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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판' 기자들의 컴퓨터가 사라졌다…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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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판' 기자들의 컴퓨터가 사라졌다…범인은?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23> 프랑스 기자 노트북 도난 사건

프랑스 기자들이 취재용 노트북을 도난당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르몽드>와 <르 포엥(Le Point)>, <메디아파르(Mediapart)> 등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일간, 주간 인터넷 신문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에 사용해온 노트북을 도난당한다는 것은 언론 자유에 비추어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노트북을 길거리에서 소매치기 당한 것도 아니고 기자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부의 치부를 취재하고 있는 언론사나 그 기자들의 것이없어진다는 점에서 연 이은 컴퓨터 도난 사건의 배후에 의혹이 일고 있다. 여기에 2일에는 중요한 정치사건을 폭로해서 프랑스 정국에 예상 못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신문으로 유명한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Canard enchaine)>가 사르코지 대통령이 기자들의 배후 조사를 직접 감독하고 있다고 보도해서 기자들의 컴퓨터 '실종'이 단순한 도난 사건이 아니라는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사르코지 게이트' 취재기자들의 컴퓨터가 사라졌다

'뵈르트-베탕쿠르 사건'은 이제 세계적인 화제가 된 프랑스의 정치 스캔들이다. 이 사건 주인공 중 한 사람인 프랑스 제1의 여성 갑부 릴리안 베탕쿠르(Lilian Bettencourt)는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상속인으로 재산이 200억 유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가 사르코지 대통령이 있는 여당(UMP)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희사해 왔을 뿐 아니라 2007년 대선 때는 사르코지 후보에게 상당한 액수의 선거 자금을 제공하고 여당의 재정 책임자인 뵈르트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메디아파르>에 보도됐다. 그 후 <르몽드>가 사건을 추적함으로써 터진 것이 뵈르트-베탕쿠르 스캔들이다. (☞ 관련기사 : '사르코지 게이트'? 사르코지와 <르몽드>의 끝장 대결 )

물론 사르코지나 대선 당시 여당의 재정 부장이었던 현 노동장관 뵈르트는 언론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고 있으나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2012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사르코지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이에 사르코지가 불리한 내용이 드러나지 않도록 내무부 산하 국내정보총국(방첩대)을 동원해 기자의 소스를 조사하기 위해 언론인의 통화 내용을 도청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그러므로 기자들의 컴퓨터 도난 사건도 이러한 일련의 정부 대응과 연관돼 있으리라는 것이 자연스런 추리이다.

<르몽드>는 지난 10월25일 뵈르트-베탕쿠르 사건 취재팀장인 제라를 다베(Gerard Davet)기자의 컴퓨터 도난 사건을 보도했다. 다베 기자는 뵈르트-베탕쿠르 사건 취재로 너무 바빠서 집에 두고 온 노트북이 없어진 사실을 22일에야 알고 곧 도난신고를 했다. 컴퓨터와 함께 없어진 것은 하드디스크 하나와 뵈르트-베탕쿠르 사건 취재자료를 저장해 둔 CD롬 하나였다. 누군가가 잠가놓은 창문을 열고 들어와 훔쳐갔다. 전문가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다. 문을 부수고 집안에 침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침입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밖에서 문을 다시 잠그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합법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정보기관뿐이다. 더구나 집안에 있는 귀중품은 하나도 손 되지 않고 컴퓨터와 취재자료만 훔쳐 갔다. <르 포엥>의 가테뇨(Herve Gategno)기자는 최근에 사무실을 옮겼는데 그의 방에 있는 컴퓨터를 훔쳐갔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이 분명하다. 가테뇨 기자도 뵈르크-베탕쿠르 사건 취재 기자이다.

