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오후 3시에 전격적으로 만도 3개 공장에 직장폐쇄가 선포되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오후 5시 30분에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 현안 점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만도 노동자 연봉이 9500만 원"이라며 '귀족노조'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부었다.
곧이어 만도 3개 공장에 일제히 복수노조(기업노조) 설립 선포가 이뤄졌고, 기업노조가 설립되었음을 대외적으로 가장 먼저 알린 것은 회사의 보도자료였다. 이것만으로도 설립된 복수노조(기업노조)의 성격이 무엇인지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속노조 만도지회의 '휴가 후 조업 복귀' 선언이 이어졌지만 회사는 직장폐쇄를 풀 의사가 전혀 없었다. 불법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쓴 노동자들만 출근을 시킨다는 것이었고, 아예 '금속노조에서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복귀시키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이런 방식의 공격적 직장폐쇄는 당연히 불법임에도, 고용노동부는 "불법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아예 한 술 더 떠서 "직장폐쇄 불법 여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일"이란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자본가를 위해 직장폐쇄 선포를 합법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찰나지만, 명백한 불법을 두고 불법이라 판단하는 것은 영겁의 세월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7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원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경비업체 컨택터스와 이를 지시한 ㈜SJM, 폭력사태를 묵인한 안산단원경찰서를 검찰에 고소,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컨택터스가 노조원들에게 던진 자동차 부품을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왔다. ⓒ연합뉴스 |
민주노조 깨기 프로세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당하는 이들로서는 정신줄을 놓을 만한(속칭 '멘붕') 사건의 연속이다. 하지만 정신을 다시 차리고 과거를 찬찬히 살펴보면, 지난 며칠간 벌어진 일들은 2년 동안 벌어진 유사한 사건들에서도 똑같이 확인할 수 있는 프로세스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노조의 부분파업을 이유로 유성기업에 직장폐쇄가 선포되고 곧바로 용역 경비대가 현장을 장악해 들어왔다. 분노한 조합원들이 공장을 재탈환하자 이번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그 이후 만도와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복수노조(기업노조) 설립이 선포되었고, 기업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현장 복귀가 허용되었다.
고용노동부 역시 직장폐쇄가 위법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아니, 이보다 한 술 더 떠서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유성기업지회의 파업이 불법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엄연히 충남지노위의 조정과정을 거쳐 돌입한 합법파업인데, "아니면 말고 …" 식의 전형적인 억지 논리임이 분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연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유성기업 노동자 연봉이 7000만 원이라고 떠들었다.
2010년 경주의 발레오만도, 대구의 상신브레이크, 구미의 KEC 등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면파업도 아니고 잔업 거부나 부분파업만으로 직장폐쇄가 떨어지고 곧바로 무장한 용역 경비대가 공장을 장악한다. 파업 노동자들의 연봉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는 이데올로기 공격이 이어지고, 복수노조가 추진되거나 금속노조 탈퇴가 이어진다.
발레오만도의 경우는 좀 더 드라마틱하다.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는데, 사측의 가공할 탄압으로 결국 발레오만도지회가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한 바로 그날(5월 19일)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가처분결정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판결문은 송달된 이후에나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에, 회사는 유유자적 송달을 기다리며 금속노조 탈퇴 총회를 후원한 것이다.
5월 24일, 판결문이 송달되자 5월 25일 직장폐쇄를 풀게 된다. 그때까지 공장 밖에서 투쟁을 벌이던 108명의 조합원들은 이제야 현장에 들어가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었지만, 회사는 그 꿈마저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다. 108명 조합원 전원에게 자택 대기발령을 내린 것이다. 도대체 직장폐쇄를 푼 효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이 용역 경비의 가공할 폭력 아래 민주노조가 작살난 것이니 말이다. 심지어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아와도 '대기발령'이란 방식으로 직장폐쇄나 다름없는 짓거리를 벌인다. 노동부가 "직장폐쇄 위법 여부는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떠벌리는 것 자체가 "민주노조가 말살되기 전에는 이 사태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공황 이후 이명박 정권과 사장들의 노동자 공격 순서도
'멘붕' 상태를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더 근본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어보자. 앞에서 사례로 든 발레오만도·KEC·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 그리고 최근 만도와 SJM 사태도, 긴 안목에서 보면 훨씬 더 큰 프로세스의 한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미국발 금융위기, 세계대공황의 전조가 시작되자 곧바로 이명박 정권과 사장님들은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뿐'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한목에 모든 노동자를 한꺼번에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노동계급의 각 부문들을 한 번에 하나씩, 단계별로 순서를 거치며 공격하게 된다.
아래의 그림은 2008년 9월 이후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언제, 어떤 부문의 노동자들을 공격했는지를 그려본 것이다. 공격은 가장 바깥 부분부터 순서대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가장 먼저 노동조합조차 갖고 있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을, 그리고 노조를 갖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견사업장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민규 |
▲1단계 :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를 덮치기 시작한 대공황
- 공황의 초입, 제조업 가동률과 이윤율이 하락하자 가장 먼저 밑바닥 노동자들부터 희생양이 됨.
- 노동조합조차 갖지 못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잘려나갔다.
- 비정규직노조가 있는 현대자동차 같은 사업장에서도, 조합원이 아니라 비조합원들부터 해고하기 시작.
