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인 손학규 전 지사가 102일 간의 민심대장정 일정을 마치고 9일 오후 서울역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는 300여 명의 지지자와 시민들이 모여 손 전 지사의 행보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일단 손 전 지사는 이번 대장정을 통해 꾸준히 당 내·외의 지지층을 확대했다는 평가지만, 여전히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비해 미미한 인지도와 정치적 콘텐츠 미비 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손학규 식 정치실험, 관건은 콘텐츠
손 전 지사는 이날 서울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와 3자 회동을 갖자"고 제안하는 등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21세기형 발전국가'라는 정책 과제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현 정부의 국정실패를 다시금 반복하게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과거의 개발 시대로 되돌아가서도 안 된다"며 "우리는 미래로 가야 하며 '21세기형 발전국가'로 대한민국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손 전 지사는 "대결의 시대를 마감하고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국민통합론', "민생 불안의 해소를 위해 국가 자원을 전면적으로 재편성해야 한다"는 '국가자원재편성론'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지금처럼 목청 높은 소수가 좌지우지하는 정치로는 안된다"며 "정치인은 말만 하고 국민이 땀 흘리던 정치에서 이제는 국민이 말을 하고 정치인이 땀 흘리는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큰 틀에서 정책방향을 제시한 것이지만 '국민통합'이나 '정치개혁'이라는 구호 자체만으로는 손 전 지사 고유의 '저작권'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구체적 내용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손 전 지사 측의 김성식 정무특보는 "첫날에 다 풀어놓을 수는 없지 않나. 이번에 제시된 세 가지 방향은 큰 틀을 제시한 것"이라며 "남은 과제는 실질적으로 정치를 변화시키는 한편, 구체적 현안에 대해 그 정책을 구현해 나감으로써 손학규 식 정치를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손 전 지사는 긴급 성명을 통해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었다"며 "이제 그들의 체제 보장은 그 누구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히는 등 현안에도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외교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한 목소리로 그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며 "남북협력도 전면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3개 직업-1500명과 대화-이동거리 3만 리
손 전 지사는 향후 지난 102일 동안 채록한 노트 9권 분량의 민심을 정리해 정책적 의제로 제시하는 한편 책으로 묶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그는 광부, 농부, 축산종사자, 환경미화원, 어부, 사회복지사 등 총 93개 직업을 경험하며 총 153회의 간담회를 통해 약 1500여 명과 대화를 나눴다. 이동거리만 따져도 약 3만 리(1만2475㎞)에 이른다.
톡톡히 효과를 본 민심대장정을 자산으로 이명박-박근혜 등 선발주자들과의 격차를 좁혀나가겠다는 그의 복안에 대해 일단 당 안팎의 반응은 고무적이다. 그동안 민심대장정의 수해복구 현장, 농촌일손돕기 등에는 총 525명의 자원봉사자가 동참했다.
소장파 의원들을 비롯한 동료 의원들 42명도 자원봉사에 동참해 힘을 실어줬다. 김진홍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지하 시인 등도 격려차 방문했다. 초기에는 '쇼 아니냐'는 평가도 받았지만 민심대장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처음으로 지지율 5%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0%대에 육박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기세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손 전 지사 측의 고민이다. 아직까지 '손 전 지사'라는 인물 자체가 국민들 사이에 파괴력 있는 카드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손 전 지사가 여권과 손을 잡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도 한나라당 내에선 승산이 없다는 관측에 토대를 두고 있다. 결국 손 전 지사는 이번 대장정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인상은 남겼지만, 그것을 정책과 내용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이명박-박근혜에 대응할만한 정치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더 큰 과제에 직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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