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 지역의 대지진과 지진 해일(쓰나미)에 이어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는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발표로 알려진 후쿠시마 사고 현장의 상황은 더욱더 악화일로로 치닫는 듯하다. 일본, 한국 등의 다수 언론이 마치 사고가 수습된 것처럼 입을 닫는 동안, 일본에서는 독립 언론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잡지 <季刊ピープルズ·プラン(People's Plan>도 그 중 하나다. 다음 글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이 잡지의 청탁을 받아서 기고한 '한국에서 본 후쿠시마' 전문이다. 이 글은 5월 말에 발간 예정인 <季刊ピープルズ·プラン(People's Plan> 6월호(제54호)에 게재된다. 김종철 발행인의 허락을 얻어서 <프레시안>에 미리 공개한다. <편집자> |
세계적 재앙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한 지 거의 두 달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사태 수습은 안개 속이다.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대량 방출되는 국면은 진정됐는지 모르지만, 원자로 안정화를 위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과연 폐로 작업이 순탄하게 행해질 것인지, 막연하지만 불안한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다. 현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점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이것을 준엄하게 추궁하는 언론도 있는 것 같지 않다.
생각할수록 기막힌 일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일시에 정든 삶터를 잃어버렸다는 것도 비통한 일인데, 미증유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일본이 국토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사고 발생 초기에 간 나오토 총리는 "동일본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보도되었다. 이것은 긴박한 국가적 대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태연하게 할 만한 발언인지는 모르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드러낸 말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대재앙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는 1기의 원자로가 폭발한 사고였지만, 그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북반구 전역에 미쳤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는 어느 정도에 달할지 추측하는 것도 두렵다. 왜냐하면 후쿠시마에서는 지금 냉각 시스템이 작동 불능에 빠진 원자로가 3기나 될 뿐만 아니라, 4기의 원자로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봉의 저장 상태에 심각한 이상(異常)이 발생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수습 가능성 자체가 심히 의심스러운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대기와 해양으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도 엄청난 것이지만, 앞으로도 기약 없이 이 상황이 계속될 것을 생각하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지금 일본은 세계를 향하여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일본이 이렇게 되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선진국이면서 옛 장인 정신이 아직 많이 살아있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원전 관리와 지진에 대한 대비가 어떻게 저 정도로 허술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지진이 빈발하는 나라에 무슨 생각으로 50기가 넘는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세계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하게 참혹한 원폭 피해를 입었던 나라가 아무리 전력 생산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핵기술을 어떻게 큰 저항 없이 순순히 수용해왔을까.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이미 반세기 전에 미나마타(水俣)라는 비극적 재해를 통해서 근대적 산업주의 문명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폭력성을 뼈아프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나라가 아닌가.
되풀이된 역사
3월 16일 후쿠시마의 위기가 한참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서, 아키히토 천황(明仁天皇)은 "이 불행한 시기를 잘 넘길 것을"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을 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했다. 이때는 국가적 대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은 사실상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비록 실권 없는 상징적 존재일지라도 천황이 나선 것은 그만큼 위기가 심각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천황의 대국민 방송은 1945년 8월 이후 최초의 일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것인가. 66년 전 히로히토 천황(裕仁天皇)의 대국민 라디오 방송의 배후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 천황의 방송을 촉발한 것은 후쿠시마에서의 원전 재앙이었다. 어느 경우이건 재난의 한 가운데는 핵(核)이 있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참화를 겪은 이후 일본 국가가 지향한 것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조로 한 경제 국가의 건설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우여곡절을 거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후쿠시마의 원전 재앙은 이 성공이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원자력 발전 시스템이란 생명과 평화와 민주주의 원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가장 광포한 폭력의 기술이다. 그것은 자연환경과 사회적 약자와 미래 세대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자폐적으로 폭주하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단기적 이윤 추구 외에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는 자본의 논리와 자기 팽창 욕망에 사로잡힌 국가의 논리, 그리고 근대적 과학기술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끔찍한 요괴이다.
