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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값으론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도 못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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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값으론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도 못 마셔"

[전태일 통신] 커피점 알바생 스물한살 김민수 씨를 만나다

민수 씨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3월, 청년유니온 창립총회에 대한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서였다. 국내 첫 청년노동자들의 일반노조란 이상한(?) 단체가 만들어진 것도 충격이었지만, 총회의 사회를 맡은 이가 스무 살의 새내기 대학생이란 사실은 당시 서른한 살의 어떤 백수청년에게 수상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안겨줬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급하게 지우고자 나는 그 즉시 청년유니온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alabor/)에 가입했고 조합원 자격을 취득했다. 물론 백수인 내겐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즐비했기에 유니온 활동을 열심히 하진 못했다. 하지만 간혹 나갔던 유니온 지역모임이나 행사에는 언제나 사회자 마이크를 든 민수 씨가 있었고 인터넷 카페에서도 민수 씨의 카페명 '레랑스'의 활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민수 씨와 유니온에서 함께한지도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민수 씨는 입학했던 대학을 자퇴하고 돌려받은 등록금으로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는가 하면, 대안학교 교사, 커피숍 파트타이머 등의 직업을 거치며 아찔하면서도 유쾌한 청춘비행을 이어오고 있다. 청년유니온에선 물론 유니온의 아이돌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며 노동상담 팀장직을 역임중이시다. 이제 스물한 살, 민수 씨의 아침공기처럼 청신한 젊음을 들어본다.

▲ 김민수 씨. ⓒ조영훈
"인터넷 통해 세상을 알게 됐죠"

조영훈 청년유니온 조합원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김민수 : 네. 2주 전부터 커피숍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어요. 사실 올해 6월에 있을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2주 전(5월 초순)에야 제가 만20세가 되지 않아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단 걸 알게 됐어요. (민수 씨의 만 나이는 현재 19세이다.) 공인영어자격시험도 합격해놓았는데…. (웃음)

그런데 막상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단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생각만큼 그렇게 허망하다던가 충격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냥 집에 굴러다니는 맥주 한 캔 마시고 바로 커피숍 아르바이트 구하는 곳 찾아서 면접보고 합격한 다음 집에 돌아와 다시 맥주 한 캔 비우고 잠들었죠. 그 다음날부터 쭉 일하고 있어요.

조영훈 : 공인노무사시험을 준비했었군요. 노무사 시험은 왜 준비했어요?

김민수 : 일단 유니온에서 노동상담 일을 하면서 상담을 더 잘하기 위해서 노무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저도 어떤 형태로든 밥벌이 할 무언가가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요. 뭐,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죠. 그런데 올해 나이 때문에 못 본다고 해서 당장은 돈 좀 벌려고요.

조영훈 : 1년 전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대학새내기였던 작년 3월,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김민수 :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였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인터넷을 하시며 키득키득 웃으시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기에 저렇게 웃으실까 싶어 어머니께서 들어가시던 사이트에 접속해보았어요. 친노 성향 클럽이었는데 저는 그때 정말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그 사이트의 모든 글들이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웃음)

그 사이트에 접속하며 제 머릿속에도 정치의식 비슷한 게 형성됐던 것 같아요. 또 그때 마침 광장에선 촛불집회가 터지기 시작했죠. 저는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는데, 대신 집회에 참가한단 마음으로 사회과학 책을 닥치는 대로 보았어요. 그때 처음 읽은 책이 한홍구, 강수돌 씨 등의 강의를 모아 만든 <1%의 대한민국>이었고, 그 후 지승호 씨의 인터뷰집, 우석훈 박사의<88만원세대> 등을 탐독하며 제 머릿속에 활동에의 열망이 빠르게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청년유니온 가입은 이미 그때 예정됐던 것 같아요. (웃음)

조영훈 : 대학 자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남들은 재수 삼수해서 들어가는 서울 소재의 상위권 대학을 자퇴한 이유는 무엇이죠? 그리고 자퇴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는지?

김민수 : 그 질문은… 청년유니온 왜 들어왔냐는 질문보다 더 많이 들었던…. (웃음) 누가 그러더라고요. 아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A4용지 한 두어 장으로 정리해서 몇 부씩 갖고 다니다 질문 들어오면 나눠주라고. (웃음) 특별한 이유는 정말로 없어요. 그냥 대학에 가봤자 별다를 게 없을 것 같단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했어요. 그리고 대학에 가봤더니 정말로 딱 제가 생각한 정도로 재미가 없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 안 간다고 부모님과 싸웠거든요. 물론 부모님의 회유에 넘어가서 일단 대학은 들어가고 보는 거로 하고 그나마 제가 가장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과에 간 게 사회학과였는데, 그곳도 별로 다르진 않더라고요. 동기들은 전부다 스펙에 토익 얘기만 하고 있고…. 신입생들이 말이에요. (한숨)

대학생활 한 달 반 정도 하고 나니까 다시 그만둬야겠단 마음만 간절해졌어요. 그래서 휴학을 고려해봤는데 학교 측에서 휴학은 또 1년을 채워야 가능하대요. 대신 입학한지 두 달 안에 자퇴하면 등록금의 3분의 2를 돌려받을 수 있다더라고요. 바로 그만뒀지요. 그리고 돌려받은 등록금으로 유럽배낭여행 다녀오고. (웃음)

ⓒ장보연

"재미없는 대학 자퇴후 커피숍 알바를 시작했죠"

조영훈 : 대학 자퇴 후의 생활은 어땠나요?

