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질 개선과 홍수 예방 등, 하천 관리의 필요성은 항상 제기돼 왔던 문제다. 그렇다면 '어떤' 하천 관리인가. 국내외 하천 전문가들은 개발 중심의 인공적인 '하천 개조'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쌓았던 댐과 제방을 허물고, 자연 그대로의 하천으로 되돌리려는 복원 사업도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이다.
반면, 정부는 외국의 사례를 들며 4대강 사업이 '선진국형 하천 관리'라고 주장한다. 같은 사례를 두고, 정부와 4대강 사업 반대론자들이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외국에서는 이 논란이 이미 20~30년 전부터 진행돼왔다는 점이다.
특히 6.2 지방선거를 통해 충남·경남·광주에 새로운 광역단체장이 취임하며 4대강 사업에 대한 대안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무엇이 '생태적'이고 '선진'적인 하천 관리일까. 4대강 사업의 거울로 삼을만한 외국의 하천 복원 사례를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1편: 꼬불꼬불 물길 살리는 세계, '거꾸로 가는' 4대강 [세계의 '강 살리기'①] 댐·제방 허무는 미국의 '생태적 하천 복원' |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방문해 한반도대운하 구상을 했다는 '운하의 나라' 독일. 독일서 목도한 운하의 잔영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최근 파나마를 찾은 이 대통령은 파나마운하를 보면서도 아쉬운 듯 '묘한 여운'을 남겼다지만, 정작 '운하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독일은 강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하천 '재자연화' 사업에 한창이다.
▲ 10년의 준비 기간, 또 10년의 복원 사업을 진행해 하천 '재자연화'에 성공한 독일 이자르강의 모습. ⓒ기후변화행동연구소 |
운하 건설·하천 직강화 등 19세기부터 대규모 하천 개발을 벌여온 독일은 개발 이후 오히려 더 많은 홍수 피해를 겪게 되자, 과거의 오류에서 하천을 다시 자연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네덜란드를 관통하는 중부 유럽의 최대 하천 라인강(Rhine River)이다.
라인강, '홍수 방지' 위해 하천 개발하자 더 많은 홍수
라인강의 직강화는 19세기부터 홍수 예방과 운하 건설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150년 전의 라인강은 수많은 지류로 갈라져 이 지류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구불구불한 형태의 자연 하천이었지만, 대규모 준설을 동반한 직강화로 라인강은 독일에서 가장 거대한 '하천 고속도로'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우리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독일은 이미 150년 전 물 부족과 홍수에 대비해 수로를 개발한 것이다.
라인강의 이 거대한 '교정' 작업을 지휘한 사람은 독일의 토목 기술자인 요한 툴라(Johann Tulla)였다. 그는 "원칙적으로 무슨 강이든 강바닥은 하나면 족하다'고 선언하며 라인강을 직강화해 단 하나의 수로로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곧게 뻗은 라인강은 과거보다 100㎞ 남짓 짧아졌고, 강의 유속은 전체적으로 3분의 1가량 증가했다. 스위스 바젤에서 칼스루헤까지 유하 시간이 64시간에서 23시간으로 단축될 정도였다. 깊이 2m, 폭 75~100m의 수로를 만들어 바젤까지 배가 다닐 수 있게 한 이 거대한 개발 사업의 결과, 홍수의 파괴력을 약화시키는 습지의 85%가 사라졌다.
▲ 라인강 직강화로 변모된 강의 모습. 가장 왼쪽이 개발 사업이 벌어지기 전인 1825년 라인강 물길의 모습이다. 강의 수많은 지류는 1872년(가운데) 툴라의 개발 이후 점차 사라져, 개발이 완료된 1963년엔 단 하나의 곧은 물줄기로 직강화됐다. ⓒICPR |
강의 유속이 빨라지면서 선박이 바다에 도착하는 시간도 짧아졌지만, 홍수를 막기 위해 시작된 라인강 개발은 오히려 더 많은 홍수를 초래시켰다. 예전에는 200년마다 한번 씩 일어났던 대홍수가 1993년, 1995년, 1998년, 2002년, 2003년 연달아 발생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구불구불한 물길을 곧게 만들고 습지를 없애 강물이 곧장 바다로 흘러내려가도록 한 정비 사업으로 인해, 물의 흐름이 빨라지는 병목 구간과 강 하류에서 홍수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
▲ 지난 5월 홍수로 물에 잠긴 프랑크푸르트. ⓒ로이터=뉴시스 |
라인강 인접 국가들이 30년 이상 걸리는 '라인강 홍수터 복원' 사업에 착수한 것은 이 때문이다. 1950년부터 '라인강 보호를 위한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the Rhine·ICPR)를 구성해 공동의 하천 관리를 모색해온 라인강 인접 국가들은 1996년 '친환경 홍수 방어'와 '자연에 가까운 홍수터 복원'을 목표로 IRP(Integrated Rhine Program·통합라인프로그램)를 수립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라인강의 옛 물길을 복원해 지류와 본류를 다시 연결하고, 제방을 바깥쪽으로 후퇴시켜 홍수 시 넓은 침수 면적을 제공해 유속을 저감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인공적인 수로와 준설로는 홍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돌려주는' 하천 관리의 전환이 시작된 것. 이들은 2005년까지 홍수터 25㎢을 복원키로 한 목표를 초과 달성해, 2020년까지 160㎢의 강 주변의 땅을 확보해 홍수터를 복원할 계획이다.
