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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조봉암이 신원(伸寃)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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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조봉암이 신원(伸寃)되던 날

[남재희 칼럼] 망우리에 쓸쓸히 묻힌 혁신의 이상, 현충원에 모셔야

진보당 조봉암이 신원(伸寃)되던 날
드레퓌스 사건에는 모든 지성이 들고 일어났는데
왜 우리의 죽산의 신원에는 조용하기만 한가

한국 사법사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날이기도 하다.
1월 20일 오후 2시에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원일치로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죽산 조봉암 씨에게 유족의 재심 요구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 무기소지로 1심부터 징역 5년이 선고되었던 것을 죽산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후 1,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 장관 등을 지낸 공적을 감안하여 선고 유예를 덤으로 추가했다.

사법 살인이 이루어진 1959년 이후 죽산을 신원하려는 참으로 오랜 노력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으며,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무자비한 살인의 음산한 장막이 걷어지는 장면이다.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도 이랬을까. 드레퓌스 사건은 <나는 고발한다>의 에밀 졸라 등 지식인들이 들고 일어나서일까, 12년 만에 해결(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지독하게 잔인한 죽산 사건의 해결(명예 회복)에는 50년 이상이 걸렸다.

드레퓌스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서초동 방청석에는 활기가 없다. 폭발하는 환호나 희열이 없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진보당 인사들이 거의 모두 죽었거나 세력이 사라진 것이다.

▲ 52년 전, 간첩 혐의로 재판정에 선 죽산 조봉암 선생. '사법 살인'의 희생자가 된 그는 사형 집행 5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때 법정에 섰던 진보당의 모든 인사들이, 작년에 막내 격인 정태영 박사가 별세함으로써 모두 고인이 되었다.

죽산의 맏딸 호정 할머니도 너무나도 오랜 세월 기다린 일이기에 별로 말이 없다. 그밖에 두 딸과 아들도 물론 나와 있었다. 웬일인지 지난번 공판에 방청했던 이종찬, 이부영 씨 등 정치인의 얼굴이 안 보인다. 인천 새얼재단의 지용택 씨가 그래도 버티고 있어 초라할 뻔 했던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죽산의 고향인 인천에 그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거론되었다. 그 책임은 지용택 씨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는 이미 결심한 것 같았다.

망우리의 죽산 묘소에 있는 비석의 배면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면이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차마 억울하게 사법살인된 그 사연을 적을 수가 없어 공백으로 남겨 둔 것이다. 그 비석의 공란을 이제는 메울 수 있겠구나하는 이야기가 우선 나왔다.

그러나 이어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죽산이 항일독립운동의 이름있는 투사이니 현충원으로 바로 모셔야 한다는 다른 의견이 우세하게 나왔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아마 대전 현충원쯤 될 것인데 망우리 산봉우리에 쓸쓸히 있는 것보다는 알맞은 자리가 아닌가 싶다.

방청했던 몇몇은 뒷골목의 대폿집에서 소주로 건배를 하며 죽산의 신원을 축하하고 대법원의 건재에 감사를 보냈다.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하여야 마땅한데….

죽은 다음에 어쩐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흔히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잔인하게 사법살인 당한 우리의 독립투사, 뛰어난 혁신 정치가가 뒤늦게나마 현충원에 모셔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사형 집행 52년만에 간첩혐의 무죄를 선고 받은 죽산 조봉암 선생의 장녀 조호정 여사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을 나서며 김용기(오른쪽) 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장과 지용택(왼쪽)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등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가 역사적 의미가 큰 토지개혁을 실시했던 초대 농림부 장관이기에 우리 농민들에게도 위안이 될 줄 안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대법관들이 이제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한다.

마지막 피우는 아름다운 불꽃인가, 이번 그들 전원일치의 합의는 우리 사법부가 그래도 국민의 최후의 의지처임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지연되기는 하였지만.

죽산의 혁신정치의 이상은 오늘날 불 붙고 있는 복지국가 논의 등을 통해 '시대 정신'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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