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 달을 갓 넘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리더십에 벌써부터 경고음이 들린다. 정국 주도능력의 미흡과 현안 대응력 부재를 질타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재오 최고위원과의 지도부 내 갈등은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르는 미봉 상태다. '박근혜 대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한 탓에 애초부터 당 장악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그 바탕이다.
국민투표론 '미끄덩'…각종 현안도 '좌충우돌'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이 점화된 초기, 호기롭게 '국민투표론'을 제기한 강 대표는 역풍을 맞았다. 외부 전문가들은 "한나라당이 작통권의 덫에 걸렸다"고 혹평했다. 한미관계 강화를 누구보다 강조했지만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한미 동맹에 문제 없다"고 공언한 일도 강 대표의 입지를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정치적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이 작통권 정국을 통해 던진 '자주'와 '민족'의 이슈에 말려들어간 꼴이 됐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작통권 환수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는 국가적 문제를 정쟁의 영역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강재섭 지도부의 보수적 이념색을 더욱 돋보이게 한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비판 속에서 김형오 원내대표는 △안보 불안 해소 △예산 확보 로드맵 △한미 간의 합의 △국민 공감대 형성 등 4대 선결조건을 제시하며 슬그머니 국민투표론을 거둬들이고 있다.
유진룡 문화부 차관 인사 파문 등 여권의 악재에 대한 대처 방법도 안일했다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은 보수 언론의 기사를 옮겨 놓은 수준의 '무조건 때리기' 식의 논평을 내는 것 외에 '창조적 공격력'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에 앞서 김병준 논문 표절 파문 때에도 한나라당은 '솜방망이 청문회'로 여론의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최대의 화두인 '민생'의 영역에서도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강 대표는 18일 '서민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한국음식업 중앙회와 간담회를 열었다. 강 대표는 △중소기업 살리기 △자영업자 및 봉급생활자 살리기 △청년 실업자 취업 문제 등을 민생 경제 3대 분야로 강조했으나 그다지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강 대표가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음에도, 그다지 준비된 내용 없이 열린우리당의 민생경제 행보를 뒤쫓는 듯한 인상만 남겼다.
정국 이슈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당내 문제도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얼마 전까지 강 대표와 한바탕 치고 받았던 이재오 최고위원은 3주 째 최고위원회의 등 당무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수해복구지역을 돌며 민생을 챙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강 대표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 독자행보다.
'허약체질' 강재섭號, 출구가 안보여
강 대표는 일단 '참정치운동본부'를 구성해 이번 주말 께 활동 계획을 발표하고 본격 가동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복안을 내비쳤다. '참정치운동본부'는 당 쇄신 운동의 일환으로 강 대표의 강력한 주문에 따라 구성됐으며 △정책역량 강화 △도덕성 회복 △당의 외연 확대 등의 활동이 주조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원장을 맡은 권영세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은 지금은 50%의 지지를 못 받는 그릇이지만 50% 지지를 받는 그릇으로 키워내는 운동이 참정치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준비위 간사인 박형준 의원은 "운동본부는 국회의원 중심이 아닌 당 안팎에서 각계각층의 핵심 요원들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라며 "절반을 외부 인사로 채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당의 공식 조직이 아닌 '별동대'로서 당을 감시하는 동시에 이슈를 주도하고 실천을 강제함으로써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경화' 요구만 쏟아진 전날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드러났듯이 집권 비전과 정책이 결여된 채 무조건적으로 추진하는 외연 확대 프로그램 등이 국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강 대표가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당은 미래의 국가경영세력으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한 대로 제1야당으로서의 건설적인 이슈 제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원내대표를 지낼 당시 강 대표는 "정부여당에 끌려 다니는 짓을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된다. 신선한 야채를 우리가 만들어 던져놓고 우리가 다 먹느냐, 여당이 반을 먹느냐를 논쟁하게 만들어야 화제의 중심에 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강 대표 스스로 정국 주도권을 잡는 '정공법'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강재섭 체제가 이를 실현해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구조적 한계가 옥죄고 있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강 대표 체제가 직면한 '무기력'은 기본적으로 '관리형 지도부'에게 필연적인, 당 장악력의 부실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막강한 당내 지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체제와 대비해보면 확연하다. 게다가 강 대표에게 '박근혜 대리인' 이미지가 고착화되면서 이명박계 등 비주류 측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다.
몇 가지 정치적 이벤트만 갖고는 강재섭 체제의 태생적인 허약체질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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