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7일, 평균 20만 부를 발행하는 파리의 주간 <마리안느(Marianne)>가 표지 전면에 대통령 사르코지의 얼굴 사진을 싣고 그를 "공화국의 불량배"라고 지목한 잡지를 내놓아 대통령 비판 표현의 수위 문제가 또 다시 프랑스 언론의 화두로 떠올랐다. <르몽드>는 11일자 신문에서 "잡지가 '사르코지 공화국 불량배'라고 제목을 달 수 있는가?"라는 의문표의 제목 아래 이 사건을 비판 없이 사실만 소개했다. 그러나 여당(UMP) 의원들은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며 일제히 <마리안느>를 공격하고 마리안느야 말로 "언론의 불량배"라고 맞받았다. <마리안느>는 문제가 있으면 사르코지 대통령이 고소하면 될 것 아니냐며 <마리안느>의 '표지' 표현은 대통령 자신의 반(反)공화국적인 언사들이 촉발한 대응에 지나지 않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마리안느> '사건'이 터진 직후 우리 국회에서도 청문회 과정에서 불법의혹의 화신으로 지목 받은 신재민 문화부 장관 내정자의 검증을 놓고 "대통령 모독" 논쟁이 벌어졌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여론의 지탄 대상을 장관에 천거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이런 인사는 "조폭이나 하는 짓"이라고 공격한 것이 발단이었다. 신재민 현 차관의 장관 천거를 두고 "지금 조폭 중간 보수를 뽑는 것이냐, (이런 행동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자 한나라당 조 모 의원이 "(그런 발언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항의해서 한 동안 여야가 옥신각신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최문순 의원의 "조폭" 발언은 정치인의 국회 발언으로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이다. 영향력 있는 주간 <마리안느>가 표지에 사르코지 대통령을 사진과 함께 "공화국의 불량배"로 지목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발언이다.
▲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공화국의 불량배'로 표현한 <마리안느> 표지 사진. ⓒ마리안느 |
잡지 부수 올리기 위해 대통령 모욕?
문제의 <마리안느>가 시판되자 사르코지 정부의 각료인 나딘 모라노(Nadine Morano)는 "국민이 선출한 국가원수에 대한 존경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일갈하고 "이제 탐사 기자들은 파시스트들이며…30년대 친(親) 나치 기자들과 비슷한 자들"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모라노 차관은 공화국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잡지가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인 <마리안느> 라는 제호(題號)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잡지의 이름을 바꾸라고 호통 쳤다. 같은 여당의 리오넬 뒤카(Lionel Euca) 의원은 뉴스가 없는 여름철에 잡지 <마리안느>가 부수를 늘리려는 판매 작전으로 이런 탈선의 길을 택했다며 '표지' 기사의 동기를 영리적 목적을 노린 것으로 비하했다
사회당의 중견 정치인 피에를 모스코보비치(Pierre Moscovovich) 의원도 <마리안느>의 사르코지의 정책 비판에 공감하지만 대통령을 "공화국의 불량배"로 표현한 표지는 "적절치 않다"고 말하고 사르코지가 극우 유권자를 끌어들이려는 계산에서 외국인을 혐오하는 표퓰리즘에 편승하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작은 르펜"(극우정당의 전 당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할 뻔 했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마리안느>, "표지"의 반대 의견 충실히 반영
<마리안느>는 '표지' 기사를 비난하는 여당 정치인들의 항의를 그대로 인터넷판 <마리안느2(Marianne2)>에 보도했을 뿐 아니라 독자들의 찬반 의견도 균형있게 반영했다. 자기 주장만 싣고 반대 의견은 곧잘 묵살해 버리는 우리 주류언론이 배울 점이다. <마리안느2>는 문제의 글을 읽은 대다수의 독자는 <마리안느>의 주장에 공감했지만 '표지' 기사를 비판하는 독자들도 있고 소수지만 여당의 주장에 공감하는 독자들도 있다면서 그 의견을 그대로 보도했다. 사실 '표지' 기사에 대해 언론이 앞으로 참고해야 할 내용은 정치인들의 항의보다 독자들의 반응 속에 훨씬 많았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존경은… 대통령의 직무를 잘못한 개인에게까지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 베르나르(JM Bernard)는 "장-프랑솨 칸의 글을 읽어 보고 느낀 소감은 글에 전혀 악의가 없었으며 논리가 뚜렷하고 근거가 분명했다"고 판단했다. 이본 라보드리쉬(Yvon Labaudruche)도 "자료로 잘 뒷받침된 긴 논고(論告)였다"는 의견이었다. 그는 비판자들이 원문을 읽어 보지 않고 제목만 가지고 따지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마리 통쿠르(Marie Toncourt)도 "제목만 읽은 우익의 반응에 아주 놀랐다"고 했다. 미카엘 슈페히트(Michael Specht)는 "표지 제목에 대한 비판은 일관성이 없다. 왜냐하면 불량배라는 표현은 사르코지 그 개인의 행동에 대한 것이지 그가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화국은 잡지의 작은 제목의 표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현 대통령에 의해 더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독자 키오스크(Kiosk)는 "사실 문제의 제목은 (사르코지에게는)일종의 자업자득이다. 존경은 대통령의 직무에 대한 것이지 그 직무를 아주 잘못한 개인에게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뤽 크로코딜(Luc Krokodile)도 같은 의견이었다. "비판권력인 언론에 대해서 비열하게 공격하는 사람에게는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언론에 대한 과격한 공격은 어떤 지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그렇게 저속하게 나올 때는 반격도 상응하지 않을 수 없다" 키오스크의 지적은 최근 몇 달 동안 사르코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언론의 비판 대상에 오르자 이들이 언론을 적대시하고 스캔들을 폭로한 언론인을 "파시스트", "파시스트-트로츠키스트" "30년대 친 나치 기자들과 비슷한 자들"이라는 과격한 표현으로 공격한 사실들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래서 독자 중에는 <마리안느>의 반격이 오히려 충분치 않다고 보는 의견도 있었다.
