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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한 짝도 못 건지고 집이 다 불타 버렸다"

연평도 '탈출'한 주민들,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다"

24일 오후 1시 15분경 인천 해양경찰 부두에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이 도착하자 부두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가움으로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안함의 중압감을 벗어버린 일부 연평도 주민들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며 울음을 쏟아냈다.

평온한 어촌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북한의 포격이 일어나고,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주민들은 해경선 2척에 나눠 육지로 돌아왔다. 총 346명으로 부상자는 9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3시경 해군의 공기 부양정을 타고 179명이 더 들어왔으며 이 중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천 길병원에서 나온 이창열 전문의는 "고막 파열, 일산화탄소 중독, 구토와 어지럼 증 등의 증상을 환자들이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당시 상황은 옹진군, 해양경찰 등에서 공개한 폭격 후 현장 분위기보다 더 두렵고 생생한 '실제 상황'이었다.

▲ 연평도 주민들이 해양경찰 부두에 도착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평생을 그곳에 살며 삶의 터전을 일궈온 주민들은 세간 살이가 박살 나고, 몸만 빠져나온 것에 대해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집이 모두 불타버린 조순애(47) 씨는 "그 집 하나가 전 재산인데 다 타버렸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1차 폭격이 시작되고 대피소로 몸을 피했던 조 씨는 상황이 일찍 마무리되지 않을 것을 느끼고 내복이라도 챙기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이 불타고 있었다.

2번째 배를 타고 도착한 안경애(67) 씨 역시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울음을 쏟아냈다. 마중 나온 가족과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안 씨는 양말을 한 짝만 신고 슬리퍼를 신은 자신의 발을 가리키며, "이것 봐라. 양말 한 짝도 못 건져 왔다"며 서럽게 울었다.

그 당시 상황을 '무서웠다'는 단 한마디의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너무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러나 포탄이 떨어지고, 집이 불타고, 창문이 깨지는 걸 바라보는 아이들은 무서운 광경에 더욱 더 몸을 떨어야 했다.

군인 남편을 따라 연평도에 살고 있던 정은주(34) 씨는 5살, 3살, 1살 난 아이들의 엄마다. 포탄이 터졌을 당시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인 자신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얼마나 더 무서울까 싶었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까 봐 이런 상황이 더 두렵고 무서웠다. 다행히 오늘 배편으로 육지로 나왔지만 군인인 남편은 여전히 연평도에 남아 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난리를 겪은 연평초등학교 5학년 박기준 학생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포탄이 떨어지고 수업 받던 교실의 유리창이 충격으로 깨졌다. 친구들 몇 명은 울기 시작했다. 박기준 학생은 "(마을 곳곳이) 파괴된 곳이 많아 무섭다"라고 지금 심정을 전했다.

어젯밤을 연평도 대피소에서 보낸 주민들은 1000여 명으로 19개의 지하대피소를 이용했다. 대피소는 전기가 끊긴 곳도 많아 주민들은 어둠과 함께 추위와 싸워야 했다. 가족들은 불이 들어오지 않은 곳은 촛불을 이용했다고 전했다. 또한 잠자리도 열악해 박스를 깔고 잔 이들도 있었고, 그나마 상황이 나은 이들은 스티로폼에 군용 모포를 깔고 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자리가 더 나은들 잠을 푹 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 대부분은 두려움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박스를 깔고 잤다는 윤종균(58) 씨는 "방공호까지 연기가 들어차 매캐한 냄새가 났다. 북한이 포문을 열어 놨다는 얘기를 듣고 피난 나왔다"고 말했다.

조순애 씨도 대피소의 열악함과 그 안에서 느낀 두려움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대피소 안이 통풍이 잘 안 됐다. 2차 포격이 일어난 후 대피소에서도 화기가 느껴져 무서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민들은 또 식사가 제때 지급되지 않아 라면과 빵 정도만 먹고 오늘 아침은 지급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권영희(54) 씨는 "아무것도 안 줘서 아침도 안 먹고 나왔다"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주민들은 갑자기 터진 일에 정부 대책이 미흡함을 이해한다면서도 좀 더 확실한 대책을 요구했다. 사십 평생 연평도에만 살아온 김지춘(41) 씨는 "정부 대책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잘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말했다. 김 씨는 "공포에 떨고 있다. 앞으로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다"고 허탈해하면서도 다시 연평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고향이라 다시 가고 싶긴 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돌려주는 것이 정부의 주요 대책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해군은 보도자료를 통해 시설, 전기 관련 복구 인원을 20명 투입했으며, 주민 대상 모포 400장, 컵라면 4100개, 응급처치세트 340점 등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또한 해경은 이날 오전 10시경 생필품을 담은 구호물자 200여 상자를 연평도로 보냈다. 그 밖에 지원이 속속들이 연평도로 향하고 있지만 이미 섬을 '탈출'한 주민들 외에 연평도엔 200여 명의 주민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마을의 복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남았으며 대부분 성인 남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타 버린 연평도를 복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인천에서도 여객선을 타고 빨리 가도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만큼 복구 장비가 들어가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는 허탈감에 빠진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무엇보다도 '삶의 터전' 복구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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