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후보는 15일 부산 지역 상공인들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보다는 자본소득 과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이 금융 중심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파생상품 거래를 활성화하고 선박 금융 기능을 한데 모아 특화금융중심지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발언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 금융 위기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투기성이 큰 파생상품 시장을 적절히 규제하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위기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는 민주통합당의 지난 총선 공약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장내 파생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거래 활성화를 명분으로 거래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물론 거래세도 부과하지 않았다. 그 결과 파생금융 시장은 지난해 거래 대금이 1경 원을 훌쩍 넘어서며 그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민주통합당이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 있다. 민주통합당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조차 당정 협의를 거쳐 지난 8월 파생상품에 낮은 거래세(선물 0.001%, 옵션 0.01%)를 부과하는 세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거래세 부과가 시장에 끼칠 파급 효과를 감안해 2016년부터 실질적으로 과세한다는 것이 정부 방안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유예 기간 없이 내년부터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등 정부 방안보다 더 과세 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문 후보가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으니,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6일 문 후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문 후보 발언에 대해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를 한국에 정착시킨 과거 정권의 2인자가 지닌 가치 전도의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탐욕스런 금융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일부 금융권 노조, 경제 전문 언론과 같은 세력에게 표를 구걸하는 비열한 행태"라고 규정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파생상품 거래세의 첫째 목표는 (…) 천문학적인 거래량과 '빛보다 빠르다'는 거래 속도를 줄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파생상품 거래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고수익을 내는 금융 자본에 과세하는 것은 여야 대선 후보가 모두 주장하는 복지 정책 시행에 필요한 세원이기 때문"이라며 금융 자본에 대해 과감하게 과세할 것을 주장했다. "복지 공약만 있고 추가 세원이 없는 공약은 모두 사기"라는 것이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총선 때는 당론으로 '파생상품 거래세' 공약, 대선 후보는 부정적 반응
참여연대도 18일 논평을 내고 "정책 목표를 이미 달성한 만큼 더 이상 (파생상품) 비과세 정책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은 여야 정치권 모두 인정한 사안"이며 "문재인 후보의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 반대는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문 후보가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민주통합당이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를 당론으로 채택했음은 물론 "문재인 후보 역시 19대 국회에서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를 담고 있는 개정안에 공동 발의 의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 후보가 "자기 부정을 하면서까지 앞뒤가 맞지 않는 입장을 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며 "자신의 이름으로 발의한 안을 순식간에 뒤집는다면, 이는 대선 후보로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비판이다.
참여연대는 "자본 시장의 불안정성을 조장하는 투기 억제를 위해서라도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은 시급"하며, 한국의 경우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거래 위축을 우려하는 것보다는 투기 과열을 완화하거나 금융 시장의 투명하고 건전한 발전을 정책 목표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참여연대는 "문 후보의 발언이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대신 그로부터 발생하는 거래차익에 곧바로 자본이득 과세를 도입하자는 취지라면, 이는 진일보한 제안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파생상품에 대해 거래세조차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면, 이는 조세 개혁 의지가 매우 미약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발언의 근거를 정확히 밝힐 것을 문 후보에게 촉구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같은 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문 후보의 이번 발언이 "선심성 발언이자 파생상품 과세에 대한 의지가 분명한지 의심을 살 만한 발언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조금 더 진위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 시장 과세와 관련, 실현가능성 등을 감안해 그간 시민사회 등에서 '선(先)거래세 후(後)이득세'를 주장했는데, 문 후보의 이야기는 전자부터 포기하는 발언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 실장은 "문 후보 측에서 파생상품 과세에 관한 종합 공약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그림을 제출할 것인지를 "시민사회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증권업계 등은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을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 문 후보의 정치적 고향이자 한국선물거래소가 있는 부산에서도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 후보가 '파생상품 거래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밝힌 곳도 부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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