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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어주려 곧지 않고 부러 굽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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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어주려 곧지 않고 부러 굽었소

[이 많은 작가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20> 최승호 시인

한국에는 사막이 없다. 고비사막에서 돌아와 내가 새삼 알게 된 것은 한반도에는 사막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비에서 나는 날마다 누런 흙먼지 낀 눈으로 황막한 사막을 바라보곤 했다. 물 없는 고비, 땅에는 돌멩이와 거친 모래와 낙타의 뼈가 뒹굴고 있을 뿐 들장미 한 송이 없었고, 모래산 위에 하늘이 펼쳐져 있었지만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강물이 말라버린 텅 빈 강들과 호수가 통째로 증발해버린 호수들,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광활한 초원은 황량한 대평원으로 변해 있었고, 고비는 사막의 영토를 더 확장하면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사막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다소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이곳에는 바다가 있다. 갯벌이 있다. 갈매기가 있다. 산에는 나무들이 있고 땅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강은 동쪽의 높은 산들로부터 서쪽으로 흘러내려 바다로 흘러든다.

사막이 없는 나라, 거대한 낙타 등처럼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나라. 강원도에는 산들이 많다. 산을 넘으면 산이고 고개를 넘어가면 또 고개다. 길들은 꼬불꼬불하고 물은 구불구불하게 흐른다. 지금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고 있지만 나는 많은 시간을 산들에 둘러싸인 내륙 분지, 춘천에서 보냈다. 춘천에는 인공 호수가 세 개나 있다. 소양호, 춘천호, 의암호가 그것이다. 그 안개 잦은 분지에는 댐 때문에 흐름이 끊긴 강들이 있다. 소양강, 대바지강, 신영강. 쓰레기와 오물이 불어나는 인공 호수 바닥에 잠들어버린 그 강들이 다시 시퍼렇게 살아 흐르는 날은 언제일까. 다시 말해 아름다운 강들이 죽은 춘천에는 댐이 세 개나 있다. 댐. 댐. 댐. 그 댐들도 언젠가는, 어쩌면 한 이만 년쯤 뒤에, 폐석 조각들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도마뱀이 붕괴된 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햇볕을 쬐고 있지 않을까. 그때는 어쩌면 고향을 잃고 방황하던 연어들이 댐을 넘어 물비린내 그리운 어린 날의 고향으로, 어머니의 개울로 올라가고 있지 않을까.

나는 물의 행성, 지구라는 수려한 별의 온대 지방에 살고 있다. 온대는 점점 아열대가 되어간다. 그래도 아직은 겨울이 오면 태백산맥에 많은 눈이 내린다. 대설주의보 속의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 눈 덮인 산봉우리들은 하늘로 희디흰 머리를 들며 솟아오르고 폭설에 산간 마을은 자주 고립된다. 눈으로 끊긴 도로와 눈 더미를 밀어내는 제설차들, 굶주려 마을로 내려오는 산짐승들의 발자국, 외딴집 처마에 고드름들이 자라고 꽝꽝 얼어붙은 개울에는 눈이 쌓인다. 그 장엄한 설경雪景이 눈송이들로 화하는 물의 변신술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있는 풍경이겠는가.

따뜻한 남쪽에서 지저귀던 새들이 바다를 건너오는 봄이 오면 백두대간의 얼음과 눈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적막이 깊어지고 고독이 자라나던 긴 겨울 뒤에 비로소 흐름의 시절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물은 얼어붙었던 절벽에서 두려움 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이다. 폭포를 만나면 폭포를 이루고 소용돌이를 만나면 소용돌이를 따른다. 바위틈으로 가야 하면 틈새로 흘러가고, 땅속으로 스며야 하면 스며들어 흙모래 속으로 흐른다. 도롱뇽은 이런 물의 성질을 잘 아는 양서류다. 물이 있으면 헤엄쳐가고 물이 없는 곳에서는 네 발로 걸어서 간다. 찬바람 붐비던 골짜기에 봄기운이 돌고 얼어붙었던 실개울이 졸졸 흐를 즈음이면 도롱뇽은 알을 낳으려고 계곡을 돌아다닌다. 어떻게 그 작은 몸에서 그렇게 순대처럼 길쭉한 알주머니가 삐져나오는지, 신기하게도 알주머니 속의 알들은 나중에 다 귀엽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도롱뇽이 된다.

