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제도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자사고로 지정된 학교가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고 일반고로 돌아가려 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20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용문고가 추가모집에서도 정원의 3분의 1밖에 채우지 못 하자 교육청에 자사고 지정 취소를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취소를 허용하지 않았다.
자사고가 홍보한 교육과정 운영 등을 믿고 지원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되며 20일부터 시작되는 후기 일반계고 전형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다.
미달 사태는 비단 용문고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울시내 자사고 26곳 가운데 1차 모집에서 미달을 기록한 13곳이 지난주 추가 신청을 받았지만 3곳(보인고, 이대부고, 현대고)을 제외한 10곳이 또다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100명 넘게 미달한 곳도 3곳에 달했다.
'MB 교육' 총아 자사고, 어쩌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의 핵심이었던 자사고가 왜 이런 사태를 맞은 것일까? 정책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작된 '엘리트 교육' 강조의 폐해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자사고를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육성하겠다는 취지 아래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사고를 지정했으며, 2012년까지 100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사회배려대상자 전형'에서 부정입학 의혹이 터지는 등 자사고는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지역 자사고 미달 사태는 "교과부의 무모한 도전이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예견된 실패"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현 정부는 학교정책으로 자사고 100개 선정 등 '고교 300 프로젝트'(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자사고 100개)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런 정책들은 새로운 학교 유형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성과주의에 급급한 것으로 비판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교과부, 일은 자기가 벌이고 책임은 남에게 떠넘겨"
자사고 100개 지정은 애초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특히 재단 전입금 비율을(3~5%) 충족시키지 못했음에도 "자사고 지정이 된 후 (전입금을) 내겠다"는 학교들까지 신청됐다. 애초 예상했던 숫자를 채우지 못하다 보니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학교들까지 우후죽순 신청된 것이다.
면밀한 검토 없이 학교 수만 늘리니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호도에서도 차이가 갈렸다. 일각에선 "이미 특목고의 수가 소위 명문대라 하는 서울·연·고대의 정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자사고가 그렇게 인기가 많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정부의 거듭된 '자사고 포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미달 사태가 난 이유다.
교육계가 '자사고 실패'를 예견해 온 것은 자사고가 '특권학교'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교육계는 "일반고의 3배에 달하는 학비와 입학지원에 성적제한을 둠으로써 모든 학생들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차단 한다"고 비판해 왔다. 자사고가 특목고의 선호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입시 경쟁을 가속화해 또 하나의 입시학원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학교 지정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음에도 교과부가 자사고 100개를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교육감 권한 침해'라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전교조는 이번 사태가 "학교설립을 충분한 검토도 없이 공장에서 상자 찍어내듯 만들겠다고 나선 정부의 책임"이라면서 "일은 자신이 저지르고 책임은 남에게 떠넘기며 나 몰라라 하는 교과부의 무책임한 행정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공동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던 서울시의회 김정명신 의원은 20일 자신의 트위터(@kimmyungshin)를 통해 "2010년 서울시 교육청이 자사고에 지원한 교육시설비가 200억 원이 넘는다"라며 "그런데 대량 미달 사태가 나고 학비가 오르고, 통학거리가 길어지고 학교가 서열화 됐다"라고 정부의 자사고 정책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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