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모 씨는 지난달 20일 열린 공판에서 "겁박 때문에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이로 인해 재판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상황에서 검찰이 재차 반격에 나선 것.
검찰 "정치자금 건넨 한 모씨, 거짓말 하고 있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3차 공판에서 검찰은 "건설업자 한모 씨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정황이 담겨 있다"며 녹음 CD와 서한을 추가 증거로 신청했다.
▲ 4일 오후 한명숙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3차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
이에 대해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은 "공판준비기일에 제시하지 않은 녹취물을 갑자기 들이대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맞서면서 공판이 휴정되기도 했다.
지난 2차 공판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한 한 씨 역시 "나는 검찰에서 내 편지와 접견이 100% 스크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는 검찰에 협조할 때라 검찰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며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반면 검찰은 이 같은 녹취 내용이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의 것이라며 한 씨의 주장을 '거짓 진술'이라고 일축했다.
녹취 CD 등 증거 신청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실랑이가 1시간 가량 계속되자, 재판부는 공판을 휴정해 한 전 총리의 변호인단이 내용을 검토하도록 한 후 검찰이 입증 취지를 설명하도록 했다.
검찰 '비장의 카드' 녹취 CD, 무슨 내용 담겼길래
문제의 CD에는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던 2009년 5월18일과 같은해 6월13일, 30일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된 지난해 4월17일의 대화 내용도 포함됐다. 수사가 진행되기 전에 돈이 오간 내용이 담겨 있어 신빙성이 높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한 씨의 모친은 2009년 5월18일 의정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한 씨를 찾아와 "내가 (한명숙 전 총리의 측근인) 김모 씨에게 전화를 해 3억 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김 씨가) 한 전 총리가 미국에 있다는데 십여일 뒤 들어오니까 상의해 전화 준다더라"고 말했다.
이에 한 씨는 "김 씨가 특별 접견을 왔었다. 내가 한 전 총리에게 잘 이야기하라고 했으니 일단 잠자코 있고, 연락이 오면 어렵고 힘든 것처럼 이야기하라"고 답한 내용 역시 담겼다.
검찰은 또 한 달여 뒤인 2009년 6월13일에도 한 씨와 그의 모친이 한 전 총리 측으로부터 돌려받는다는 '의문의 3억 원'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씨는 모친에게 "내가 3억 원을 요구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요구 대상이 한 전 총리인지, 최측근 김 씨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반격 나선 검찰…"실패하지 않을 것"
검찰은 한 씨 모자의 대화에서 등장한 '의문의 3억 원'이 한 전 총리의 공소사실에 기재된 9억 원 중 수표로 전달된 3억 원 외에 추가로 돈이 전해진 혐의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고, 향후 재판을 통해 이 돈의 정확한 성격을 입증할 방침이다. 지난해 6월 한 전 총리의 측근 김모 씨는 한 씨로부터 3억 원을 수표로 받았다는 부분을 인정했고, 이는 한 전 총리와 별개로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도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에는 한 전 총리가 한 씨에게 문제의 3억 원을 주지않아 육두문자를 써가며 '가만 안 둔다'고 말한 부분도 있다"며 "(대화를 종합해 판단하면) 한 총리가 개입하지 않고 김 씨가 중간에서 배달 사고를 냈을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앞으로 법정에서 수표 사용처와 한 씨의 진술 번복의 구체적 경위에 대한 입증이 진행될 것"이라며 한 씨의 진술 번복을 겨냥한 검찰의 '카드'가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면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은 "적법한 증거 수집 절차를 밟지 않아 증거 능력이 없는 CD를 법정에서 재생할 순 없다"며 "수차례 열린 기일에서도 제시하지 않은 증거를 공판에서 갑자기 제시하는 것은 순서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 씨에 대한 검찰의 증인 심문을 먼저 진행하기로 하고 증거 채택 여부는 별도의 기일을 정해 해당 내용을 설명한 뒤 결정하기로 했다.
CD 내용 진위 여부 두고 공방 계속될 듯
이로써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판은 CD 녹취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의 공방이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앞서 건설업체 대표 한모 씨는 지난달 20일 열린 2차 공판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이 없다. 검찰 수사 초기 제보자가 찾아와 협조하지 않으면 불리할 수 있다고 겁박을 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자신의 진술을 완전히 번복했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한 씨로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 비용을 목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미화, 수표 등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총리 재직 시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을 진행받았으나, 곽 전 사장이 검찰의 진술을 뒤집으면서 지난해 4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곽영욱 사장에 이어 한 씨 역시 검찰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검찰이 "정치적 목적의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 역시 고개를 들었다.
이날 3차 공판에서도 한 전 총리는 "검찰이 가족, 사독 팔촌까지 계좌추적을 해 사람을 위축시키고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재판을 받고 있자니 자괴감이 든다"고 밝혔다. 또 "검찰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흡집내기 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검찰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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