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 크레인 중간 지점에서 농성 중인 박성호(50) 씨는 푸념하듯 이렇게 말했다. 박 씨의 부인과 고등학교 1학년 딸, 중학교 3학년 아들은 10일 새벽, 경찰에 모두 연행됐다. 남편을, 아버지를 보고 싶어 남해에서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
박 씨는 휴대전화 잔여 배터리 문제로 5분도 채 하지 못한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연행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부인이야 경찰 연행 등을 몇 번 겪어봐서 괜찮지만 애들은 무서움에 떨고 있을 거 같아 마음이 안 놓인다"고 심정을 간략하게 말했다.
박 씨의 부인과 자녀들은 10일 새벽,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정문에서 700미터 떨어진 봉래로타리에서 경찰과 대치 도중 연행됐다. 박 씨는 "두 달 전 아이들을 본 이후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질 못했다"며 "아버지를 보고 싶어 온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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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우리 가족이 무사히 풀려나길"
한진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박 씨는 사측이 발표한 400명의 구조조정 대상자에 포함된 해고자다. 주목할 점은 그는 지난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 전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매달고 죽은 뒤 이뤄진 노사합의를 통해 다시 복직된 사람이라는 점이다. 박 씨는 1991년께 회사에서 해고됐다.
당시 박 씨는 박창수 전노협 부산노련 부의장이 의문사를 당한 뒤 김주익 전 지회장과 함께 장례투쟁을 벌이다 경찰로부터 수배를 받았다. 이로 인해 박 씨는 1년 간 수배생활을 하다 92년 말 구속이 됐다. 이후 6개월 징역형을 받고 나왔다. 회사에서는 그 사이 그를 해고했었다.
복직 투쟁을 하며 살아왔다.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나 2003년 김주 전 지회장의 죽음으로 다시 한진중공업에 복직됐다. 그 사이 노조활동으로 두 번이나 더 징역을 살았었다.
그런 산전수전 다 겪은 박 씨라도 자녀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박 씨는 "여기서는 경찰과 대치중인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며 "뭐가 어떻게 됐는지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 "사람을 해고라는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이젠 가족들까지도 고초를 겪게 하는 게 지금의 한진중공업"이라고 분노했다.
박 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가족"이라며 "부디 우리 가족이 무사히 풀려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진중에는 애달픈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라며 "박창수 위원장 장례투쟁하다 해고되고 징역 세번 살고 2003년 목숨 바친 댓가로 15년 만에 복직됐다고 이번에 또 해고된 박성호"라고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크레인에 올라와 있는 그에게 마누라와 딸이 연행됐단 소식을 저는 차마 전하질 못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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