▲ 기존 제방을 그대로 두는 경우(좌)와 제방을 바깥쪽으로 후퇴시켜 추가적인 홍수터를 마련하는 방안(우). ⓒ김혜주, <라인강 상류의 홍수 방어와 생태계 복원 전략> |
엘베강 대홍수의 교훈…주 정부도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라인강·다뉴브강과 함께 독일의 3대 하천으로 꼽히는 엘베강(Elbe River)의 상황도 비슷하다. 과거 대규모 하천 정비와 직강화로 2002년과 2006년 엘베강에서 '재난 수준'의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자, 독일 니더작센주 환경부는 "홍수터 지정을 통해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되돌려주는 것만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홍수 대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복원 사업에 착수했다.
▲ 2002년 엘베강 대홍수로 물에 잠긴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드레스덴(Dresden). ⓒfloodsite.net |
그렇게 추진된 것이 엘베강 제 1지류인 하펠강(Havel River) 복원 사업이다. '유럽 최대의 복원 사업'으로 꼽히는 하펠강 복원은 2005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화물 선박의 운항을 금지하고, 홍수터와 습지를 복원하는 내용으로 추진된다.
특이한 점은 복원 사업의 시행자가 정부나 민간업체 아닌, 독일의 환경단체 '독일자연보호연맹(NABU)'이라는 점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현장 조사를 위해 '민관 합동 조사단'을 꾸리자는 환경단체의 요구가 반 년 넘게 벽에 부딪히는 우리의 현실과 대조적이다.
독일인들은 둑과 제방 등 구조물을 제거하고 구하도(舊河道·예전에는 물이 흐르던 하천이었으나, 물이 말라 흐르지 않고 물이 흐르던 흔적만 남아 있는 지형)를 복원하는 이 사업을 통해, 그간 선박 운항으로 평평해졌던 하펠강의 수심과 폭을 다시 자연 그대로의 형태로 되돌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천의 폭과 수심이 다양해야 하천 생태계 역시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최대 6m 깊이로 691㎞에 이르는 강바닥을 일정하게 준설하는 한국의 4대강 사업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 복원 전과 후 하펠 하류의 종단면 모습. 다양한 형태의 하천 수심을 일정하게 준설하려는 한국의 4대강 사업과는 내용이 정반대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
▲ 구하도를 다시 살리고 제방 구조물을 제거하는 하펠강 복원 사업의 내용. ⓒ기후변화행동연구소 |
"준설이 '신개념 홍수 방어'? 그런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흥미로운 것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해양부 역시 독일의 강 복원 사례를 4대강 사업의 '본보기'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의 4대강 홍보 블로그인 '행복 4江'에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홍수 방지 대책인 'Room for the River(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를 소개하며 4대강 사업이 이들과 마찬가지로 '선진국형 치수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복원에 대한 '해석'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나 하천전문가들과는 정반대다. 정부는 준설과 보 설치를 골자로 하는 4대강 사업으로 강의 '물 그릇'을 확보해, 홍수 방지와 수자원 확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을 따라 제방을 높이 쌓는 낡은 방식을 벗어나, 준설로 강바닥을 깊게 파 홍수에 대비하는 '신개념 홍수 방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하천 전문가들은 "준설이 '신개념 홍수 방어'라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한다.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강을 깊게 파는 준설이 아니라 강의 측면 공간을 늘리는 '홍수터 복원'이 유럽의 21세기형 홍수 방어라는 지적이다.
