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가 을지로2가에서 남산터널로 오를 때는 좀 쓰라렸다. 강제철거에 맞서 11세대가 애면글면 버티고 있는 명동3구역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주)명례방이니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 주식회사니 하는 유령회사들을 내세워 대우건설은 개인이 건물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세입자들을 발가벗긴 채 길바닥으로 패대기쳤다.
두어 달 가까이 노숙농성을 하던 11세대는 지난달 초에 용기를 내어 부직포로 막아놓은 카페 마리(Mari)를 뜯고 들어가 농성중이다. 서울을 비운 사이 야비하기 짝이 없는 대우건설이 명동3구역 철거농성자들을 또다시 길바닥으로 패대기치지 말란 법은 없다. 그게 좀 걱정스러웠지만 영업보상이나 시설투자비조차 지급하지 않으려고 편법을 쓸 정도의 머리는 있는 대우건설이라면 함부로 폭력사태를 일으키지도 않을 거라고 믿었다.
더군다나 11세대 세입자들이 농성장으로 쓰고 있는 카페 마리를 제외한 주변 건물을 야금야금 철거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주변건물의 철거를 완료하고 나면 마침내 카페 마리를 단숨에 철거할 계획일 텐데, 굳이 지금 폭력사태를 일으켜 여론을 악화시킬 미련을 떨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대우건설이 폭력배를 동원해 함부로 날뛰지 않도록 하는 일은 부산 다녀와서 얼마든지 고민할 일이었다.
ⓒ노동과세계(이명익) |
경찰이 막은 희망버스
하여 오로지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안고 부산으로 향했다. 버스는 쉽게 달렸다. 하지만 길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만큼 부산은 아득한 거리였다. 추풍령을 지날 즈음부터는 비까지 내려 부산이 구만리장천이었다. 목적지인 부산역까지는 거의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오후 1시 40분에 출발한 버스가 7시 10분경에 닿은 것이다. 짱짱했던 서울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추풍령부터 시작된 비는 장대비로 변해 있었다.
그 빗속에서 1부 행사는 끝나 있었다. 우비만으로 모자라 우산까지 쓴 채 2부 행사를 맞았다. 경찰의 움직임이 좀 의심스러웠지만 별일이야 있을까, 애써 외면하면서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밤 10시 반쯤 되었을까, 드디어 85호 크레인이 있는 영도조선소를 향해 선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데 별일이 다 있지! 소금꽃 김진숙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돌을 든 것도 아니고, 화염병을 든 것도 아니고, 쇠파이프를 든 것도 아닌데 경찰이 갑자기 차벽을 쌓는 것이었다.
돈을 좋아하는 경찰이니 통행료를 달라는가 싶어 몇몇은 아예 비에 젖은 천 원짜리 두어 장씩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다행히 심각한 충돌사태 없이 우회하는 방법으로 행진은 시작되었다. 전국각지에서 190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온 시민들과 부산시민들, 어림잡아도 1만여 명은 되는 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었다.
영도다리를 지나서도 또 얼마나 걸었을까. 신고 있는 구두는 물이 차서 절벅거렸고, 비에 젖은 흰 바지는 자꾸만 사타구니 부분을 조였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그 시간만큼 들뜸과 평온함이 교차하던 때도 없었다. 170명의 목숨을 걸고 6개월 넘도록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자기위안, 정히 말하면 그런 것 때문이었다.
영도다리를 건너고 봉래로터리를 지날 즈음 선두가 막혔다. 닭장차 서너 대가 정면을 막아섰고, 투명 아세테이트 보호판 위로 사복형사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게 보였다. 좌우 인도 쪽으로는 전경들이 촘촘히 막아서고 있었다. 영도조선소까지는 불과 700미터를 앞두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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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 최루액, 곤봉으로 누르는 경찰
전국에서 모여든 1만여 명의 시민들은 별수 없이 제자리 농성을 시작해야 했다. 한 시간이 흘렀고, 두 시간이 흘렀다. 빗발은 여전했다. 예닐곱 시간을 버스에서 보낸 데다 부산역부터 빗속에 두어 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시민들에게 부산지방경찰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완강했다. 가로등이 꺼지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는 그쳤다.
그동안 물러서지 않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살수차를 동원해 최루액을 뿜어댔다. 그것들은 쓰러진 시민들을 곤봉과 방패로 퍽퍽 찍어댔다. 심지어 서울서부터 함께 간 노들야학의 장애인들에게까지 달려들어 방패로 찍어댔다. 피가 흥건하도록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퍽퍽 찍어댔단 말이다. 뿐인가, 동트는 새벽녘까지 현장에서 무려 50명을 연행했다.
그런 건 경찰이 할 짓이 아니다. 조용히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 결코 절망하면 안 된다고 격려해주려는 시민들을 향해 최루액을 뿜어대고 방패를 휘둘러댈 일이 아니란 말이다. 단언컨대 그딴 건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한테나 할 짓이다. 조남호가 누군가. 그자는 인간의 품성을 잃었다. 자연 대한민국 국민의 품성도 잃었다.
2003년 김주익 열사의 죽음으로 이뤄진 노사 간 협상안을 표표히 날려버린 자로, 무려 170명이나 되는 노동자를 단박에 해고시킨 장본인이다. 다른 조선소의 노동자들 임금수준에 비해 60~70%에 불과한데도 그랬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순이익이 4000억 원에 이르고 당기순이익만 해도 512억에 이르는 알짜배기 기업이다. 그런 한진중공업을 적자운운하면서 오직 문 닫을 결심만 앞세우고 있는 자가 조남호란 말이다.
조남호는 한진중공업 지분을 고작 1%만 보유한 반면 한진중공업 홀딩스 지분은 49.3%나 보유하고 있다. 쉽게 말해 조선업 일체를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이전하는 게 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집에서 새는 쪽박은 나가도 새는 법이다. 수빅조선소에서도 이미 희망버스 운동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그자는 가는 곳마다 노동자의 삶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조남호란 자는 대한민국 부산에서뿐만 아니라, 나라 밖에서까지 한국인을 쪽팔리게 하는 가당찮은 인물이란 말이다.
국회청문회엔 두 번씩이나 불참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런 자를 부산지방경찰이 목숨 걸고 막아주고 있다. 경찰은 차벽 위로 올라가 정신없이 카메라를 눌러대어 선량한 시민들을 겁박했다. 쏘아대는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으려 하자 우산을 짓밟고 시민들을 올라탄 채 모질게 찍어댔다.
끝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까지 쏘아대면서 전진, 전진하더니 시민들의 방송차까지 빼앗았다. 그 안에 있던 운전기사와 몇몇 시민을 질질 끌고 가기까지 했다. 시민들 사이로 용역들이 돌아다니면서 시비를 거는 데도 그따위 것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부산지방경찰은 오직 시민들을 처참하게 짓밟았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건 견딜 수 없는 희극이다. 결코 경찰이 할 짓이 아니다. 어떻게 선량한 1만 명을 위로하고 보호해야 할 경찰이 도덕적 살인자인 조남호 개인을 위해 포악을 떨 수 있단 말인가. 권력이 자본의 노예가 된 지 오래지만 해도 너무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여태껏 반성도 없고 사과도 없는 한심한 부산지방경찰들에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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