같이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안을 택하더라도 연간 7~8조 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고, 두 번째 안을 택하더라도 연간 5조 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입니다. 또 고령층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에 10년이 지나면 비용이 1.5배, 20년이 지나면 두 배 이상 뛰어오른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13. 지자체 부담은 어떻게 되나요?
⇨ 과거 기초노령연금에 비추어 보면 지자체가 전체 비용의 25~30%는 부담하게 될 겁니다. 추가로 필요한 전체 비용이 10조 원이라면 지자체가 이 중 2.5~3조 원을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무상보육비 분담금에 기초노령연금 분담금까지 겹치면 지자체들도 상당히 힘겨워질 겁니다.
14. <한겨레>의 한 중견 기자는 최근 '박근혜를 지켜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주요 내용은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박근혜 당선인 공약이 100%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박근혜 당선인 공약 중에도 4대강 사업과 유사한 공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정할 것은 수정해야 합니다.
15. 박근혜 당선인 공약 중에서 4대강 사업과 유사한 공약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 과잉 수요와 보육 수급 대란을 유발하는 무상보육 사업에는 낭비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중하위 50%(혹은 70%)에 대해서는 무상보육을 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소득 차등 보육료를 적용하여 보육 수급 대란을 막고 예산을 절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낭비적인 요소를 줄일 수 있습니다.
16. 앞에서 양극화 해소 효과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재원 배분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 조세연구원의 성명재 박사가 2008년에 내놓은 보고서, <조세·재정 지출의 소득 재분배 효과>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소득 최하위 10% 계층은 정부와 공공기관으로부터 연간 414만 원의 복지혜택을 받은 반면 최상위 10% 계층은 842만 원의 복지 혜택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중에서 교육 복지와 건강보험 복지, 그리고 공적연금 복지 등의 비중이 유난히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차적인 목표로 전체 계층의 복지 수혜액이 최상위 10% 계층과 동일한 액수가 되도록 소득 차등형 보편 복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그림] 계층별 교육 및 복지 수혜액 (단위 : 만 원) (주-1) 2006년 기준 (주-2) 1분위 : 최저소득층, 10분위 : 최고소득층 ⓒ성명재 외(2008),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 자료 재구성 |
17. 그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계층 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나요?
⇨ 전체 계층의 복지 수혜액이 최상위 10% 계층과 동일한 액수가 되도록 소득 차등형 보편 복지를 확대할 경우, 최하위 10% 계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복지 수혜액 비율은 53.1%에서 108.1%로 두 배 이상 상승하고, 차상위 계층인 2분위와 3분위의 비율도 각각 1.7배, 1.6배 상승합니다.
▲ [그림] 복지 수혜액을 소득상위 10% 계층과 일치시킬 경우 계층별 가처분소득 대비 복지 수혜액 비율(단위 : %) (주-1) 1분위 : 최저소득층, 10분위 : 최고소득층 (주-2) 가처분소득 = 시장소득 – 조세부담액(직접세, 간접세, 사회보험료 포함) ⓒ성명재 외(2008),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 자료 재구성 |
18. 교육 복지를 복지의 범주에 넣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선 기간 동안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 모두 교육 복지를 복지의 범주에 집어넣었습니다. 대학생 반값등록금도 그들이 명시적으로 복지 범주에 집어 었습니다. 교육 복지를 복지의 범주에 넣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19. 전체 계층의 복지 수혜액이 최상위 10% 계층과 동일한 액수가 되도록 하려면 정부는 어떤 일부터 해야 합니까?
⇨ 성명재 박사는 2007~2008년에 연구 작업을 할 때, 통계청의 가계조사 표본 9000개 원자료를 활용했습니다. 가계조사는 9000개 표본 가구에 대해 가계부를 쓰게 해서 조사를 하기 때문에 다른 통계조사에 비해 신뢰도가 높습니다. 정부가 이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면 일차적으로 가계조사 표본들의 최근 소득과 조세 부담액, 복지 수혜액 등을 정확히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복지 수혜액에는 현금 급여 이외에 현물 급여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현금 급여란 연금과 같이 직접 주는 복지 급여를 말하고, 현물 급여란 보육비처럼 정부가 복지 기관에 지원하여 수혜자의 비용을 줄여주는 급여를 말합니다.
20. 그 다음에는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 정부는 매년 세목별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그것이 각 계층에 어떤 부담과 혜택을 주는지에 대해서 개괄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각 부처도 복지 사업 예산서를 제출할 때 이런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21. 각각의 복지 사업이 각 계층에 어느 정도 혜택을 주는지 그것을 다 표시하게 하면 공무원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 지금 각 부처가 예산안과 함께 제출하는 각 사업별 평가 계획서에 비하면 계층별 영향 평가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또 계층별 영향 평가서는 공무원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도 되고, 국책 연구소와 함께 만들어도 됩니다. 그 수치가 조금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단 터무니없는 영향 평가를 피하기 위해서 사업별 평가 계획서처럼 대외적으로 공표만 하면 됩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이런 일도 하지 않고, 한쪽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악의 축이라 비난하고 다른 쪽에서는 선별적 복지를 악의 축이라 비난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뜬구름 잡기식 논쟁이 남기는 것은 조야한 정책뿐입니다.
22. 그래도 정확도는 높여야 하지 않나요?
⇨ 해마다 각 복지 사업별로 계층별 영향 평가를 하고 이것을 통계청 가계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정확도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23. 지금 정부가 제출하고 있는 세법 개정안의 계층별 영향 평가 결과도 지나치게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 국회의원들이 전문성이 떨어져서 제대로 자료 요청을 못하니까 정부가 무성의하게 제출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총액을 제출했다면 세부 내역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세부 내역을 받아야 국회의원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전문성이 없다 보니까 그 세부 내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릅니다. 대충 받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정부가 세부 내역을 제출하지 않는 겁니다.
24. 정부는 세부 내역을 작성할 시간이 없다고 발뺌을 합니다.
⇨ 시간이 없었다면 총액은 어떻게 나왔겠습니까? 총액이 있다면 세부 내역이 있는 겁니다. 또 그 세부 내역을 공무원들이 전부 다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의 90% 이상은 조세연구원의 연구원들이 만듭니다. 조세연구원에 엄청나게 많은 연구 용역을 주면서, 또 1년간 세법 개정안 준비를 하면서 시간이 없어서 세부 내역을 못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의 이런 발뺌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25. 각 부처의 업무량이 늘어난다면 공무원도 증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각 부처에 하는 일 없이 노는 인력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차적으로 각 부처가 업무 분장을 새롭게 하면 업무량이 늘어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부가 복지를 확대할 경우에는 복지 관련 업무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인력 충원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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