<메디아파르>에서 없어진 CD롬은 릴리안 베탕쿠르가 정치인들과 나눈 대화를 재산관리인 메스트르가 몰래 녹음해 둔 것을 복사한 것으로 뵈르트-베탕쿠르 사건 수사에 중요한 증거로 이용될 수 있다. 뵈르트 -베탕쿠르 사건을 제일 먼저 터트린 것이 <메디아파르>였기 때문인지 컴퓨터와 취재 자료가 제일 먼저 도난당한 곳도 <메디아파르>였다. 아직 <르몽드>와 <르포엥> 기자의 컴퓨터가 도낭당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 못해 뒤늦게 알려졌다. <메디아파르>는 자사 뿐 아니라 컴퓨터가 사라진 타사 동료 기자들까지도 모두 뵈르트-베탕쿠르 사건 취재기자인 점을 들어 우연이라기보다는 이 사건과 이해관계가 있는 곳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르몽드>의 취재원을 도청해서 알아낸 내무부의 방첩대도 처음에는 도청 사실을 부인하다 나중에 <르몽드>가 증거를 대자 마지못해 국익이 관련됐다고 보고 조사했노라고 도청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언론은 취재원 보호 법규를 위반한 사실을 정당화하려고 둘러댄 해명으로 보고 있다.

▲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한 장면. 프랑스의 한 블로거는 프랑스 기자들의 노트북 도난 사건을 두고 이 영화가 떠오른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기자들이여, 뉴스 소스를 보호하라"

컴퓨터 도난 사건에는 독자들의 반응이 민감했다. 한 독자는 기자들의 컴퓨터가 연 이어 없어진다는 보도를 보고 "도난 전염병"이 일고 있다고 비꼬는 블로그를 올리고 기자들의 보도에 불이익을 느낀 세력이 기자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그들의 무기를 못 쓰게 만들고 있다는 논평을 <르몽드> 인터넷에 올리는가 하면 한 블로거는 "기자들이여, 당신들의 소스를 보호하시오"라는 장문의 글을 올리고 "뵈르트-베탕쿠르 스캔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컴퓨터와 휴대폰이 최근 도둑과 정치인 사법부의 흥미를 끌고 있는 것 같은데 한심스런 일"이라고 개탄하면서 정부의 뉴스 소스 추적을 좌절시킬 구체적인 예방법을 상세히 제시했다. 그의 예방법은 인터넷 검열이 노골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네티즌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는 인터넷 검열 방어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프랑스 정부의 국가과학연구센터의 요청을 받아 "어떻게 사이버 감시를 피할 것인가?"라는 교재를 작성한 바 있다는 이 블로거는 사이버에 관한 상당한 전문가로 보이는데 기자들에게 뉴스 소스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르몽드>의 제라르 다베 기자가 실토했듯이 기자들은 뵈르트-베탕쿠르 사건을 취재하면서 감시를 받게 되고 컴퓨터까지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심리적으로 일종의 '위협'을 느끼게 됐으며 취재원인 뉴스 소스도 점점 접촉을 피하면서 말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해서 취재에 상당히 지장을 받고 있다고 시인했다.

기자의 소스 보호는 단순히 기자의 취재와 관련될 뿐 아니라 취재원의 안전을 보호해줘야 하는 것은 기자가 첫 번째 로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언론 자유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취재원의 보호를 규정한 법을 2010년 초 새로 제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정부는 그 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기자의 휴대폰 통화를 도청했다. 인터넷 해킹이 없다고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당국의 도청 해킹을 통한 뉴스 소스의 추적을 피하고 소스를 보호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졌다. 이 블로거가 권고하고 있는 도청과 인터넷 해킹 회피 방법은 언론인 뿐 아니라 네티즌에게도 유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기술적이어서 여기에 소개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역사상 최초로 언론자유를 포함한 세계 인권선언을 선포한 프랑스에서 정권의 언론 간섭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대해 착잡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언론인의 도청 문제는 이미 미테랑 정권 때도 있었다. 정권이 언론을 경원하고 견제하려는 것은 권력의 습성이다. 이 불변의 진리를 언론은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정권이 언론을 자기편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언론이 권력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 언론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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