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川〕를 기억할 수 있다. 여름이면 갈라질 듯 빛나던, 물속에서 오래 견디기 내기를 하고 나와 조금씩 어지럼증을 느끼며 누워 물기 말리던 자갈들이 깔린."
뒤이어, 겨울에 내에서 타던 얼음배의 추억이며 그 내 주변에 우중충한 상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느낀 상실감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가 삼십여 년 전에 쓴 그 글을 읽는 동안 물밀 듯 일던 반가움. 고향의 시가지 외곽에서 흐르는 내가 내 마음속에서만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물살 여울지듯, 마음이 잠시 가볍고 환해졌다.
그 내가 없었더라면, 내 유년기와 소년기의 풍경은 좀 더 단조롭고 갑갑했을 것이다. 읍 주변의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서 이룬 내는, 읍 외곽을 흘러 서해의 바닷물과 합류했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 날부터,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면 나는 내로 향했다. 개망초며 명아주, 소리쟁이 등이 멋대로 섞여 자라는 냇둑 위에서 서성이거나 쪼그리고 앉아 내를 오래 지켜보았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냇물을 오래 바라보면, 괜찮다고, 모든 게 다 지나갈 것이라고, 지금 내 마음을 욱죄는 그것도 냇물에 실려 흘러가리라고, 물살이 정답게 속삭이고 햇살은 등을 토닥여주었으며 바람 또한 볼을 쓸어주었다.
때로는 비탈진 냇둑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징검다리의 징검돌에 앉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물은 작은 포말을 일으키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유유한 물살이 되어 흘렀다. 물살은 작게 재잘거리고, 수초의 줄기가 물속에서 살랑거리고, 송사리가 물속에서 물살을 거스르며 올라가고……. 그렇게 물과 놀다 보면 어느 순간, 물이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흘러가는 것인지 알 길 없어졌다. 멀리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차의 소음이며 냇둑을 걸어가는 어른들의 말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쪼그린 다리가 저려서 일어날 즈음이면, 욱죄었던 마음도 물살에 흘러 녹은 듯 고요해졌다.
그 내〔川〕보다 훨씬 너른 강이 흐르는 곳에서 살게 된 것은 고향을 떠난 지 이십오 년쯤 지난, 사십대였다.
대학 시절을 보낸 서울에도 강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도시의 강은 내게 버스나 전철을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는 풍경일 뿐이었다. 때로 친구들과 강가로 나간다 한들, 대도시의 한복판에 흐르는 너른 강은 이상하게도 무정물처럼 보였다. 강가에서 낚시를 드리운 사람을 보면, 저 물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남한강이 흐르는 작은 읍에 머물면서, 나는 비로소 강을 만났다. 아침에 베란다 문을 열면, 강 위에서 뽀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강이 내쉬는 숨결 같았다. 어떤 날엔 아침부터 환한 햇살을 되쏘아 은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강과 만났다. 그 읍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어린 시절, 물이 어찌나 맑은지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까지 환히 보이던 강을 기억하곤 했다.
내가 그리로 간 지 얼마 안 되어, 한 친구가 그 읍으로 이사했다. 가까운 이로부터 아주 깊게 상처를 입고, 게다가 주변의 오해까지 사 살던 곳을 떠나온 친구였다. 그 친구의 거처와 내 거처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읍내에서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나면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히 강변으로 향했다. 강변의 벤치는 한갓지게 앉아 이야기 나누기에 좋았다. 친구는 말을 하다 말고, 단어를 고르다 말고 자주 입을 다물었다. 말과 진실을 왜곡시키는 사람에게 휘둘린 나머지 말에 대한 믿음을 잃은 시기. 친구는 말문이 막힐 때면 자주 강에 눈길을 돌렸다. 제 안으로 깊이 침잠하는 친구의 눈앞, 강물은 덤덤히 흐르고 있었다. 강바람이 친구의 머리카락을 날려 얼굴을 가렸다. 섣부른 위로를 건넬 수 없던 나 또한 침묵을 지켰다. 강에서 떠가듯 헤엄치던 오리는 이따금 물속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강물에 비친 오리 그림자 때문일까, 오리가 고개를 물속에 들이미는 건 물속의 저와 만나려는 헛된 시도로 보였다. 어릴 적 혼자 쪼그리고 앉아 내를 바라보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의 불안과 슬픔을 씻어주던 냇물처럼, 저 강이 친구의 마음에 얼룩진 기억들을 씻어내 흘려보내 주기를 바랐다. 그러는 사이 해가 사위며 강물은 멍든 것처럼 검푸른 빛깔로 흘렀다.
