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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와 M을 구분 못하던 여공들, 그들에게 전태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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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와 M을 구분 못하던 여공들, 그들에게 전태일이란?

'전태일 다리' 현판식·추도식 열리던 날

"아우, 정말 시끄러워 죽겠어. (다리 이름이) 바뀌거나 말거나."
"왜 좋은 이름(버들 다리) 놔두고 전태일 다리라고 바꾸는 거야."
"행사 빨리 좀 해요. 장사를 못 하겠어."


11월 13일 오전 9시. 40년 전 그날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자리에서는 '전태일 다리' 현판식이 열렸다. 현판식 참석자들의 표정에는 비장함과 회한이 서려 있었지만 정작 전태일을 기억하는 '평화시장' 상인들은 드물어 보였다. 민주노총이 40주기를 맞아 전태일 평전 읽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만큼 전태일 정신을 잊고 살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 참석자들이 전태일 다리 현판식을 끝낸 후 박수를 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현판식이 열린 곳은 '전태일 다리'로 명명된 청계 6가의 '버들 다리'였다. 2005년 전태일 35주기에는 버들 다리에 전태일 흉상을 설치하고 양쪽 보도블록에 전태일 추모 동판을 새겨 넣는 작업을 했다. 올해 40주년에는 버들 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바꾸기 위해 캠페인을 벌여 서울시로부터 전태일 다리와 버들 다리를 병기한다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 결정을 얻기 위해 '40주년 행사위원회'는 대대적인 운동에 나섰다. 8월 26일부터 8명이 하루 한 시간씩(808행동) 버들 다리에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 캠페인은 학생은 물론 문화예술인, 법조인, 정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런 노력 끝에 버들 다리는 전태일 다리와 이름을 같이하게 됐으며, 현판은 다리에 놓인 전태일 흉상을 작업하기도 했던 임옥상 화백이 제작했다.

현판 설치 외에도 전태일이 마지막으로 쓰러진 장소에 동판을 설치했고, 흉상 앞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했다. 불꽃은 네 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동서남북 4개 방향을 뜻하는 것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궐기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 불은 암염으로 만들어 졌다. '인류의 소금이 되라'는 뜻이다.

▲ 참석자들이 전태일이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리에 설치된 동판을 만져보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를 어떻게 알아"…전태일 추억, 현실 개탄도

현판식이 끝나고 일행은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타 전태일의 묘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는 '그날의, 그 시대의 이야기'가 추억이 되어 회고 됐다.

"원래 저는 노동자로 살다가 적당한 사람 만나서 혼인하려는 소박한 삶을 살았어요. 전태일 동지가 저보다 한 살 어린데, 몸을 살라서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후로 결혼 대신 노동운동과 혼인하기로 했죠. 하지만 처음엔 몸을 불사른 것을 보고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자꾸 전태일 열사가 했던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이 제 귓전을 때리는 거예요. 내 얘기로 생각됐죠. 결국 노동운동에 말뚝을 박고 많은 활동을 하며 살고 있어요. 전태일 다리 조성을 계기로 연대의 다리가 되어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70민노회 박순이)

이어서 만학도로서 대학원까지 진학한 여공 신순애 씨가 그 당시 여공들의 현실을 덧붙였다.

"자료를 찾아보면 그 당시 청계천 일대 여공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통계가 있어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건 그냥 졸업하지 못했어도 나왔다고 대답을 한 거예요. 제가 신순애가 아닌 7번 시다(보조원)로 3년을 살았는데, 옆에 1번 시다 여자가 매일 혼나는 거예요. 왜 혼나나 봤는데 옷에 붙이는 라벨 'M'자를 거꾸로 자르는 거죠. 그래서 'W'가 되니 미싱사가 야단을 쳤던 거지요. 그래서 제가 '왜 자꾸 잘못 자르냐'고 물으니 '언니, 내가 한글도 잘 모르는데 영어를 어떻게 알아'이래요. 그 친구는 매일 '내일은 M자 일감 안 받기를'하며 기도를 한다고 그랬어요. 그 이후 제가 노동 운동 하면서 한글 공부방도 열고 그랬지요."(신순애)

그 시절 얘기를 곱씹으며 이들이 강조했던 것은 여전히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하여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개선되지 못하고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을 위해 일하고 있는 여성연맹 이찬배 위원장은 "전태일이 죽은 지 40년이 됐지만 아직도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31일 다 일하는 여성 비정규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전태일 열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전태일 40주기 추도식. ⓒ프레시안(김봉규)
심상정, "전태일, 야권연대 밧줄로 삼자", "비정규직 상설협의체 만들자"

누리꾼들이 재치 있게 표현한 'G20에 분노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지나간 하늘은 가을빛의 절정이었다. 언제 황사가 왔었냐는 듯 날씨는 맑았고, 햇살은 봄볕마냥 따뜻했다.

이날 현판식과 추도식에는 많은 정치, 종교, 노동계,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특히 야당 정치인들은 '모란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의 추도사를 통해 오늘의 노동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우리 사회가 노사 관계 선진화를 앞세워 노동조합 무력화,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800만 명 시대를 제대로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전태일 열사 묘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 권익, 정의가 숨 쉬는 사회 만들기 위해 다짐 한다"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는 더 나아가 "전태일 열사를 야권연대의 튼튼한 밧줄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심 전 대표는 "비정규직을 지원하겠다고 하고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 으로는 안 된다"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자리에 야당 주요 정치인들이 와 계시는데, 이 자리에서 야당 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상설협의체를 제안 한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의 대표자들의 추도식은 현실에 대한 반성과 전태일 열사의 뜻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그것은 노동계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야만의 시대를 민주노총이 막아내지 못했다"며 "열사여, 나약함을 용서해 달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전태일 정신 계승의 의미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이주노동자와 단결하고 시민진영과 연대하는 것"이라며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정당과 시민사회에 '노동관련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 ⓒ프레시안(김봉규)
반성과 다짐의 시간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라며 "여기 모인 사람들만이라도 하나가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발언을 짧게 마친 이소선 여사는 참석자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뜨거운 감사를 대신했다.

추도식이 끝난 후 매해 추도식처럼 주최 측이 준비한 도시락과 음식을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었다. 행사가 진행 중일 때는 남양주시 주민들이 자원해 따뜻한 차를 참석자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도시락을 먹으며 참가자들은 저마다 전태일에 대한 추억을 나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 중 전태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도 전태일을 이야기한다.

G20이 마무리되고 우리 사회는 다시금 성장을 화두로 꺼내들고 있다. 그리고 잠시 중단된 한미 FTA 논의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오늘처럼 다시 전태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돼 잊쳐져 가는 자들의 권리를 전태일이란 상징으로 되살리려는 노력들이다.

▲ 추도식이 끝나고 이소선 여사는 참석자들을 안아줬다. 오른쪽은 이정희 민노당 대표, 가운데는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프레시안(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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