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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야 말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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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야 말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입니다"

[전태일 통신]<74>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下

이 글은 <그 사람에게 가는 길-공지영에서 문익환까지, 24인의 삶을 스케치하다>(대한기독교서회 펴냄)에 실린 글입니다. 대한기독교서회의 동의를 얻어 2회에 걸쳐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요즘도 어머니는 정확하게 5시면 눈이 떠진다. 새벽기도 할 시간인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을 제대로 못 섬겼어도 5시 되면 깨우시는 걸 보니 하나님이 영 자신을 버리진 않으신 것 같다며 너무 신기하단다.

어머니는 예수를 괜히 믿는 게 아니라며 예수보다 더 좋은 게 세상에는 없는데, 이걸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데모하는 곳, 사람 죽은 곳, 구치소나 경찰서 이런 데를 다니다 보니까 자신에게서 보배로운 믿음이 다 소실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원통한 것은 믿음이란 보배를 잃어버리는 것은 쉽지만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거야. 얼마나 좋아.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면 부러운 것도 걱정도 없고, 기도하면 된다는 믿음에 꽉 잡혀 있으니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어. 그러니까 태일이 죽고 나서도 정신 잃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주검을 병원에 놔두고 노동청에 가서 싸워서 태일이 일기장 찾아오고 노조결성을 돕겠다는 노동청장의 약속을 받아내고, 태일이가 항거하면서 요구했던 것을 들어주겠다는 합의서를 받아낸 뒤에 장례식을 치른 거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동지(어머니는 '열사' 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며 동지라 부르라 했다.)의 분신 항거 이후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세상은 귀를 기울였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요구에 사람들은 눈을 열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박정희 정권은 이 일로 인해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에서 일어날 조짐을 보이자 조급했던 모양이다.

정보부 직원들은 어머니를 모처에 데리고 가서 돈 보따리를 보이며 빨리 장례식을 치를 것을 종용했다. 위압적인 태도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도록 강요하는 정보부 요원들을 피해 도망치는 기질을 발휘한 어머니는 그 뒤로도 수많은 취조를 당했으나 조서에 직접 도장을 찍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어떤 위협에도 '니네들이 다 작성했으니 너희 도장을 찍어라.'는 당당함으로 맞섰고, '구제불능'이라는 형사의 말에도 "너희한테 안 받아도 구제받을 데 많다."며 어머니답게 대들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시내에 빌딩 한 채 살 돈으로 어머니를 회유했다.

"그때 돈 1억이면 노동부 옆에 빌딩 하나 지어 자손만대 손에 물 안 묻히고 살 수 있었다고. 그런데 어떤 생각을 했냐면 돈을 받으면 태일이 피나 살이나 뼈를 먹고 산다는 그런 생각에 살이 떨리는 거라. 자기 노력해서 먹고 살아야지 자식 죽은 값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인간이라면 그런 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나는 여자고, 여자한테 무슨 힘이 있겠어요? 내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지혜를 주신다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물으면 대답을 해주셔. 어떻게 해서든 처리하게 만든다고."

▲ 이소선 여사. ⓒ매일노동뉴스(정기훈)

"내 몸이 가루가 되어서라도 태일이 부탁한 거 들어준다 약속했어"

어머니 얘기 중에 오도엽 씨는 지나가면서 '어머니의 기도발이 참 좋다.' 하면서 자신은 비신자이지만 '아플 때 엄마가 기도해주면 꼭 낫는다.'며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힘은 없지만 그때는 능력이 좀 왔거든. 하지만 이제 그것도 못해요. 영이 밝으면 생각을 주는 거라. 나는 내 몸이 가루가 되어서라도 태일이 부탁한 거 들어주겠다고 대답한 후에 할 수 없이 싸움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영이 많이 흐려졌지만, 조금은 남아 있는 거 같아.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다보면 어떤 생각인지 다는 몰라도 조금은 알게 돼. 나는 누구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어. 안 믿는 사람은 모르지만, 믿는 사람은 그 확신이 없으면 그냥 껍데기로 믿는 거거든."

옆에서 계속 지켜 서서 어머니 얘기를 듣기만 하던 아들 전태삼 씨는 어머니에 대한 책이나 세간의 평가는 다 그림자 같은 형상들이고 실제적으로는 어머니 내부에 일하시는 강건한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런 삶을 살아오셨다고 했다.

