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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ㆍ후쿠시마, 그리고 MB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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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체르노빌ㆍ후쿠시마, 그리고 MB의 '악연'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장막 뒤에서 나온 원자력 마피아

오는 11일이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 1주년이 된다. 이 사고는 후쿠시마 원전 건물만이 아니라 원자력은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신화를 붕괴시켰다. 일본의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그 영향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원자력 확대' 발언과 신규 원전 부지 지정, 핵안보정상회의 유치에서 보이듯 흔들리는 원전의 지위를 사수하기 위한 이른바 '원전 마피아'의 방어가 강해졌고, 반대로 시민사회에서는 기존의 원자력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환경단체 외에도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원자력과 방사능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친환경적인 대안을 탐색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미 탈핵을 선언한 독일 등 몇몇 나라에서처럼 전면적인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원자력 신화에 도취되어 있던 한국에서 이러한 균열은 중요한 변화다. 3.11 후쿠시마 사고가 지난 1년 간 한국에 남긴 것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1>"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2> 방사능 오염 생태가 수산시장에, 그런데도 정부는…


1년 전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저지른 극도의 정보 통제는 사상 최악의 핵 사고 자체만큼이나 충격을 줬다. 일본 정부는 주변 주민들이 제때에 피난하지 못해 방사능에 노출되는 위험까지 방치하면서 사태의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은채 숨기기에 급급했다. 최근에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초기 노심 용융을 파악하고도 2개월 후에야 인정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당장 건강에는 위험이 없다"는 태도로 국민들의 불신만 키웠다.

일본과 '원자력 쌍둥이'로 불리는 한국에서 이러한 사태는 단지 남의 일은 아니다. 일본의 원자력 정책을 주무르는 '원자력촌'의 매커니즘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한국의 소위 '원자력 마피아'와 대단히 닮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민당과 경제산업성 산하 자원에너지청, 도쿄전력은 경제산업성 관료들이 관행적으로 도쿄전력 부사장에 취임하고, 원자력 규제기관 공무원 중 상당수가 원자력 업체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등 긴밀한 유착 관계를 맺어왔다. 지난 3년간 도쿄전력이 자민당에 2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원전 시동 연장 못하면 연말에 애 보러 가야 하는 분들 있지 않나"

한국에서도 원자력 규제기관에 원자력 산업계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의 안전 규제를 위해 생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초대위원장에 취임한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다. 강 교수는 2002년부터 위원장에 내정될 때까지 원전 관련 업체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협회의 부회장을 맡아왔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원자력발전 건설사인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일본원전비대위 위원장은 6일 열린 진보신당 토론회에서 "강창순 위원장은 한국 원자력학계의 거두로, 한국의 원자력 산업 진흥확대에 앞장서온 인물"이라며 "자신들의 사회, 경제적 이득을 위해 원자력 정책을 주물렀던 인물이 수장이 됐는데, 과연 '안전 규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의 선임은 최근 3년 이내에 원자력 이용자 단체의 장 또는 사업을 수행했던 사람을 금하는 원자력 위원회 법의 규정에도 위반된다는 지적이다.

이외에도 정부 관료가 나서 직접적으로 원자력 산업계와의 '유대감'을 표명한 사례도 있었다. 조석 지식경제부 차관은 지난 1월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월성 1호기 수명 연장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 "우리 원자력계 일하는 방식 있지 않느냐. 허가 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돈부터 집어넣지 않았느냐", "만약 시동연장 못하면 관계되는 분들 중에 연말에 애 보러 가야 하는 분들 있지 않느냐"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규제 임무를 맡은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의 인물이 사실상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관료는 아니나 이명박 대통령 역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1977년 현대건설 사장으로 취임했고 1988~1992년 현대건설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 사이 현대건설은 고리 3·4호기, 영광 1·2·3·4호기, 울진 1·2호기 건설을 진행했다. 1988년 영광 3,4호기 기공식 당시에는 이명박 당시 회장이 직접 방문해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공동대표는 "영광 3,4호기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추진한 원자력 발전소"라며 "이번에 이 대통령이 신고리 1호기 발전 승인을 내준 것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에서 최초였다. 이 대통령과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사고 사이에 '악연'이 많이 끼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원자력계가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단지 이명박 정부 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역대 정부 중 국민적 논의 과정을 거쳐 원자력 정책을 결정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관료 등 정책 결정가와 소위 전문가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획이 수립됐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해 11월 확정된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수립 과정이었다. 한달 여 전 한국원자력학회가 연 공청회가 영광, 울진, 울산, 경주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으나 원자력학회는 공청회를 다시 열거나, 이날 공청회에 나온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원자력 확대 위주의 이 계획안을 그대로 확정하는 '거수기' 역할을 했다.