이른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것도 실은 거짓된 슬로건에 불과하다. 원래 1953년에 아이젠하워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제창했을 때, 그것은 미국의 핵무기 양산 체제의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지, 진정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핵의 가공할 위력을 알게 된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핵에 대한 극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와 군부는 핵무기 대량 제조에 요구되는 예산 확보를 위해서 핵기술이 전력 생산이라는 평화적 목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핵연료 사이클을 통해서 발전용(發電用) 원자로는 핵무기 재료의 풍부한 공급원이 될 수 있었다.
핵기술에 관한 한, 군사용과 민수용의 구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원자력 발전소는 잠재적인 핵무기 제조 공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러 국가들이 원전을 운영·확대하고자 기를 쓰는 것은 결코 전력 수요를 충족하려는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핵무기를 확보하고자 하는 국가주의적·군사적 야망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협소한 국토 위에 지금 50기가 넘는 상업용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결국 그와 같은 국가주의적·군사적 논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어느 정부든지 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다. 오히려 원전을 증설하기 위해서 정부와 관련 산업계가 전력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전력 수요 예상치를 조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일본이라는 국가 역시 이러한 속임수와 거짓말을 계속하면서, 생명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 그 어느 것과도 양립할 수 없는 원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평화 산업을 이룩해 왔다면, 그 평화는 명백히 거짓 평화이고, 그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후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원리는 '평화헌법'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물론, 일본의 전후(戰後) 체제는 전전(戰前)의 군사주의·침략주의 노선을 포기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후에 일본이 국내외적으로 평화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선양하고, 일본의 정치와 경제가 그 노선에 충실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전후 일본 경제가 부흥하는 데에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무엇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따른 특수(特需)였다. 이웃나라가 겪는 불행과 재난이 일본에게는 오히려 경제적 도약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발판 위에서 전개된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 패턴은, 간략히 말하면, 국내적으로는 식량 자급 정책의 방기 위에서 독립 자영농민과 지역 경제의 자립성을 무너뜨리고, 대외적으로는 무역과 원자재 확보라는 명분 밑에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민중의 생존·생활 기반을 빼앗거나 손상시키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이것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풀뿌리 민중의 자율적 생존 능력에 가하는 전면적인 공격과 유린의 일환이기도 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강력해진다는 것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무자비하게 '민중의 평화'를 공격하고 유린하는 메커니즘을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전후 일본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전전(戰前) 일본의 침략주의적 시스템과 본질적으로 궤(軌)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전(戰前)과 다른 것은 노골적인 무력으로 타국의 주권과 영토를 유린하는 게 아니라, 평화 산업과 통상 무역이라는 형태로 자국과 개발도상국 민중의 삶의 기반을 침식해왔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전후 일본이 국가적으로 표방해온 자기 정체성이 무엇이건 간에 일본 주류 세력은 늘 자신이 잘 살기 위해서는 자연이나 사회적 약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제로 전후 일본이 과거에 아시아 이웃나라들을 침략하거나 식민지로서 지배해왔던 사실에 대해서 진실로 겸허한 반성을 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오히려 일본은 끊임없이 야스쿠니 신사나 역사 교과서 기술 문제 등으로 말썽을 일으키며, 이웃나라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왔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권력 엘리트들과 보수층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상당히 체제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경우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의외로 둔감한 태도를 드러내온 게 아닌가 싶다. 전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사이에서 전쟁 책임을 묻는 작업은 비교적 활발히 행해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이웃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자신에게도, 얼마나 큰 해독을 끼쳤고, 치명적인 역사적 후유증을 남겼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철저한 인식을 드러낸 지식인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일본이 전후에도 계속해서 아시아 이웃나라를 경시해온 것은 결국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메이지 초기부터 일본은 아시아의 안에 있으면서도 늘 아시아의 밖에 있는 자신을 몽상해왔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제창한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사상은 아직도 일본인의 정신 구조의 근저에서 무의식중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패배에서 역사적인 교훈을 학습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학습의 결핍이 지금의 후쿠시마 사태라는 미증유의 재앙으로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프레시안(손문상) |
'경제 성장'으로부터의 탈각
전전(戰前)에 일본이 아시아 이웃나라들을 침략했을 때, 그것은 흔히 "인구는 많고 자원이 결핍된" 일본으로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변호되곤 했다. 전후(戰後) 일본 경제가 국내외적으로 자연환경과 풀뿌리 민중의 자립적 생활 기반을 파괴해온 것도 마찬가지 논리로 정당화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과연 타당한 것이라고 평가될 수 있을까.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국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지금, 일본이-그리고 선진 산업 국가들 전부가-정말로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야 할 것은 이 질문이다.