기도를 하면 하루에 서너 시간씩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너무나 가난하여 낮은 자리에 있었고, 학식이 전혀 없어 낮은 자리에 있었고, 모든 것이 부족해 가난한 자리에 있었지만, 광장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 자리에 필요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태삼 씨가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동에서 더 나아가 어머니가 가난한 것이 우리에겐 행복이었고, 배우지 못한 것이 우리에겐 너무 다행이었고, 그런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고 말하자, 어머니는 그를 외면하며 탁자로 눈길을 돌린 채 "나는 그런 생각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전투적으로 살아온 삶 때문에 믿음을 많이 팔아먹어 영이 흐려졌다고 여러 번 강조해 말씀하셨다. 안타까웠는지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일을 다 감당하고 오신 거예요." (전태삼 씨)
"감당하고 왔는지, 못 왔는지 어떻게 아냐? 무엇을 감당했다는 거냐. 내가 해놓은 게 뭐가 있는데?" (이소선 여사)

전태삼 씨는 어머니를 비롯해서 가족들 거의 모두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했다.

"우리 가족은 우리의 뜻으로 살지 않았어요. 형이 그 일을 시작함으로 해서 첫째는 어머니가 그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 가족은 드라마의 배역으로 초대받은 사람으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뜻이나 우리의 생각으로 이 생활을 하지 않고, 초대받은 사람들의 배역을 맡아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진지하게 말하는 아들의 말꼬리에 대고 어머니는 또 한 말씀 하셨다.

"아따! 엄청나게 말하네.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는 안 된다고 그랬어."

하나님의 은혜 받음을 어느 기회에 정리하고 싶어 하는 아들의 단순한 바람도 어머니는 자신을 높이지 않으려는 이유로 미리 단속시키고 있었다.

이소선의 삶은 오롯이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삶

돌이켜보면 전태일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소선'의 삶은 친정어머니가 그랬듯이 오롯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었다. 어머니란 이름 아래 위대하지 않은 여자란 없다. 어머니는 여자를 넘어서고 아내를 넘어선 불가항력의 에너지이지 않을까.

전태일의 분신 항거가 있기 며칠 전 교회를 간 어머니는 목사님으로부터 이기지 못할 시련이 오니까, 기도하고, 큰 시련이 오면 하나님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이제부터 닷새 동안 금식하면서 강대상 밑에서 기도하라고 하자, 어머니는 얼떨결에 '아멘' 해버렸다. 몸도 안 좋은 사람이 금식기도를 하자 3일째 되는 날 전태일이 찾아와 그만하라고 요청해도 어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닷새째 되던 날인가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불 홑청같이 하얀 보자기가 내 앞에 깔리는 거야.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태일이가 그 보자기 가운데 있어. 그러자 흰 두루마기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네 귀퉁이를 딱 말더니 태일이를 데리고 하늘 위로 막 날아서 올라가버렸어. 깨어나 보니 생시는 아닌 듯한데, 태일이가 하늘 위로 올라가는 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막내딸 순덕이가 데리러 와서 집에 가보니, 전태일은 옷도 깨끗이 입고 머리도 이발한 모습이었다. 책은 다 노끈으로 묶어놓았는데 그동안 쓰던 일기장은 노끈으로 여러 번 여물게 매여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동생들에게는 학용품 못 사줘 미안하다며 어머니 말씀 잘 들으라 하고, 어머니에게도 이제부터 효도할 테니 불효했던 것을 용서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1시에 구름다리에서 데모를 하니 꼭 나와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이 금요일이고 구역예배가 있는 날이라 못 나간다고 하자 전태일은 다시 부탁을 했으나 어머니는 결국 듣지 않았다.

"그날 구역예배 중에 동네 스피커에서 쌍문동 208번지 전태일이가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했다는 소리가 나왔어. 그런데 난 깜짝 놀라지도 않고, 그럼 나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태일이 친구가 와서 택시 타고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왔는데, 내가 빨리 가서 보면 기절해서 아무 일도 못하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그랬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하염없이 기도를 했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계속 하나님께 물었어. 휴우, 나는 태일이 이름 부르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많은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오늘 대한민국은 정치가 아니라 난리라는 거다. 난리 중에서도 큰 난리다. 어머니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은 난리 중에는 앞으로 나아질 거란 희망 때문에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일이가 죽은 이후로 제일 절망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울 수 없는 것일까. 전태일이 원하던 세상이 오기는커녕 더 퇴보하고 있으니 그런 것일까.