생명의 신비는 물의 신비이기도 하다. 삼엽충과 바다전갈과 공룡들, 코끼리와 낙타와 흰수염고래, 있는 힘을 다해 진화한 그 모든 동물을 한 줄로 꿰고 있는 실이자 끈인 물, 거미줄에 매달려 이슬로 반짝거리기도 하는, 물, 풀잎 위의 물방울들. 물처럼 연약해 보이는 물질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물은 때때로 큰 돌덩어리들을 계곡 아래로 굴려버린다. 산의 실핏줄 같은 실개울들이 모여드는 골짜기에는, 물질의 나이로 해왕성과 동갑인 돌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있게 마련이다. 계곡으로 한번 굴러떨어진 돌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큰물이 지면 돌덩어리들은 물이 굴리는 대로 구르며 이동하기 시작한다. 마치 개울 아래 큰 강으로 가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노순택

강에는 이 산 저 산에서 굴러온 돌들이 있다. 그 제멋대로 생긴 돌들은 왜 물을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일까. 강가에는 악어 알만 한 돌도 있고 돌도끼처럼 뾰족한 자갈도 있다. 그 돌들은 기나긴 여행 뒤에 매끄러운 조약돌이 된다.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강변에 수석을 주우러 다니는 남자가 나타날 때가 있다. 그는 이리저리 돌밭을 돌아다닌다. 그의 눈은 돌들로 가득 차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있거나 펴고 있거나 그는 이미 마음속에 묵직한 돌덩어리를 모셔놓은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강가에 나타나는 낚시꾼들은 떡밥을 주무르고 구더기나 지렁이를 바늘에 꿰면서 피라미 혹은 모래무지를 낚을 뿐, 풍경을 낚을 마음들은 없는 것 같다. 빈 낚싯대를 드리웠던 강태공은 이해하리라. 빈 배에 달빛 가득 싣고 돌아온다는 말을.

강은 여백의 조각술을 지니고 있다. 숨 쉴 만한 여백의 공간을 스스로 넓혀가는 것이다. 강변은 강의 여백이다. 강은 때가 되면 흙탕물로 양쪽 강변을 힘차게 뭉개면서 흐름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좁다랗게 모랫둑을 쌓으면 둑을 터뜨리고 콘크리트 제방을 쌓으면 그 제방을 넘어 범람하면서 강은 여백의 공간을 되찾을 힘을 지니고 있다. 맑은 날 물은 참 얌전해 보인다. 네모난 물통에 담으면 물은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어진다. 물은 바보처럼 늘 남에게 지는 듯하다. 물은 뼈도 없고 근육도 없고 고집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낮은 자리를 고집하면서 결국에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 끈질기게 게으르고 느긋한 물의 고집을 과연 누가 꺾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강을 물 흘러넘치는 목욕탕쯤으로 생각한다. 그는 서늘한 탕으로 들어가듯이 강물에 발을 담근 다음 발의 때를 민다. 그러면 떨어진 때를 먹으려고 송사리 떼가 몰려온다. 그 누구도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우리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그 말을 너무 흔하게 듣는다. 눈에 푸른 지중해를 담고 있던 그리스인, 그 철학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의 삶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지 않다면 그의 말은 한낱 묵은 때처럼 떠내려온 말이고 헛되이 떠내려가다 사라질 말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어떤 사람은 강에서 세차를 한다. 세제를 뿌리고 걸레질을 하고 나면 차의 외양이 깨끗해진다. 떠내려가는 거품들과 뜬 기름, 더러워도 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홍수로 차를 쓸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사나운 흙탕물로 거만한 인간들을 겸손한 익사체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 만물을 섬기는 듯이 공손하게, 만물을 먹여 살리느라 쉬지 않고 흐르는 강은 두 날개를 펴고 앞으로 나아가는 새처럼 양안兩岸을 품고 흘러간다, 구불구불하게.

강은 똑바로,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강은 되새김질을 즐기는 초식동물의 긴 창자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르면서 물을 빨아들이는 초목의 뿌리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듯하다. 그렇다. 강은 대지의 혈관이요, 생명의 젖줄이다. 자라가 그 젖줄을 물고 알을 낳고, 수달이 그 젖줄을 물고 천진스럽게 장난을 치며, 왜가리는 그 젖줄을 물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른다. 두만강이든 한강이든 낙동강이든 우리의 수도꼭지에서 날마다 쏟아지는 물은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누구나 그 생명의 젖줄을 물고 평생 살아야 하며, 세상을 뜰 때가 되어서야 그 젖줄을 입에서 뗀다. 쉽게 말하자면 죽음이란 심장으로 혈관으로 강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이란 물이 없는 것이다.

고비에서 나는 세수 안 한 얼굴로 낙타처럼 열흘을 견뎌야 했다. 물은 귀하다. 사람도 귀하다. 세상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어린아이의 웃음은 얼마인가. 은하수는 얼마인가. 해질녘 여울 물소리는 얼마인가.

▲ <강은 오늘 불면이다>(강은교 외 지음, 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아카이브 펴냄). ⓒArchive
그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괴'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이제는 막바지로 치달은 4대강 사업에 관한 세 권의 책이 출간됐다. 고은 외 99명이 쓴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이하 아카이브 펴냄), 강은교 외 28명의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성남훈 외 9명이 참여한 <사진, 강을 기억하다>(이미지프레시안 기획)가 그것들이다.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문인들과 사진가들이 기록한 '강의 오늘'을 <프레시안> 지면에 소개한다. 오늘도 포클레인의 삽날에 신음하는 '불면의 강'의 이야기는 한 달여 동안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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