지금도 후쿠시마 사태로 당장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풀뿌리 민중이다. 높은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도쿄에서 "안심해도 된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사고 현장에는 시급 1900엔짜리 하청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식사도,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극히 위험한 작업을 목숨을 걸고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땅을 잃어버리고, 바다를 빼앗겨, 농사도 못 짓고, 고기도 잡을 수 없게 된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의 농민들과 어민들은 비탄과 절망에 빠져있다. 그들은 도쿄로 나와 연일 시위를 하면서 "우리의 삶을 돌려 달라! 우리의 미래를 돌려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안전성이나 경제성, 환경적인 측면을 포함해서 여하한 측면에서 보더라도 가장 어리석은, 결함투성이의 전력 생산 방식이다. 그렇기에 반핵·반원전을 주장하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추진 세력은 국책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거짓 논리를 구사하며,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계속적으로 원전 건설과 가동을 강행해왔다. 사회 전체적으로 한줌밖에 안 되는 집단인데도, 그러한 원전 추진 세력의 전횡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에게는 막강한 권력과 돈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국민 다수로부터의 지지 혹은 적어도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원전 사업을 왜 지지하거나 묵인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에 깊이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그리고 한국인들도) 국가 전체 차원이든, 개인적인 차원이든, 보다 많은 물자와 에너지의 생산·소비가 계속됨으로써만 자유롭고 풍요로운 선진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미신에 붙들려 살고 있다. 그리하여 위험하다는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원전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온 것이다.
그런 생각의 귀결점이 바로 후쿠시마 사태이다. 사람들은 삶을 위해서 경제 성장 논리를 받아들였고, 그 논리에 따라 원전을 비롯한 반생명적·비인간적·반민중적 산업 체제를 용인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가 삶 자체의 붕괴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돌려 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후쿠시마의 풀뿌리 농민과 어민들에게 닥친 재앙은 그들에게 국한된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원전으로 상징되는 반생명적·비인간적·반민중적 산업 체제가 사회를 계속적으로 지배하는 한,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재앙이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일본인을 포함해서 세계 곳곳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후쿠시마 사태로 이미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손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정말 필요한 것은 경제 성장이 과연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따져보는 일이다. 물론 풍족한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 자체는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욕망의 단기적 충족을 위해서 장기적 생존·생활의 토대를 파괴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 성장 논리가 그대로 통용된다면, 최소한이나마 인간다운 사회의 존속에 필요한 자연적·사회적 토대 자체가 조만간 소멸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은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깊은 무력감 속에 빠져 있다.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알지만, 이미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체념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거의 모든 지적, 정신적, 문화적 영위 속에 내포된 근원적 니힐리즘의 주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나마타(水俣)>의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禮道子)의 말처럼, 이 시대는 "인간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되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한 사태를 허용해서는 안 될 책임, 즉 '삶에의 궁극적인 책임'이 우리들에게는 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새삼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경제 성장 시대'란 장구한 인류사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래 인간의 생활에서 물자와 에너지를 풍부하게 소비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일탈이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문화에서 늘 장려되어온 것은 간소한 생활양식이었다.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고전 그리스의 문화적 성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과 가난은 쌍둥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즉, 옛 그리스인들이 자유와 자치에 입각한 위대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간소한 생활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악순환을 구조적으로 강요하는 성장 경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파탄에 빠트린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풍부한 물자와 에너지가 아니라, 풍요로운 인간관계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와의 관계까지도 당연히 포함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향수할 미래 세대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지금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서 우리들이 이 근본적인 진실을 깨닫는다면,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직도 원전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성장 중독증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다행인 것은, 지금 도쿄에서 원전 중지를 요구하는 데모가 소규모나마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데모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살리는 데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자주적 의사 개진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시민들의 결집된 실천적 행동만이 근본적인 정치·사회 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역량을 바쳐 이 실천적 행동의 활성화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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