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조사에서 한국은 그동안 유지해 오던 "언론자유국" 지위를 잃고 "부분적인 언론자유국가"로 지위가 한 등급 떨어졌다. 언론자유 2등급 국가로 추락한 것이다. 언론자유의 후퇴는 곧 민주주의의 퇴보를 의미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언론자유가 여러 부문에서 침해당한 결과이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 만큼 후퇴했다는 이야기이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언론자유 국가' 그룹 안에서 '꼴찌'를 오래 동안 유지해 오던 한국이 이명박 정권 들어선 이후 정권이 기사를 검열하고 기자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방송사 경영진에 정권과 '동맹' 관계에 있는 자들을 앉히는 인사를 통해 언론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도하지 않는 중대한 진실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자유 감시단체가 치밀한 조사를 통해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명박 정권에게는 기분 좋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만한 발표이다. 그 동안 하는 행동으로 보아 이명박 정부과 과연 이것을 충격을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지만…. 멀리서나마 우리의 현실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하나의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은 틀림 없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충격은 이 중대한 사실이 인터넷 언론을 제외한 한국 언론에서는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에만 보도되고 다른 곳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자유 국가'에서 언론자유가 억압받는 '부분적 자유국가'로 강등됐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수치스러운 뉴스'인데도 언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해서 신문과 방송이 이 뉴스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저널리즘의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언론자유가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게 만든 원인이 조·중·동 자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격지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지 않고 프리덤 하우스 보고가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보도를 안 했다면 그것은 더욱 충격적일 수 있다.
그래도 프리덤 하우스의 연례 언론자유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하나의 큰 위로를 느끼게 된 것은 조 중 동이 프리덤 하우스 언론자유지표를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MB 정권의 입이 됐다고 비판받는 한국방송(KBS)의 <미디어 비평>이 지적했다는 사실이다(6일 밤 11시40분). KBS <미디어비평>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선거참모(김인규)가 사장으로 들어와 공영방송을 정권방송으로 타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아비판을 포함해서 우리 언론의 보도를 비한하고 개선해 보려는 고민을 보이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 2011년 언론자유지수 지도. 한국은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되어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대만이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돼 있고, 오세아니아권의 파푸아뉴기니도 '언론자유국'으로 평가돼 있다. ⓒ프리덤하우스(☞ 지도 원문 보기) |
베를루스코니와 이명박, '언론자유 추락 주역'까지도 유사
프리덤 하우스 보고는 그 총평에서 2010년이 지난 10년을 통해 언론자유 침해가 가장 심했던 한 해였다고 보았다. 탄압적인 정권은 전통 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빠르게 신장하는, 인터넷에 바탕을 둔 뉴 미디어의 독립을 제한하는 새 기술을 개발해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끈 것은 언론자유가 상당히 후퇴한 국가를 나열한 대목이다. 이집트, 온두라스, 헝가리, 멕시코, 태국,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국이 끼어 있다. 언론자유 위축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
프리덤 하우스 보고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15%, 다시 말하면 6명 중 한 사람만이 정치뉴스 보도가 자유롭고 기자들의 안전이 보장돼 있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42%는 부분적으로 언론자유가 인정된 국가에서 그리고 43%는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국가 수로 보면 68개 국(35%)이 언론 자유국가, 65개 국(33%)이 부분적인 언론 자유국가, 63개 국(32%)이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로 분류된다. 언론자유국, 부분적인 자유국, 언론자유 부재국이 3등분 돼 세계 국가나 영토의 3분의1이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구를 기준으로 평가할 때 언론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은 이제 불행히도 세계 인구의 15% 그룹에서 탈락했다. 우리는 세계 인구의 42%가 속해 있는 언론자유 2등 국가 신세가 됐다.
프리덤 하우스 연례 언론자유 인덱스는 2010년과 한 해 전인 2009년과 비교하면서 자유국이 하나 줄고 부분적인 자유국이 하나 는 것 말고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차이를 만든 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2010년은 한국 언론자유의 치욕의 한 해였다. 조·중·동이 종편에 진출해서 방송의 독점을 깨고 언론자유의 폭이 넓어졌다고 주장하는 홍보와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프리덤 하우스 보고서는 한국에 관한 평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시아 지역은 2010년에 두 개의 중요한 지위 변화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자유 단계의 맨 끝자리를 차지한 한국은 2점이 감점돼 부분적인 자유 단계로 후퇴한 것이다. 그 원인은 관(官)의 검열 증가와 함께 미디어가 보도하는 뉴스와 정보 내용에 정부가 영향을 미치려고 한 기도가 포함된다. 지난 수년간 다수의 온라인 논평이 친북(親北)견해라든가 또는 반(反)한국적 견해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현 보수정부는 또한 기자들의 반대에도 물구하고 큰 방송사 경영진과 대형 미디어의 고위직에 이명박 대통령 측근을 임명함으로써 언론에 개입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지만 프리덤 하우스 조사팀이 이명박 정권의 언론정책의 반 민주적 조치를 정확히 지적했다고 본다. 한국의 '부분적인 언론 자유국' 지위는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부분적인 언론 자유국'으로 낙인찍힌 이태리와 쌍벽을 이룬다. 이태리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자신이 관련된 갖은 스캔들 보도에 간섭한 것이 부분적인 자유국으로 강등된 이유이다. 역시 토건업에서 돈 벌어 텔레비전 업계로 진출하고 텔레비전을 이용해서 정계에 진출한 베르루스코니는 국정 운영을 기업 운영과 동일시하는 점에서 MB와 아주 유사한 정치인이다. 또 정치와 함께 언론을 타락시키고 민주주의 자체를 후퇴시킨 주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조·중·동 '종편 거래'는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프리덤 하우스가 언론자유 지수를 결정함에 있어서 정부의 언론 탄압 못지않게 언론 자체의 행동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서 한국 언론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한국 언론자유가 후퇴한데는 언론 자체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조·중·동은 종편 허가권을 얻는데 만족하고 지금 자아를 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덤 하우스의 한국언론자유 평가를 계기로 조·중·동은 우리 언론사를 돌아보고 자신들이 앞으로 한국언론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지로서 나라를 없는 일제시기에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일제 말기에 얼마나 부끄러운 친일 보도를 했는지는 그들이 만든 신문 지면이 증언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알아도 두 신문의 막강한 권력에 위압돼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언론보다 국민이 더 민주화에 앞서 가고 있다. 국민이 더 용감해졌다. 이제 누구도 역사의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신문기업의 위기를 빙자해서 종편을 따기 위해 조·중·동이 이명박 정권과 야합하고 언론의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 온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번에 프리덤 하우스의 한국 언론 지위 강등을 보도하지 않고 묵살한 것도 그 것을 방증하는 실례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조·중·동은 일제의 친일 언론 행태(후발한 중앙은 포함 안 됨), 군사정권 30년 간 독재 묵인 내지 지원과 언론기업 지원을 '교환'한 유착 관계에 이어 '종편 거래'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앞의 두 사건은 강권에 못 이겨 부득이 했다는 "변명"이라도 내놓을 수 있지만 마지막 "종편 거래"는 완전히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권언유착의 변명이 어렵게 됐다. 다가올 역사의 심판을 생각해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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