"붕대로 온몸을 감아놓은 숯덩이가 된 태일이가 나에게 정말 많은 부탁을 했어. 1시에 분신한 태일이를 내가 2-3시쯤 만났는데 그때부터 숨이 꼴깍 넘어갈 7시까지 아무 말도 말고 자기 얘기만 들어달라고 했어. 그 중에는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했는데, 자신이 보니까 있는 집에는 심방을 오지 말래도 계속 가고, 없는 집에선 오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안 가는데 그런 목사 밑에서 예수 믿지 말라는 말도 있었어. 수많은 부탁을 내게 한 뒤 마지막에 내가 부탁한 말 들어주겠냐 하더라고. 내가 정신이 있겠어. 인제 죽는갑다 이 생각뿐이지.

그런데 태일이가 빨리 대답을 하래. 아마 내가 조그맣게 대답을 했나봐. '엄마, 크게, 크게. 그래야 내가 잊어버리고 가지. 이걸 지켜주지 않으면 나중에 엄마를 만나도 외면할 거야.' 크게 대답하라는 소리에, 내가 그랬어. '그래,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네가 원하는 것은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까 태일이 가슴에서 막 끓는 것이 목까지 차올라서 그 애가 팔딱거리며 숨을 못 쉬는 거야. 의사가 와서 목에 감은 붕대를 탁 따니까, 피가 확 쏟아져. 그러더니 정신을 잃었던 태일이가 잠시 눈을 뜨면서 나보고 그래. '엄마, 배가 고프다.'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침묵)

그리고 숨이 졌어요. 그러니 내가 어찌 안 지킬 수 있겠어요. 돈이 좋다면 참 좋은 거고, 나쁜 것이라면 그것만큼 나쁜 게 없다고. 그 뒤에 청계노조 하면서 헌옷 장사해서 번 돈으로 청계노조원들 라면밖에 못 끓여줬는데, 늘 배고파하는 그 아이들에게 밥도 배불리 못 먹이면서도 누가 밥 사주면 절대 얻어먹지 말고, 돈 주면 받지 말라 했어요. 그러면 노조가 한꺼번에 날라간다 그랬어. 그 뒤 긴급조치 1호, 2호, 3호…9호까지,

어휴 나는 너무너무 많이 맞았어요. 비가 오려 하면 그냥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나를 자빠뜨려놓고 구둣발로 밟고 서 살이 뚝 떨어져 옷에 엉겨붙고 그랬어요. 집회를 할 때도 내가 몸집이 작으니까 사람들 안 보는 틈에 힘센 남자들이 팔꿈치로 급소를 팍 치고 가요. 그러면 정신이 멍해서 그냥 집회 끝날 때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앉아 있는 거야. 참…너무 많이 맞았어. 이런 구름 끼고 한 날은 한번 말하기도 너무너무 힘들어."


어머니야 말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

어머니는 생전의 전태일에게 약한 자를 돌봐주고 감싸주고 잡아주고 일으켜주고 같이해주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랬기에 전태일은 죽어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위선적으로 키운 것이고, 위선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나선 길 위에서 어머니는 전태일에게 가르쳤듯이 많은 노동자 딸, 아들에게도 가르쳤다. 노동자끼리 서로 잡아 일으켜주고 같이하는 친구가 되어야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어머니는 비정규직 문제로 노동자들끼리 분열이 생기는 것이 요즘 제일 안타깝다.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당연한 말을 듣고 큰 발견이라도 한 듯 가슴 벅차 했던 스무 살 무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사람이 참 좋다고 했다. 사람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 어머니가 오랜 세월 깨닫고 느낀 진리이다. 어머니는 "난 사람들 만나면 악수를 하지 않고 다 안고 품어줘.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그랬다. 어머니는 우리들도 일일이 다 안고 품어주셨다. 지치고 병든 어머니의 몸이지만 안기는 동안 힘을 얻은 사람은 우리들이었다. 너무 소중한 분, 어머니는 당신을 만난 사람들에게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정말 어머니야말로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살아 계셔 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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