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 다니랴, 아이 돌보랴 바쁜 이기영 씨
이기영(36) 씨는 초등학교 1학년과 네 살 된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일 하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다. 첫째야 그렇지만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둘째 때문에 늘 칼 퇴근을 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직장 상사의 눈치주기가 장난이 아니다.
지난 2월에는 어린이집에서 둘째 아이가 네 살 반에서 다섯 살 반으로 올라간다며 진급식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연차를 낼까 말까 망설였다. 이미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느라 연차를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연속해서 연차를 낼 경우 직장 상사의 질타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한참을 고심한 끝에 연차를 신청했다. 다른 부모들은 다 오는데 자신이 가지 못했을 경우, 아이가 실망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차 신청서를 내자 직장상사는 짜증을 내면서 "잘한다. 졸업식이라 빠지고 입학식이라 빠지고…. 그럼 언제 일을 하겠다는 거냐.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라며 신청서를 던졌다.
연차를 주어진 대로 다 쓰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직장상사가 야속했다. 그간 둘째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려서 병간호 할 때 3일과 입학식 하루를 빼고는 연차를 내본 적도 없었다. 같은 자식 키우는 부모인데 부모의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직장상사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2. 둘째 아이를 가진 뒤 고민 중인 이수연 씨.
결혼 3년 차인 이수연(31) 씨는 얼마 전 둘째를 임신했다. 기쁨이 컸지만 현실을 생각했을 때 이래저래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A/S회사에 다니고 있는 남편의 한 달 월급으로는 둘째를 양육한다는 게 버겁기 때문이다.
그나마 첫째 아이를 낳기 전, 이 씨가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생활이 괜찮았다.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월급을 받던 당시엔 한 달에 한 번 외식도 하고, 액세서리 등으로 집안도 꾸몄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뒤 회사를 그만두고는 외식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하루하루 생활비가 떨어질까 걱정을 하며 살고 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병원비부터 걱정이다. 일을 하고 싶지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여태껏 재취업을 하지 못했다. 친정, 시댁 모두가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고 했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수 있는 나이가 되어 슬슬 다시 일을 할 생각을 했지만 둘째 아이를 가진 뒤 재취업의 꿈은 멀리 날아갔다. 이 씨는 10년 가까이 제빵사로 일해 온 전문가다. 하지만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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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부의 보육지원제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능력 있는 젊은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건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한 모습이 됐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는 여러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아이를 낳고도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여성의 경우는 대부분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만약 가족이 아이 양육을 도와주지 않을 경우,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18일 발표한 '7월 여성 고용동향'에 따르면 출산,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 현상으로 나타나는 'M커브'(20~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는 현상)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여성의 고용율은 지난 2000년 52.5%, 2009년 52.7%로 정체돼 있는 반면, 20대와 40대는 같은 기간 각각 54.9%에서 58%로, 62.5%에서 64%로 높아졌다.
취업정보사이트 인크루트가 과거 직장을 그만 둔 경험이 있는 여성 8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출산 및 육아로 직장을 그만 둔 경우가 54.2%를 차지했다. 반면 직장인들이 퇴사를 선택하는 일반적인 이유인 근로조건 불만족은 20.3%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제도 등을 도입하고 안착시키는 게 아니라 단순히 보육료 지원에만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국비와 지방비를 합하면 연간 3조4000억 원 정도를 보육비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시설 미 이용자 및 육아지원정책을 적용받지 않는 아동은 111만 명(40%)이나 된다.
특히 만 0세 유아의 경우 월 표준보육 단가가 1인당 38만 원으로 책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0세 유아들은 집에서 아이 엄마가 직접 돌보거나 시부모, 친정부모가 키운다.
이수연 씨는 "어린이집의 경우, 신생아를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정부는 단순히 보육료만 지원할 뿐,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제도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생색내기에 불과한 육아 휴직과 직장내 보육시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탁아소 등에 아이를 맡기고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아이를 낳으면 최대 2년까지 육아 휴직을 낼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장려하고 있지만 사실상 2년을 채우는 여성은 없는 상황이다. 회사에서는 길게 육아 휴직을 내는 걸 원하지 않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월 50만 원으로 묶여 있는 육아 휴직비도 여성이 육아 휴직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나마도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만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엔 아이를 낳을 경우,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한국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선진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직장 내 설치하도록 돼 있는 보육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영유아보육법 제14조 및 시행령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유명무실하다.
이 법규에 따라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민간 사업장은 모두 536곳이지만 보육시설을 직접 설치한 사업장은 전체의 3분의 1도 안 되는 155곳에 불과하다. 설사 설치돼 있다 하더라도 여성 직원이 300명이 넘는데, 수용 인원은 30명에 불과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나머지 사업장 중 93곳은 보육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29곳은 다른 어린이집에 위탁하고 있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장도 절반에 가까운 259곳에 달한다. 이런 이유는 직장보육시설 설치는 의무화했지만, 제재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설치를 한다 해도 '생색내기'식에 그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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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가사업무 등의 사회화가 필요"
보육 지원도 지원이지만 아이를 보육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여성의 경우, 경력 단절로 인해 아이를 기른 뒤 취업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 중 결혼-출산 전 정규직으로 일하던 사람은 88.6%였으나 이후 재취업을 했을 때, 정규직으로 취업한 비율은 66.6%에 불과했다.
해당 직종에서 가장 실질적인 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일에서 손을 놓게 됨으로서 전문가가 되기 힘들고, 이에 따라 재취업을 할 경우, 단순직이나 계약직 등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육아 부담이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 참가를 가로막는 실질적인 족쇄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여성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만 맡겨져 있는 보육, 가사업무 등이 사회화될 수 있도록 돈을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 위원은 "여성 경력의 단절은 OECD국가 중 일본과 터키, 그리고 한국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탁아소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베이비시터의 제도화 등 사회적으로 보육을 보장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보육의 사회화를 주장했다.
은 위원은 "물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둘 경우, 나중에 재취업을 하려 했을 때 손쉽게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 위원은 "선진화는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질 좋은 일자리의 제공과 자유로운 노동시장 진출을 위해 정부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행하는 가장 높은 여성 고등교육 이수 비율을 가진 나라다. 반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53%) 여성 사회활동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더디기만 한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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