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뿐 아니라 의료보험 확대반대 금융위기 구제조치 반대 등 정부의 역할 축소를 주장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사회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보수 정치운동이다. 운동 지지자들은 대다수가 공화당원이며 2년 전 대선 때 77%가 매케인에게 투표한 보수 유권자들의 모임으로 오바마 취임 이후 그의 중산층 위주의 정책에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집단이다.
'극우의 목소리' 글렌 벡, 마틴 루터 킹 기념일에 훼방
이 티파티 운동이 지난 8월 28일 고(故)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 행사에 훼방을 놓음으로써 또 한 번 언론의 각광과 비난을 함께 받았다. 이 날은 47년 전인 1963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목사가 "내게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연설로 미국 민권운동에 중대한 전기를 가져온 날이다. 그래서 민권운동가 뿐 아니라 킹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미국 국민들이 매년 이 날을 경건히 기념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난데없이 티파티 운동 지지자 수십 만 명이 킹 목사가 연설했던 링컨 기념관 계단과 주변을 완전히 점령하고 하나님을 외치는 '종교집회'를 열었다. 보수 언론재벌 머독의 <폭스뉴스(Fox News)> 토크쇼 진행자로 미국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글렌 벡(Glenn Beck)이 소집한 집회였다. 벡은 이 집회에서 보수층 사이에서 누리고 있는 높은 인기, 그의 대중 동원능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벡은 집회 목적이 "미국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하나님의 신앙을 강조하려는 종교적인 것이었으며 정치적 목적은 없었다고 모임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날 모임에는 대선 때 매케인의 부통령 후보였던 전 알라스카 주지사 사라 페일린이 초청 연사로 출연해 오바마를 공격함으로써 티파티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집회는 중간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 공화당 지지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한 선거운동이라는 의혹을 지우지 못했다.
킹 목사의 후계자인 앨 샤프톤(Al Sharpton)목사와 킹 목사 숭배자들은 킹 목사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티파티 운동 지지자들이 기념 장소를 선점한 것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보수 군중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인근 고등학교에서 단출하게 기념식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글렌 벡은 킹 목사의 역사적 연설 기념일을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하나님의 섭리"로 우연히 그렇게 된 것 뿐이라고 빤한 거짓말을 하면서 하나님을 팔았다.
▲ <폭스뉴스> 토그쇼 진행자 글렌 벡. 글렌 벡은 오바마 증오자들 가운데 제1인자에 꼽힌다. ⓒ폭스뉴스 |
언론 윤리의 한계를 넘나드는 '오바마 증오 캠페인'
킹 목사의 기념일을 가로 챈 이날 집회는 미국 보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보수단체와 보수 언론은 오바마 취임 이후 오바마 반대, 단순한 반대라기보다는 "증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8.28 집회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된다. 이것은 뒤집어 보면 보수의 재집권을 위한 정권 탈환 작전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정치선전에 앞장서고 있는 보수 뉴스매체의 행동이다. 점점 극우 선전매체로 변질되고 있는 머독의 <폭스뉴스>는 이러한 정치 선전의 선두에 서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폭스뉴스>는 티파티의 주장을 확산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폭스뉴스>의 톱스타 글렌 벡이 모임을 주동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폭스뉴스>의 스타 출연자들은 티파티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의 언어에는 항상 되풀이 되는 말들이 있다. "잃어버린 미국의 명예를 회복하자",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정복하자". "오바마의 사회주의 아젠다에 반대 투쟁하자", "오바마는 맑시스트", "오바마는 마오(毛)주의자", "오바마는 인종주의자", "오바마는 무슬림(회교도)", "오바마는 보수주의자들을 수감할 집단수용소를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는 폭군" 등. '오바마 증오자(Obama haters)'들의 슬로건이다.