그 읍에서 살던 어느 여름날 새벽 산책길이었다. 야산을 낀 들길을 걷다가 나팔꽃을 보았다. 그해 들어 나팔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연분홍 꽃잎에 횃불 모양으로 보랏빛 골이 타래타래 선명한 꽃봉오리였다. 채 피어나지 않은 그 꽃봉오리가 예뻐서, 무심코 손을 뻗쳤다. 그때였다. 내가 잡으려던 꽃봉오리가 흠칫, 뒤로 물러났다. 그야말로 놀라서 뒷걸음질치듯. 바람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잠포록한 날이었다. 게다가, 같은 줄기에 매달린 꽃송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저절로 읊조리게 되었다. 꺾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예쁜 아가의 볼을 보면 만져보고 싶듯, 손을 대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에, 대체 내 손이 나도 모르는 무슨 욕심으로 살기 같은 걸 뻗친 것일까. 아연한 나는 펼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식물도 느끼며 생각할 줄 안다는 골자의 책들을 읽고 공감하긴 했지만, 내 눈으로 그걸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형태는 정말 소박하고 강과 물의 흐름이 크게 강조됐다."
20세기로 막 들어선 조선에 온 프랑스인 지리학자가, 조선에서 발간된 조선 팔도 지방도, 조선 전도, 아시아 전도 등을 보고 한 말이다. 그만큼 강과 물을 중시한 것일 테다.
ⓒ조우혜 |
오랜 세월, 구부러질 곳은 구부러지고 휘어질 곳은 휘어지고, 함께 만나 곧바로 흘러야 할 곳은 곧바로 흐르며 수많은 생명을 살려온 강. 그 강들에 지금, 나팔꽃을 멈칫하게 했던 그 새벽의 내 손길에 견줄 수 없이 두려운 중장비의 굉음이 차오르고 있다. 강을 반듯하게 펴고 콘크리트를 쏟아붓는다고 한다. 물을 더 확보하고, 홍수를 막고, 전기를 얻고, 심지어 사람들이 자연과 더 가까워지도록, 자전거를 이용해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등의 명분을 내세워가며. 원래의 뜻에서 멀어진 채 나부대는 단어들이 말의 진정성을 모욕하는 동안 중장비들은 거침없이 강을 능욕한다. 도처에서, 봉기하듯 벌어지는 저 거대한 공사. 누군가는 그 흐름을 막으려 소신공양을 하고, 누군가는 무리한 공사 때문에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농토를 잃어서 죽음을 선택하고……. '살리기'라는 이름 아래 사람과 동식물이 숱하게 죽어가도 중장비는 여전히 강에서 버티고 있고, 콘크리트가 부어진다.
정말로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면, 말 그대로 국가의 '백년대계'라면, 그 말에 걸맞게 진척시키면 될 것이다. 길어봤자 백 년의 수명을 가진 인류가 지상에 나타나기 훨씬 오래전에 생겨나, 비와 바람과 세월의 물살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저 강의 기미를 살피고, 자연의 유기성을 헤아려 삼가며, 그렇게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해나갈 일이다. 적진에 진군하듯, 중장비를 앞세운 채 무작스럽게 파헤치고 짓밟고 들이붓는 저 공사 앞에서, 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유정물과 무정물이 공습을 만난 양민처럼 엎드려 떨고 있다.
모든 것은 흘러가지만, 그러나 그냥 흐르게 내버려두었다가 두고두고 통탄할 일들도 있을 것이다. 자연의 자정작용自淨作用,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무례와 탐욕이 어떤 응보를 부를지, 두렵다.
그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괴'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이제는 막바지로 치달은 4대강 사업에 관한 세 권의 책이 출간됐다. 고은 외 99명이 쓴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이하 아카이브 펴냄), 강은교 외 28명의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성남훈 외 9명이 참여한 <사진, 강을 기억하다>(이미지프레시안 기획)가 그것들이다.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문인들과 사진가들이 기록한 '강의 오늘'을 <프레시안> 지면에 소개한다. 오늘도 포클레인의 삽날에 신음하는 '불면의 강'의 이야기는 한 달여 동안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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