▲2단계 : 2009년 상반기, 공격은 점점 조직된 노동자층으로 이동함. 가장 먼저 조직된 비정규직부터.
- 2009년 4월,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 통보서 발송
- 2009년 4월, GM대우 '라인운영속도 변경' 합의에 따라 부평공장에서만 900여 비정규직 잘려나감.
- 2009년 6월, 현대차 투싼 단종에 따라 울산 2공장에서 66명의 비정규직이 정리해고됨.
- 2009년 8월, 델타엔진 단종에 따른 현대차 아산공장 유진기업 폐업으로 수십 명의 비정규직 조합원 정리해고.
▲3단계 : 2009년 하반기부터 공격은 본격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층으로 이동. 가장 먼저 중견사업장부터.
- 2009년 쌍용차 3000여 정규직·비정규직 정리해고 계획에 맞서 77일간의 점거파업. 그러나 막지 못함.
- 쌍용차 투쟁 패배 직후부터 영남과 호남의 핵심 주력사업장에 정리해고·구조조정 공세
- 2009년 말 금호타이어·캐리어·한진중공업·대림자동차에 정리해고 공세
- 2010년 초 발레오만도·인지컨트롤스(안산)에서 공격적 직장폐쇄 통한 민주노조 말살 공격
- 2010년 중반 KEC·상신브레이크·우창정기·진흥철강에 타임오프 핑계로 공격적 직장폐쇄, 구조조정 공세
- 2010년 말, 노조의 양보로 잠시 정리해고가 중단된 금호타이어·한진중공업에 재차 정리해고 공세
- 2011년 센트랄·유성기업·일진베어링 등 자동차 부품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노조 말살 공세
- 2012년 만도·SJM 등 자동차 부품사에서 직장폐쇄 등의 방식으로 민주노조 말살 공세
4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3단계의 거의 막바지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공격(1단계)으로부터 시작된 이 거대한 프로세스는,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공격(2단계)을 넘어 지역의 중견사업장(대략 인원수 500~2000명 사이)에 대한 공격(3단계)으로 넘어간다.
2단계와 3단계 사이에 위치한 것이 바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밀어붙이기 위한 파상공세였다. 쌍용차 투쟁이 남긴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패배주의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많은 민주노조들이 직장폐쇄나 정리해고 공격이 들어오면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77일간 처절하게 싸울 수 있겠어?"라며 먼저 겁먹고 양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과 사장들은 신나게 중견사업장 민주노조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발레오만도·KEC·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 이 사업장들이 어떤 곳인가? 금속노조 내부에서도 '비정규직 없는 사업장'으로 알려진 민주노조운동의 버팀목들이었다.
3단계와 4단계 사이에 결정적으로 만도가 놓이게 되었다. 만도를 3단계와 4단계를 잇는 징검다리라고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2010년부터 시작된 3단계 공격대상이 된 사업장들 대부분은 600~700명 규모였다. 한진중공업과 금호타이어 정도가 예외적인 사례였다. 그런데 만도는 2300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는 비교적 큰 사업장이라 할 수 있다.
만도는 4단계 공격대상이 될 대기업 사업장과 중견사업장 사이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금속노조 내부적으로 보면 이런 규모의 사업장이 만도와 금호타이어뿐임을 알 수 있다. 지금 금호타이어에서도 복수노조가 설립되어 있고, 올해 역시 민주노조 말살을 향한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사장들이 공격의 단계를 이렇게 밟는 이유는 간단하다. 좀 더 큰 사업장의 민주노조일수록 깨는 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조직 노동자들부터 공격하면서 점차 조직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조직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위부터 공략하면서 점점 더 큰 사업장을 포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 대기업 사업장을 공략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할 것이다. 대기업 사업장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당연히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고 있는 곳들이니 저항도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공격에 맞서 함께 싸워줄 중견사업장의 민주노조들 대다수가 깨진 상황이다. 따라서 대기업 사업장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실 정권과 자본이 이러한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은 미리 알려진 것이기도 했다. 2010년 1월 19일, 청와대와 노동부는 파업이 잦은 회사와 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갈등을 예방한다며 소위 '노사정책 추진 전략'을 수립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국무총리실은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개최해 '2010년 노사관계 현안과 정부 대응방안'을 비공개로 논의하기도 했다. 언론 보도에 나타난 그 내용의 일면을 살펴보자.
"추진 전략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차, GM대우, 금호타이어, 코레일, 발전 5개사 등 15개사를 집중관리 사업장으로 이달 중 선정해 수시로 노사 현안을 확인하고 불법 파업 조짐이 나타나면 즉각 대응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자동차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노사 분규가 자주 일어나는 사업장 300여 곳에 대해서는 사업장별로 담당 감독관을 지정해 면밀한 노사 관리에 들어간다." (<매일경제신문>, 2010년 1월 20일자)
그렇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쌍용차 점거파업에 대한 살인진압을 통해 1·2단계를 거쳐 3단계 공격을 실행할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이명박 정권은 이제 본격적인 3단계와 4단계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전략을 '노사정책 추진 전략'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을 보면 딱 들어맞지 않는가? 발레오만도·KEC·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만도·SJM 등이 "자동차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노사 분규가 자주 일어나는 사업장 300여 곳"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 4단계 공격대상은? 그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현대차, 기아차, GM대우, 금호타이어, 코레일, 발전 5개사 등 15개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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