김민수 : 자퇴 후 대안학교 교사로 잠깐 일했고요. 배낭여행 뒤에 다시 잠깐 그곳을 나가다 그만뒀어요. 그리고 수능시험 끝나고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는 커피숍 일을 하게 됐죠. 커피숍 일은 일 자체는 수월했어요. 저와도 잘 맞는 것 같았고. 하지만 새벽타임 근무를 맡아서인지 몸이 오래 못 버티더라고요. 주간근무를 하고 싶던 차에 마침 청년유니온 사무실 근처에 새로운 커피숍이 오픈해서 그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CCTV 때문에 생전 처음 문자해고란 걸 당하게 됐죠. (웃음)"

조영훈 : 문자해고요? 당시 상황을 좀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민수 : 네. 제가 일하다 잠깐 어깨 치료 때문에 하루 결근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다음날 출근했는데 매장으로 사장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알바생 출근했냐면서. 제가 전화 받고 출근했다고 하니까 제 목소리가 아닌 것 같대요. 그러면서 CCTV에 얼굴 좀 비춰보라고 그러더군요. 아마 집에서 CCTV로 매장을 지켜보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기분은 별로 안 좋았지만 얼굴을 카메라 쪽으로 들이밀었죠.

그러자 그 사장 어머니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고 뒤에서는 젊은 남자가 막 웃으면서 좋아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웃던 사람이 사장이었어요. 전 그때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돼서 그냥 '이거 뭐지?' 하고 당황하고 있었는데 사장 어머니가 그러더라고요. "너 때문에 내가 우리 아들(사장)과의 10만 원 내기에서 졌다. 10만 원이나 아들한테 줘야 되는데 어쩔 거냐"고. 전 그때야 모든 상황이 파악되었습니다.

알바생이 하루 쉰다고 하고 잘 안 나오니까 둘이서 저의 출근여부를 두고 내기를 한 거였어요. 기가 막혔죠. 10만 원이면 제가 1주일 내내 와플 만들고 커피 볶아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인데…. 제 생존이 걸린 노동이 누구의 유희거리에 불과하구나 싶어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하지만 뭐 그분들께 대들거나 하진 않았어요. 대신 저는 울적한 마음에 퇴근 후 저희 청년유니온 회원들과 이 일을 공유하고자 카페에 당시 상황에 대한 글을 남겼어요.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니 웬걸! 사장이 제가 유니온 카페에 쓴 글을 A4용지로 출력해 와서 제 앞에 들이미는 거예요. 제가 유니온 카페 게시판에 그 커피숍의 명칭을 정확하게 기재했었는데 아마 사장이 자기네 매장에 대한 누리꾼 평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하다가 그 글을 발견했나 봐요. 사장이 자기네 커피숍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네 어쩌네 하며 욕을 해대서 저도 '제 명예는 어떻게 할 건데요'라며 실랑이를 벌였어요. 결국 퇴근 후 문자로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쁘던지….

조영훈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 일 이후에도 잠시 동안의 노무사 공부 뒤에 다시 커피숍 일을 구하셨는데요. 특히 지난 번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에서 열린 '삶의 기록과 치유를 위한 글쓰기모임'에서 "한 시간 동안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일해도 내가 받는 시급인 최저임금 4320원으로는 내가 만든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실 수 없다"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 말 듣고 굉장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 "1년 동안 열심히 청년유니온 일했는데, 요즘 나는 대체 어디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김민수 : 커피숍이 워낙 알바생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사례가 많은 곳이잖아요. 유니온에서 노동상담 일을 하고 있고 해서, 공부한단 생각으로 다시 커피숍에 갔어요. 커피숍 일이 이제는 제 일처럼 저와 잘 맞기도 하고요. 지금 일 하는 곳에서 알바생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커피숍알바노동조합을 만들까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웃음)

유니온 일은 제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거거든요. 집행부에 있기 때문에 가끔씩 책임져야 할 일들도 발생하죠. 그러면 지칠 때도 있긴 해요.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잠깐씩 힘들 때가 있지만 또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금방 다시 좋아져요. 유니온에서도, 커피숍에서도 전 여전히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 많은 것들을 그곳에서 하고 싶고요.

그의 나이, 이제 스물한 살. 저 나이 때 나는 무얼 꿈꿨을까 하고 짚어봤지만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글쎄, 아마도 연애에 대한 음흉한 생각들만 가득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성에 대한 관심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난 그때 수많은 이성들이 노동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다.

민수 씨는 유니온과 커피숍에서 많은 걸 배운다고 하지만 오늘도 난 민수 씨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여전한, 수상쩍은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함께. 그가 지나칠 20대의 날들이 그의 바람대로 배움으로 가득하길,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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