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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후쿠시마 1호기, 쓰나미 앞서 지진으로 이미 파손"

사고 원인 새 분석…국내 원전은 '해일' 대책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멜트다운'(노심용융) 사고 원인을 두고 새로운 분석이 나왔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쓰나미가 덮치기 이전에 지진 진동으로 인해 이미 격납용기 내부가 파손되어 방사능 증기가 누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

그간 일본 정부는 대지진 당시 쓰나미가 원전을 덮쳐 비상전력이 침수로 마비되면서 원자로의 냉각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일어났다고 설명해왔다.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내놓은 '안전 개선 대책'역시 고리 원전의 해안방벽을 높이고 비상전력 공급 시스템 개선 등 해일 대책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쓰나미' 이전에 지진 진동에 의해 원자로 내부 파손이 일어났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1971년 가동을 시작해 2001년과 2011년 2월 두번에 걸쳐 수명을 연장한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지진에 손상됐다는 것은 노후 원전의 위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쓰나미 전에 이미 지진으로 1호기 격납용기 배관 파손"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도쿄 전력 관계자는 "11일 밤 1호기의 원자로 건물에 시간당 300미리시버트 상당의 높은 방사선이 검출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때는 원자로 노심을 보호하는 격납용기의 밸브를 열어 내부의 압력을 낮추는 조치를 취하기 전이었다.

11일 밤 1호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원이 원자로 건물에 들어갔을 때 선량계의 경고음이 울렸고 내부에 높은 방사선을 띈 증기가 가득차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대피했다는 것. 단시간에 고농도의 방사능 증기가 가득찬 점을 감안하면, "쓰나미로 인한 냉각 장치 이상으로 원자로 압력이 높아져 배관이 파손됐다"는 도쿄전력과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설명을 100% 신뢰하기 어렵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지진의 진동으로 원자로와 배관에 손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쓰나미 전에 이미 1호기의 주요 설비가 손상됐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1호기는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 가운데 가장 먼저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 후쿠시마 원전. ⓒAP=연합

대지진 당시 데이터 공개하지 않아

앞서 후쿠시마 원전 4호기 원자로 설계 등에 관여한 원자로제조기술자 다나카 미스히토가 일본의 월간지 <세계> 5월호에 실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결코 예상밖이 아니다"라는 글에서도 1호기가 '지진에 의한 진동'으로 파손됐을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다나카 미쓰히토는 이 글에서 "(원자로 건물 내부의 격납용기의 압력이 단시간에 높아진 것은) 원자로 건물 내의 배관이 지진때 파손되고 그 파손부분에서 고온고압의 냉각재가 분출한 것이 아닌가 한다"며 "전원중단은 냉각재가 분출된 이후의 일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가 있었던 11일의 노심의 압력이나 수위 등 원자로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원자력재해대책본부가 공개하고 있는 데이터는 지진으로부터 12시간 뒤인 12일 오전 2시 45분 부터로 가장 중요한 11일 당시의 정보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

다만 12일 오전 2시 45분의 상황에서도 1호기의 상태는 2,3호기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통 운전시 압력용기 내의 압력은 70기압 가량이고 12일 오전 당시 당시 2,3호기의 경우 각각 56기압, 74기압 정도였다. 그러나 1호기의 압력용기 내부의 압력은 약 8기압에 불과했다. 반면 압력용기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의 경우 설계상의 최대 압력 4기압의 두 배를 넘는 8.4기압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다나카 미스히토는 "강한 진동 때문에 원자로 압력용기에 연결된 배관 중에 몇군데가 파손되어 많은 양의 냉각재가 계속 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 때문에 격납용기의 압력이 계속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기존에 지진에 대한 취약성이 우려되어 왔던 재순환배관(원자로 내의 냉각재를 순환시키는 펌프에 연결된 배관)의 파손을 추정했다.

"노후 원전이 지진에 특히 취약…내진설계 내 지진에도 방사능 누출"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쓰나미 이전에 지진으로 인해 파손됐다는 분석은 노후 원전의 안전성 문제와 직결된다. 일본 원자력 전문가인 마쓰야마 대학 장정욱 교수(경제학부)는 "여태껏 일본 정부는 원전 사태가 쓰나미라는 자연재해 때문인 것으로 이야기했으나 실은 노후 원전이 지진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2007년의 카시와자키 원전 사고 후에 실시한 내진 강도의 재검토 결과(2008년 4월 1일), 1호기와 4호기에 설치된 배관의 내진 강도를 1980년부터 28년간이나 잘못 설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의 내진 강도는 6.5라고 하나 2008년 5월에 일어난 진도 5의 지진에도 방사능이 누출된 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똑같은 규모의 지진이 덮친다고 하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와 진앙 사이의 거리, 발전소가 위치한 곳의 지질 조건에 따라서 진도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각 발전소마다 몇 gal(갈)의 진도를 견딜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며 "후쿠시마 발전소는 대개 400~500gal을 견딜수 있도록 내진 설계가 돼 있었는데 실제로 이 곳을 덮진 진도는 500gal을 넘었다"고 말했다.

갈(gal)은 지진에 의한 상하, 좌우, 가로세로 흔들림을 가속도로 표현한 단위로 일본에서는 내진 설계 등을 측정할 때 주로 이 단위를 쓴다. 같은 진도에서도 각 건물이 위치한 지반 등에 따라 각각 받는 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더구나 후쿠시마 1호기 같은 경우는 지은 지 40년이나 돼 노후화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이 정도의 진도에 내부가 큰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는 수명을 연장한 고리 원전에 대해 단지 쓰나미 중심의 대책만을 세운 한국에서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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