라인강·엘베강의 사례만 봐도, 제방을 바깥쪽으로 후퇴하고 습지와 홍수터를 복원해 강의 유속을 줄이는 '분산적인 홍수 방어'가 홍수 대책의 골자를 이뤘다. 반면, 한국습지NGO네트워크에 따르면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되는 우리나라의 습지는 애초 정부 발표의 2배인 98곳이며, 이중 45곳은 영구 침수될 위기인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 기사:"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는 습지, 정부 발표의 2배")
▲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준설 현장의 모습. 준설로 인한 뿌연 탁수가 가득하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독일에서 하천생태학을 전공한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홍수 대책으로 준설을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준설로 홍수를 예방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신개념은 신개념"이라며 "그런 사례가 있다면 19세기에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병옥 소장은 "강 인근에 제방을 쌓고 농지나 주택을 만들며 인간이 잠식한 땅을 원래의 주인인 강에게 돌려주자는 것이 유럽의 '룸 포더 리버' 정책의 핵심"이라며 "하천 개발로 사라진 홍수터를 복원해 강의 자연스러운 범람을 유도하는 것이 유럽의 홍수 대책이지, 밑으로만 강바닥을 파는 준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이어 "2002년과 2006년 발생한 엘베강의 대홍수로, 독일은 길게는 몇 백년간 유지해왔던 인위적인 홍수 대책을 반성하고 강 본래의 물길을 되살리고 있다"며 "유럽의 하천 관리 패러다임 자체가 홍수 중심의 대책에서 이제는 자연 보호와 홍수 대책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내용으로 △준설과 구조물 위주의 홍수 대책 폐기 △홍수터 개발 금지 및 제방 후퇴 △소규모 저류지 확보 등 분산적 홍수 방어 △지류 복원 등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안병옥 소장은 "미국 대다수의 주와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구간 외에는 원칙적으로 준설을 금지하고 있다"며 "오염원 제거를 위한 준설도 2~5년에 이르는 치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통해 조심스럽게 진행하는데, 한국처럼 691㎞ 전 구간을 일괄적으로 준설하는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유럽 하천 개발의 뼈아픈 교훈…"누구도 흐르는 강물을 길들일 수 없다"
이 같은 지적은 외국의 하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데드라인에 선 기후>, <어느 환경범죄자의 고백> 등 환경과 개발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벌여온 영국의 과학저술가 프레드 피어스는 최근 국내에 출간된 자신의 책 <강의 죽음>에서 "홍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 영국의 과학저술가 프레드 피어스. ⓒ로이터=뉴시스 |
그는 "과거 토목 기술자의 홍수 방지 시도는 홍수를 일으키려는 음모가 아닌가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라며 "오늘날의 홍수 대처는 점점 더 두 번째 방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불어난 물을 가둬두는 대신 들판으로 흘러들어가게 하고, 제방을 없애 범람원을 다시 강에게 돌려주는 등, 강물이 넘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한국의 모든 기술자들이 매달리고, 정부에서 가능한 모든 재정을 총동원한다 해도 한국의 주요 강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강 살리기'와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지금도 자국의 강물을 콘크리트 수로 속에 가두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수 예방, 수자원 확보 등 어떤 논리를 든다고 해도 '흐르는 강의 혈관만은 막지 말라'는 것. 100여 년 전, 미국이 미시시피강을 정비했을 당시 소설가 마크 트웨인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 누구도 거침없이 흐르는 강을 길들일 수는 없다. 이리로 흘러라, 저리로 흘러라하며 복종시킬 수 없다."
8㎞ 복원에 '준비만 10년' 독일 VS 634㎞ '2년 내 완공' 한국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 위에 수십 마리의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강변의 은빛 모래톱에선 시민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를 가로지르는 이자르강(Isar River)의 모습이다.
이자르강은 '도심 속 생태 하천 복원'의 모범 사례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총 길이 289km의 하천으로, 뮌헨을 거쳐 도나우강(Donau River)과 합류해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알프스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 형성된 이 강에 인간의 손길이 뻗히기 시작한 것은 150년 전. 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은 홍수 피해를 막고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구불구불 흐르던 이자르강을 직선의 수로로 바꾸고 인공 제방을 쌓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하천 직강화에 따른 하상 침식으로 지하수위가 낮아져 지하수가 고갈됐고, 홍수 피해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특히 1999년의 대홍수는 지나친 개발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독일이 10년 동안 3000만 유로(490억 원)를 투입해 이자르강 '재자연화'에 착수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바이에른주와 뮌헨시는 1989년부터 이자르강 복원 논의를 시작해, 약 10년 동안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쳐 2000년 복원 사업에 착수했다. 먼저 강의 범람을 막았던 콘크리트 제방을 걷어내고, 강폭을 넓혀 유속을 저감했다.
이와 관련,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는 지난 3월 "이자르강의 생태 복원 사례처럼, 한강의 보와 콘크리트 호안을 철거해 모래밭과 여울, 숲이 있는 한강을 만들자"며 '한강의 생태적 복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한강 콘크리트 걷어내고, 모래톱에서 일광욕 즐기자", "신곡보 철거하면 한강에 모래톱·갈대숲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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