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하천 전문가인 알폰스 헨리히프라이제(67) 박사가 남한강과 낙동강 일대를 둘러본 후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던진 따끔한 '경고'다.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독일연방자연보호청에서 33년간 재직하며 하천 관련 국책 사업에 참가해온 전문가로, 특히 댐 건설로 인한 하천 환경의 변화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10여 일 동안 남한강·낙동강 일대의 보 건설 현장을 둘러본 그가 출국 하루 전인 15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독일의 하천 정비 사례를 들며 "4대강 사업은 독일보다 더 큰 후유증을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독일연방환경보호청에서 33년 동안 재직하며 하천 관련 국책 사업에 참가해온 알폰스 헨리히프라이제 박사. ⓒ프레시안(선명수) |
"독일, 댐 건설 이후 100년 빈도 대홍수 매년 발생해"
먼저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라인강에 댐을 쌓고 준설을 했다가 더 큰 홍수를 낳은 것처럼, 4대강 사업을 이대로 강행한다면 한국엔 더 큰 홍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바닥을 깊게 파면 유속이 빨라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댐 건설, 기후변화와 맞물리면서 강 하류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또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홍수터로 범람할 수 있게 해줘야하는데, 강 주변을 제방으로 막는 등 물이 옆으로 빠져나갈 공간을 주지 않는 바람에 가뜩이나 유속이 빨라진 물이 지류와 만나게 되면 하류에서 수해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 라인강에 무차별적으로 댐을 건설한 1950년대 이후, 100년에 한 번 일어나던 대홍수가 이제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며 "댐 건설로 인한 홍수 피해가 급증하자, 라인강, 엘베강, 도나우강 등지에서 댐 건설 계획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 라인강의 경우, 20여 개의 댐 건설 이후 과거 100년 빈도로 발생하던 홍수가 20년 빈도로 나타나고, 최근엔 거의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홍수 막으려면 댐 건설 아니라 홍수터 복원해야"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댐 건설이 아니라 홍수터를 복원해야 한다"며 "2007년 라인강에 역사적인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도, 홍수터를 복원한 구간에서는 10% 피해가 줄었다는 수치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엘베강의 경우, 제방을 후퇴해 홍수터를 복원하는 방식으로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단 60㎢의 면적을 홍수터로 복원했을 뿐인데 소형 홍수는 5%, 중형 홍수는 8.6%, 대형 홍수는 36% 감소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엘베강의 홍수터 복원은 인공적인 하천 정비로는 수해를 막을 수 없다는 교훈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독일에 유례없는 대홍수가 발생하자 독일 니더작센주 환경부는 "2002년과 2006년의 홍수는 홍수터 지정을 통해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되돌려주는 것만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홍수 대책임을 깨닫게 해주었다"며 2009년 홍수터 지정 계획을 발표했다.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돌려주는 것, 이른바 '룸 포더 리버(Room for the River)' 정책의 일환이었다.
▲ 기존 제방을 그대로 두는 경우(좌)와 제방을 바깥쪽으로 후퇴시켜 추가적인 홍수터를 마련하는 방안(우). ⓒ김혜주, <라인강 상류의 홍수 방어와 생태계 복원 전략> |
이밖에도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정부가 '신개념 홍수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대규모 준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일은 40~50년 전부터 하천의 준설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바닥을 깊게 파면 지하수위가 내려가 하천 주변의 식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강의 유속이 빨라지면서 강 하류에서 더 큰 홍수 피해를 낳는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그는 "보(댐)를 건설하고 준설을 해 수량을 확보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논리라면 더더욱 준설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준설을 하면 오히려 강물이 더 빠르게 바다로 빠질 가능성이 높고, 지하수위 역시 하강해 지하수도 고갈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수량 확보를 위해선 지표수보다 지하수가 중요하다"며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표수가 (댐에 의해 막하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다가 땅 밑으로 스며들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8㎞ 복원 위해 10년 조사한 독일 VS 634㎞ 2년 만에 완공하는 한국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또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4대강 사업의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만에 사전 조사를 끝내고, 공사 역시 2년 안에 마무리한다는 점"이라며 "독일의 경우 하천 정비에 앞서 조사와 준비에만 10년 남짓 걸린다"고 꼬집었다.
홍수터 60㎢를 복원한 엘베강의 경우만 봐도 준비에서 복원까지 총 10년이 걸렸으며, '생태적인 하천 복원' 사례로 잘 알려진 이자르강 역시 단 8㎞ 구간을 복원하는데 10년의 철저한 조사와 준비 기간을 거쳤다. 634㎞ 이르는 4대강 사업 구간의 환경영향평가를 단 4개월 만에 마무리하고 2년 안에 모든 공사를 끝내겠다는 한국 정부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한국의 4대강 사업은 전혀 환경친화적이지 않고, 하천뿐만 아니라 하천 주변의 생태계에도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더 큰 재앙을 낳기 전에 지금이라도 당장 사업을 중단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이후 독일로 돌아가 10여 일 동안 진행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종합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향후 4대강 사업 관련 소송에 증거 자료로 제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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