이 오바마 증오자 리스트에 <폭스뉴스>가 맨 앞에 올라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 우익은 어떻게 머리가 돌았는가>의 저자 존 아마토는 오바마에 대한 우익의 거부운동이 과거에는 불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며 오바마의 앞날에 불안을 느낄 정도라고 실토했다. 미국 역사상 당선된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이렇게 극렬한 행동으로 나타난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아마토는 보수의 오바마에 대한 반대가 이렇게 과격해진 데는 <폭스뉴스>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보수 조직이 <폭스뉴스>를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렌 벡은 오바마 증오자들 가운데 제1인자에 꼽힌다. 그는 오바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극우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오바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꼬투리를 잡아 공격한다. 한 예로 멕시코 만 석유 유출사건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의 딸 말리(12)가 오바마에게 "아빠, 석유 구멍 틀어막았어?"라고 물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글렌 벡은 "이것이 그들의 교육수준"이라고 오바마 딸을 비꼬았다. 물론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나중에 사과했지만. 언론윤리의 한계를 넘는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서 '오바마 증오자들'은 그런 것은 가끔 일어나는 '고립된 사건'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긴다. 그러나 이러한 증오 발언은 판단력이나 절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자극해서 가끔 과격한 돌발사건을 일으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기 쉽다. 증오발언은 사회를 양극화하는 부작용을 축적하는 시한폭탄이 된다.
욕하면서도 본다 <폭스뉴스>, 진보 민주세력은?
글렌 벡이나 러시 림보, 빌 오레일리 같은 보수 토크쇼 진행자들의 행동은 언론윤리를 벗어난 탈선으로 미국 언론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로 부각돼 있다. 그러나 이를 제어할 법적인 장치가 없다. 레이건 정부가 1987년에 언론자유의 제한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이러한 탈선을 규제할 수 있는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재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나 2009년2월26일 상원 상업위원회에서 방송자유법안을 심의하면서 87대 11로 공정성원칙의 재도입을 금하는 규정을 삽입해 이 원칙이 앞으로 다시 도입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법적 규정이 아니더라도 방송계 자체에서 이러한 윤리규정을 만들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으나 보수 재벌이 방송을 지배하고 있고 공화당 다수가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한 이러한 자율규정이 제정될 전망 역시 희박해 보인다.
이처럼 탈선한 거대 언론 특히 텔레비전을 보수 세력이 계속 지배한다면 미국에서 진보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세게 보수정권들이 텔레비전 장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벌써 11월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게 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어렵게 채택된 오바마의 개혁정책들이 좌초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폭스뉴스>나 보수 언론에 대한 미국 국민의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계속 이들 매체에 노출되고 이들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욕을 하면서도 그들의 주장에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오바마는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종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말재주가 좋은 글렌 벡이 집요하게 그를 인종주의자라고 두들긴 탓인지 최근 갤럽 여론조사는 흑인의 오바마 지지는 88%인데 반해서 백인의 오바마 지지는 38%로 그 절반도 안 되게 나타났다. 지난 5월 켄터키에서 실시된 공화당 상원의원 예비선거에서도 당이 미는 후보 트레이 그레서(Trey Grasor)와 티파티운동이 미는 보수 후보 랜드 폴(Rand Paul)과의 경선에서 랜드 후보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보수 운동은 물론 폭스뉴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진보나 중도언론은 언론윤리에 충실하려고 보수 매체처럼 노골적으로 어떤 후보를 지지하지 못한다. 결국 앞으로 보수 언론과의 싸움은 민주 시민의 인터넷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과 블로그의 힘이 아니었던가?
언론이 정권의 도구로, 종교는 정치의 시녀가 될 때
이번 집회에서 또 하나 눈을 끄는 것은 글렌 벡이 자신의 정치집회에 보수 기독교종교에 추파를 던지는 종교부흥의 명분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수 세력이 이미 기독교 보수파를 끌어들이는 오랜 전략의 연속으로 보인다. 보수는 기독교를 끌어들이지 않는 한 단독으로는 집권에 필요한 다수 유권자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보수파와의 제휴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보수는 동성애 낙태 문제 등 진보적 사회정책이 대부분 보수 종교 윤리와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수의 정치투쟁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언론재벌이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언론을 정권의 도구로 거래하고 종교가 정치의 시녀로 타락할 때 민주주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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