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이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 1주년이 된다. 이 사고는 후쿠시마 원전 건물만이 아니라 원자력은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신화를 붕괴시켰다. 일본의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그 영향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원자력 확대' 발언과 신규 원전 부지 지정, 핵안보정상회의 유치에서 보이듯 흔들리는 원전의 지위를 사수하기 위한 이른바 '원전 마피아'의 방어가 강해졌고, 반대로 시민사회에서는 기존의 원자력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환경단체 외에도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원자력과 방사능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친환경적인 대안을 탐색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미 탈핵을 선언한 독일 등 몇몇 나라에서처럼 전면적인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원자력 신화에 도취되어 있던 한국에서 이러한 균열은 중요한 변화다. 3.11 후쿠시마 사고가 지난 1년 간 한국에 남긴 것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1>"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에서는 전에 없던 '히트 상품'이 생겼다. 방사능 측정기다. 쇼핑몰에는 적게는 30만 원부터 100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까지 다양한 방사능 측정기가 등장했고 몇몇 카페에는 "이 제품은 알파, 베타, 감마선 모두 측정 가능하나 공간 선량 측정에 오류가 있다", "이 제품은 감마선에 20가지 핵종 분석이 가능하다"는 등의 전문가 수준의 제품 분석기가 올라온다. 네티즌 중에는 1000만 원이 넘는 핵종분석기를 사서 분석 결과를 올리는 이들도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유형의 뉴스도 생겨났다. 시민들이 먼저 방사능 유출을 알고 공론화하는 것이다. 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된 노원구 월계동 아스팔트도 먹거리의 방사능 오염 문제를 걱정하는 엄마들의 모임인 '차일드 세이브' 회원이 방사능 계측기를 들고 지나다 알게됐다. 또 올해 1월에는 한 대형마트에서 파는 식기 건조대에서 방사능 물질이 발견된 것도 방사능 계측기를 가진 고객의 제보에서 시작됐고 '음이온 벽지'에서 방사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시민들이었다.
"국내에 유능한 연구기관 많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시민들의 활발한 활동은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경주환경운동연합은 식품 조사가 가능한 방사능 정밀측정기기를 구입했다. 이 제품은 2500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인데, 큰 홍보 없이도 모금을 통해 이 금액을 넘는 돈이 모였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을 맡고 있는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모금액이 2500만 원을 넘어 기기 값 뿐 아니라 식품 조사에 드는 추가 비용을 댈 수 있을만큼이 됐다"며 "홍보라고 해봐야 페이스북에 포스팅 몇 번 한것에 불과한데 이렇게 모금이 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은 이것보다 좋은 기기를 가진 대학과 연구소가 국내에 엄청나게 많은데, 아무도 검사를 하지 않고, 또 결과를 공개하지 않으니 이렇게 지원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일드세이브 카페 역시 모금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등의 연구소에 배추, 쌀, 흙 등의 방사능 오염 여부를 의뢰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이 카페의 운영자 전선경 씨는 "우리는 비전문가이고, 정부나 어디서도 우리의 환경이 어떠한지를 정확히 밝혀주지 않으니 모금을 통해서 방사능 오염 여부를 밝혀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치 이하면 '적합'? 방사능 물질 수치는 왜 안 밝히나"
이렇게 모금이나 자체 조사를 위해 시민들이 쓰고 있는 돈은, 사실 만약 정부가 수입 금지 조치 등으로 식품 안전에 충분한 신뢰감을 주고, 국내에서 유통되는 식품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상세한 정보를 공개한다면 지출하지 않아도 좋을 비용이다.
지난해 3월 정부는 "방사능 오염 위험이 큰 일본 지역의 식품은 수입하지 않겠다"고 밝히긴 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이미 일본 내에서 출하 금지가 된 지역이라 정부의 발표는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빈축을 샀다. 환경운동연합의 김혜정 원전비대위원장은 "일본 내에서 출하 금지가 된 걸 어떻게 수입하느냐"며 "이를 '수입 금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말장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식품 수입 금지 조치를 가장 적게한 나라에 속한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식품에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한 국가는 29개국에 달한다. UAE 등 중동지역 국가들은 일본산 식품 수입을 전면 제한했고 중국은 후쿠시마를 포함한 10개 현에서 들어오는 식품 수입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6개 현의 식품 수입을 금지하면서 특히 수산물과 수산가공품 수입 제한 조치를 강화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농수산식품부는 '농축수산물 방사능 검사 현황'을 매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방사능 기준치(요오드 300베크렐/kg, 세슘 370베크렐/kg)를 높게 설정해둔 상태에서 방사능 검출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적합/부적합' 여부만 밝히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신뢰도가 낮다.
▲ ⓒ환경운동연합 |
가령 김익중 교수의 식품 검사에서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산 일본산 생태에서 세슘134와 세슘137이 검출됐다. 김 교수는 "반감기를 감안할 때 세슘134가 검출된 것은 최근에 노출됐다는 것, 다시말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오염됐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후쿠시마 사고로 오염된 생태가 국내에 수입되어 유통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9월에도 수입된 냉장 대구와 냉동 방어에서 세슘이, 활백합에서는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된 사실이 환경운동연합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통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가 검사한 생태에서 나온 세슘 역시 9베크렐 가량으로 정부 기준치 미만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부가 내세우는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 "특히 내부 피폭은 방사능 물질과 세포와의 거리가 극히 가깝기 때문에 방사능 에너지 양을 더 많이 받으며, 사실상 기준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체내 피폭의 위험은 잘 알려져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을 섭취하고 '체내 피폭'이 되면 염색체에 영향을 주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게 되며, 그 영향은 수십년간 지속되게 된다. 특히 장기적으로 노출량이 클 수록 암 발생률도 높아지고, 세포 분열이 활발한 태아와 아이는 방사능에 더욱 취약하다.
전선경 씨는 "우리나라의 방사능 기준에서는 세슘이 299베크렐/kg이면 적합 판정이 나온다. 정부가 '적합'이라고 발표해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라며 "몇 억의 예산을 사용하며 나오는 결과를 방사능물질 수치까지 상세하게 공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산 수입 식품 전량 수입 금지가 어렵다면 적어도 검역 기준치를 강화하는 정도의 방안은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구태여 '저선량 피폭은 안전하다'는 억지논리를 펴면서 현 기준치를 고수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또 검사 자체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김혜정 위원장은 "현재 검역당국은 수입량에 관계 없이 수입 품목 당 1kg의 시료만 분석한다"면서 "검사 항목도 세슘과 요오드만 포함될 뿐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에 대해서는 기준치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수산물 먹이기 불안해"
이 때문에 시민들의 행동은 '제보'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차일드세이브 카페는 '학교급식 개정 제안서'를 만들어 교과부와 학교장, 어린이집 원장 등에게 보냈다. 전선경 씨는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 동태국이나 어묵 등 수산물이 빈번하게 올라가는데, 정부에서는 기준치 이하라고 안전하다고 수입을 허가하는 현실이라 엄마 입장에서 걱정이 많았다"며 이 제안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제안서는 △일본산 식재료는 쓰지 않도록 하고 △해조류와 생선, 건어물 등은 명확한 국내산 제품을 사용하고 △어묵, 게맛살 등 수산물가공식품 등은 가급적 사용을 제한하며 △우유, 유제품 등도 방사능 검사를 실시할 것 등을 권하는 내용이다.
전선경 씨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나를 비롯해 많은 엄마들이 학교 급식이 불안해 도시락을 싸고 있다"면서 "정부가 엄마들이 수산물 먹이기를 꺼려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방사능 오염 식품 문제에 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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