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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총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평화"

양심적 병역거부자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890명 수감중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 살상을 거부할 권리를!"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총' 대신 '평화'를 택하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또 한 명의 청년이 나왔다.

14일자로 입영 통지서를 받은 문명진(26) 씨는 이날 훈련소로 가는 대신 국방부 앞을 찾았다. 2008년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무산되면서 이제 '군대' 대신 '감옥'으로 향하게 될 테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폭력을 내면화하는 군대"보단 차라리 "감옥에 갇힌 평화"를 택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문 씨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선언하기 위해 이날 오전 국방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저의 병역 거부는 폭력이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전쟁없는세상

군 복무를 신성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에게도 병역 거부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인의 양심에 따른 일이라고 하지만, 병역 거부란 곧 감옥에 갇히고 평생을 '전과자'로 낙인찍히는 삶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파병 반대 집회와 평택 대추리, 그리고 2008년 촛불집회에서 목도한 '국가폭력의 맨얼굴'은 결국 그를 병역 거부의 길로 이끌었다.

문명진 씨는 "제게 있어 군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을 내면화하는 공간"이라며 "평택 대추리와 촛불집회, 용산 참사를 통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 봤지만,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상대를 나와 같은 감정과 욕구를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총구를 겨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에게 군인이 되는 것의 의미는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로봇'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와 그에 따른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황 역시 그의 고민을 심화시켰다. 문 씨는 "포격을 한 북한도 비판받아야하지만, 갈등 국면을 조장한 한국 정부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며 "한국 정부는 보다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우리 군이 보유한 다연장로켓포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초토화되는 것은 북의 해안포가 아닌 누군가의 삶, 혹은 우리의 인간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계속 서로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키워나간다면 앞으로 눈물을 흘릴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이 세상에 죽어도 괜찮은 생명은 없으며, 폭력은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전쟁을 멈출 수 있다. 그것이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그의 선택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지원해온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연평도 사태 이후 더 심해지는 전쟁 위기와 군비 증강의 악순환 속에서 문명진 씨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자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며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병역 거부를 선택한 그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어 "역사적으로 병역 거부 행위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은 전쟁 시기였다"면서 "이는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조직이고, 이기기 위해 적으로 간주되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며, 그 의미를 자각한 사람들이 병역 거부를 통해 전쟁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과 실천은, 점점 높아지는 전쟁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면서 "평화를 위한 노력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 전쟁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평화를 위한 소중한 한걸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단체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군사력이 아니다"라며 "연평도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준비하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또 "끊임없는 전쟁과 무력 분쟁을 멈추기 위해선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면서 "그것이 느리더라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백지화된 대체복무제…현재 수감자만 890명

국방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9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를 허용하고 2009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으나, 2008년 12월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대체 복무제를 '전면 유보'한다고 발표했었다. 이에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병무청 용역 보고서의 극히 일부분인 여론 조사 결과만 놓고 대체 복무를 백지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었다.

다만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는 국방개혁안은 계획대로 추진했으나, 최근 이명박 정부는 복무기간 단축을 21개월에서 '스톱' 시켰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감옥에 수감된 사람은 2010년 7월 현재 89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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