비판의 사실 자체를 떠나서 기사가 외국에서 일으킬 반응을 고려해보라는 독자의 의견도 있었다. 독자 기게스(Guiguess)는 필자 장-프랑솨 칸에게 주는 충고에서 "당신이 대통령의 지위를 너무 모욕하면 당신은 그에게서 임무 수행에 필요한 신뢰를 박탈해 버릴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표지' 제목이 <마리안느>의 잘못으로 판정이 안 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외국에서는 국가원수가 웃음꺼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라고 충고했다.
프랑스 혁명 정신 부인하는 대통령
<마리안느>의 '표지" 기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최근 사르코지가 취해 온 정책과 그의 정치 행보를 좀 알 필요가 있다.
사르코지는 2007년 대선 때 이민억제와 치안강경 대책으로 극우 정당 지지표를 많이 끌어들였고 이것이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믿고 있다. 사르코지는 언론 사주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언론을 잘 이용하는 여론조작의 도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인기는 당선 이후 최하 수준인 30%선이다. 8월26일 발표된 TNS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가 2012년 대선에 재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이 62%에 달한다. 그가 재출마해도 사회당의 스트로스칸과 맞붙을 때는 57%대 43%로, 사회당의 여성 당수인 마르틴 오브리와 대적했을 때도 53%대 47%로 패배할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러한 불리한 여건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극적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낀 사르코지는 지난 7월말 남부 그르노블 시에서 집시의 검거 축출, 주거부정자들의 이동 억제, 외국 태생 프랑스 시민이 경찰에게 폭력을 가하는 범죄를 범했을 때는 프랑스 국적을 박탈하는 등 노골적인 외국인 차별정책을 새로 발표했다. 치안문제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보수 유권자를 겨냥한 장기 선거포석이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일부 보수층을 제외하면 부정적이다. 특히 외국인 태생 프랑스 시민을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시민과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국적 박탈 조치에 대해서는 보수 안에서도 비판이 많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선포한 프랑스 혁명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헌법에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안느>가 표지에 사르코지를 "공화국의 불량자"라고 지적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르코지가 대선 때 불법으로 받았다는 정치자금 의혹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한국식 특검 도입 요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 보도에 대해서 여당의 언론비판 표현이 막말 수준이다. <마리안느> '표지'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기사에 문제 있으면 "사르코지더러 고발하라고 해라"
<마리안느>는 상업언론이 아니다. 1997년 문제 기사의 필자인 장-프랑솨 칸(Jean-Francois Kahn)과 현 발행인인 모리스 자프란(Maurice Szafran)이 공동 창립한 주간지로 '혁명적 중도'라는 독특한 노선을 표방한 매체이다. 진보매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중도 정당(UDF)의 프랑솨 베이유를 지지했고 이념적 독립을 강조하는 '튀는' 잡지이다. 그래서 수입의 95%를 잡지 판매에 의존하고 광고 의존도는 5%에 불과하다. 2005년에는 부수가 25부로 늘었고 2007년 대선 때는 50만부 판매를 기록했다 평균 판매고는 22만부. 필자 칸도 1938년생 원로 언론인이며 작가로 <마리안느> 전에는 주간 <에베느망 드 죄디(Evenements de jeudi)>를 독자의 주식 공모를 통해 발행한 역시 '독특한' 언론인이다. 이번 '표지' 기사도 <마리안느>의 장-프랑솨 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다른 매체와 '동업자' 관계는 원활하지 못한 편이다.
"사르코지 공화국의 불량배" 라는 '표지' 제목만 놓고 보면 일단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칸이 쓴 무려 12 페이지에 달하는 사르코지의 정책과 행동에 대한 긴 '논고'는 어디에도 대통령에 대한 "불경한 표현"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사르코지를 변명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눈에 띤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정책과 행동이 "공화국의 가치"를 훼손하고 비민주적이라는 논리적 지적 또한 명확하다. '논고'만에 근거해서 본다면 칸의 말대로 "공화국의 불량배"라는 표현은 오히려 온건한 편이다. 여기에서 대통령의 비판 표현 기준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느냐 는 문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마리안느>가 자기들의 표현에 전혀 '수세'가 아니라 당당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사실을 보도한 <엑스프레스>나 <포앵> 같은 고급지들이 분명한 평가를 보류하고 있는 '심정'이 짐작이 간다. <르몽드>가 15일자 보도에서 "잡지가 '사르코지 공화국의 불량배'라고 제목을 달 수 있는가?"라는 의문 제목을 달았을 뿐 의문에 대한 자기 판단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의문은 있지만 가부 결정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안느> 독자가 지적한 것처럼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원칙을 적용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불경" 기준도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더구나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행동을 할 때 그 때는 모든 타부는 사라진다는 생각이다. 그때는 주권자인 국민의 저항권이 정당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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