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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꼭 타겠다던 어머니, 의식불명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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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꼭 타겠다던 어머니, 의식불명이라니요"

[전태일 통신] 의식불명 17일째인 이소선 여사

오늘도 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어머니는 병상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실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합니다. 너무 건강해 보여서 이제 눈만 뜨면 될 것 같다고.

오늘로 어머니가 병상에 누운 지 17일째입니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 심정 속에서 흘러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전태일재단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죄송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 나는 매일 한두 차례 찾아뵙고 재단의 소식과 노동자들의 소식을 전해주었고, 건강 상태를 체크하곤 했습니다.

하시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한 게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가 쓰러진 후부터 나를 자책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하고 싶어 하셨던 것을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만류했던 일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어 눈물을 나곤 합니다.

2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사회 원로·중진 시국선언 기자회견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비가 내리던 이날, 사회 원로로서 어머니가 기자회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저는 "어머니, 몸도 편찮으시니 집에 계시고 제가 다녀 오겠습니다" 하고 기자회견장에 갔습니다.

▲ 이소선 여사. ⓒ프레시안(손문상)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백기완 선생님은 이소선 어머니가 건강 문제로 오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머니와 백 선생님 사이에 점심 약속을 잡아드렸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날도 비가 내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날씨 좋을 때 만나는 것으로 만남을 기약 없이 미뤘습니다. 어머니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건강이 몹시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차 희망의 버스 날짜가 잡혔습니다. 어머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를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지난 1월 어머니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살아서 투쟁해야지 죽으면 안 된다."는 영상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 희망과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2차 희망 버스를 타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에도 부산이 먼 길이기 때문에 건강을 이유로 만류했습니다. 그 후 2차 희망의 버스를 타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님과 3차 희망의 버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번엔 당신 몸이 아무리 나빠져도 꼭 희망의 버스를 타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 끝에 그날 3차 희망의 버스를 전태일재단에서 대절하여 함께 타고 가자고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전태일재단에서 운영위원회 회의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회의에서 제3차 희망의 버스와 관련해 「전태일과 김진숙의 만남」이란 주제로 희망의 버스를 대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진 소식을 들은 것은 운영위원들과 함께 뒤풀이를 갖던 중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의식불명 상황이었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저와 희망의 버스를 함께 타고 가자며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어머니께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어머니가 쓰러진 지 16일째. 어머니께서 하시고자 한 많을 일들을 만류한 것을 참으로 후회합니다. 그저 건강하게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으로 만류했던 일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희망의 버스도 타게 해드리고, 가고 싶은 투쟁 사업장도 가게 해드릴 걸, 그렇게 모시지 못한 일이 자책으로 남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갔고,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쾌유를 기원했습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함께 활동하던 선후배들,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어머니와 아버지들, 민주노총의 전·현직 위원장들, 국회의원과 정치인들, 그리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많은 노동자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소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모두 아들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자책합니다.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꿈꾸던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은 아직도 멀었기 때문입니다. 한진중공업에서 보듯 회사에서 흑자를 내도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로 생계를 잃고, 비정규직은 어느새 1000만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미래가 없긴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을 잃은 후부터 어머니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 싶었던 꿈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노동의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노동 현실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로 대표되고 있고, 현재와 같은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는 버러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노동 환경을 지켜보면서 매일 근심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노동자의 처지가 이렇게 된 것이 남을 탓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쳐 싸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평생 살아오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하셨지만, 특히 어머니가 쓰러지기 사흘 전 3차 희망의 버스를 논의하면서부터 유난히 자주 하셨습니다. 귀가 아플 때까지 되풀이 말씀하셔서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어머니가 다짐하듯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노동자가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쳐 싸워야 된다."

어머니는 평생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가 뭉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노동자가 싸우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잃고 노예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똘똘 뭉칠 수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이 말씀을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꼭 전해주기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어머니는 현재 신경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뇌 손상이 큰 점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장기가 건강합니다. 호흡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지만 일부나마 자가호흡을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이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나실 수 있게 기원해 주십시오. 어머니가 4차 희망의 버스에 타실 수 있게 건강이 회복되라고 응원해 주십시오. 또한 4차 희망의 버스를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탑승해 주십시오. 끝으로 어머니가 늘상 하신 말씀으로 맺습니다.

"노동자가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쳐 싸워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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