다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달라진 점은 지식경제부 차관이 공개적으로 원자력 산업계를 독려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념 연설에서 '원자력 불가피론'을 역설해야할 만큼 국민들 사이에서 원자력의 위험성에 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이상 '밀실'에서의 조정만으로는 국민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없어 이들 역시 장막을 걷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됐음을 보여준다.

'원자력은 안전한 에너지' 홍보에 연간 100억 원

이들이 주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이용해 온 것은 '홍보'다. 이를 위해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증진' 등을 설립 목적으로 내세우고 정부로부터 매년 1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지원 받고 있다. 문제는 원자력문화재단의 예산은 전기요금의 3.7%를 떼어내 조성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전기세를 내는 모든 국민이 원전 홍보비를 대고 있는 셈이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돈은 국내외 원전 현장 시찰, 원자력 글짓기 대회, 원자력탐구올림피아드, 원자력페스티벌, 원자력뮤지컬 등과 방송 드라마, 퀴즈, 다큐멘터리에서의 '간접 광고' 등에 쓰였다. 국외 원전 시찰을 위해 4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 기자, 교육계 인사 등이 해외를 다녀왔고, 이에 맞춰 기자들의 원전 홍보 기사도 봇물을 이뤘다.

▲ 원자력문화재단이 낸 '에너지 체험관' 신문광고.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막대한 예산을 쓰는 원자력문화재단은 법적 지위도 명확하지 않다. 현재 원자력문화재단의 입법 근거를 별도로 규정한 '원자력문화재단법' 등은 없다. 원자력문화재단은 비영리법인에 관한 일반적인 설립과 허가를 규정한 민법 제32조에 근거해 있고, '원자력 홍보기관'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지원할수 있다고 규정한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예산을 받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의 근거가 민법에 그치는 것은 1992년 설립 당시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안면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고 했다. 이에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항쟁' 수준으로까지 시위가 번졌고, 이에 놀란 노태우 정부는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 계획 백지화를 발표하는 한편, 이른바 '국민 계몽'을 위해 일본을 본떠 원자력문화재단을 급히 설립했다.

애초에 반핵, 탈핵 움직임을 무마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 20년 간 운영되면서 매년 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원자력 홍보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 원자력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도 아닌 정부 차원에서 국민의 세금을 들여 원자력 발전을 홍보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특히 원자력과 달리 신재생에너지에는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홍보 사업은 없다.

김혜정 위원장은 "원자력문화재단이 지난 20년 간 원자력에 중독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며 "원자력 카르텔을 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원자력 문화재단 해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발의한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년 째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조 의원은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재생가능에너지 및 전력사업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가칭)에너지문화재단' 또는 '전력문화재단' 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민주적 통제' 아래로 끌어올 것인가"

'원자력 마피아'와 관련해 탈핵 진영 내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논의 중 하나는 "'원자력 마피아'를 '마피아'라고 불러도 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산하 기관을 장악한 재경부 출신 인사들을 '모피아'라고 부르는 것처럼 원자력계 내부의 유착 관계를 빗댄 말로 쓰이고 있지만, 정부가 직접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부=마피아'라고 하는게 적절하느냐는 의문이다.

이헌석 공동대표는 "이들 집단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고 의사 결정 과정을 혼란하게 만든다는데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마피아라고 해서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민주적 통제 아래로 다시 끌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원자력문화재단의 개혁과 함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규제 기관의 실질적인 독립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김혜정 위원장은 "시민들이 '규제와 진흥을 분리하라'고 요구한 결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독립되어 설치됐지만 강창순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또 하나의 진흥 기구에 지나지 않게 됐다"면서 "원자력안전위법 재개정 운동 등을 벌여 비원자력계,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하고 위원 자격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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