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 엄마 아빠는 봉?①] "보육료 지원은 남 이야기, 도대체 누가 받는거야?"-말 뿐인 '무상 보육' 실현은 언제? ☞[아이 키우기, 엄마 아빠는 봉?②] 워킹맘의 '미션 임파서블', '갓난아기 내 손으로 키우기'-'육아 휴직' 못 쓰는 엄마만 '죄인'? |
#1. 직장을 다니는 김가영(29) 씨는 이제 막 25개월에 접어든 아기를 키우고 있다. 일 때문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아니라 맡기는 시간이 짧다. 보통 오전 8시 40분께 김 씨가 출근길에 데려다 주고, 오후 4시쯤 친정어머니가 찾아온다. 김 씨는 퇴근한 뒤 저녁 8시께에나 친정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얼마 전에는 친정어머니가 김 씨에게 어린이집에 아기 기저귀가 없는 거 아니냐고 다그쳤다. 알고 보니 아침에 입고 간 팬티형 기저귀를 저녁에 아이를 찾으러 갈 때까지 입고 있었던 것. 김 씨는 어린이집에 일반 기저귀를 가져다 놓았다. 결국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기저귀를 한 번도 안 갈아줬다는 이야기가 됐다. 한참을 고민하다 남편 대신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 담당 선생님에게 물었다. 아이가 이틀 동안 내내 같은 기저귀를 차고 왔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그런지 몰랐다"고만 답했다. 결국 앞으로 조금만 더 신경써달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시 기저귀는 바꿔지지 않았다. 덕분에 여름날 아이 엉덩이는 짓무르게 됐다. 결국 2주도 안 돼, 친정 엄마가 참지 못하고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했다.
#2. 지난해 홍지선(가명) 씨는 16개월 된 딸아이를 2007년 새로 생긴 사설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는 지난 겨울 내내 감기에 걸렸다. 홍 씨는 앓는 아이가 안타까우면서도 어린이집에 다니면 잔병치레가 많기 마련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린이집을 그만둔 보육교사가 '진실 선언'을 하면서 터졌다. 보육 교사는 어린이집 원장이 겨울에 툭하면 난방을 하지 않았고 약속과 달리 식재료도 '친환경'으로 쓰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알고보니 원장은 다른 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문제가 되자 이명화 씨 동네로 와서 다시 어린이집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부모들은 격앙했고 해당 구청에 항의도 하고 자신의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에 옮기려 하기도 했다. 홍 씨도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에 옮기려 했다. 그러나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어지간하면 그 어린이집 다니시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어렵게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홍 씨는 "그런 전례를 가진 사람이 계속 어린이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어이없지만 다른 어린이집들이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받아주지 않아 더욱 황당했다"고 분노를 토로했다.
부실 어린이집 쫓아낼 '채찍'이 없다
2009년 기준 한국에서 운영 중인 보육시설은 3만 6550개에 달한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자체가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는 수준.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여전히 많은 부모들은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단지 어린 아이를 맡기는 엄마아빠의 노파심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단속되지 않는 부실 어린이집의 먹을 거리, 시설, 안전 등의 문제와 어린이 성폭력이라는 '범죄'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나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인증제'를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5년부터 '어린이집 평가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서울시도 '서울형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평가 인증에 통과한 어린이집은 보건복지가족부 명의의 인증서와 인증 현판을 받아 부착할 수 있고 서울형 어린이집 역시 마찬가지다. 일정 수준의 어린이집을 인증하고 이들 시설에게 보육교사 인건비 등을 지원함으로써 '경쟁'을 통해 전체 시설의 질을 높인다는 일종의 '당근' 정책이다.
문제는 평가 인증제를 통해 퇴출된 어린이집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평가인증을 받을지 여부는 필수 사항이 아니라 어린이집에서 자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다. 보건복지부의 '평가 인증' 제도의 경우 통과율도 높다. 지난 6월 1일까지 보건복지부는 2만 9084개 어린이집을 검사했고 이중 70%인 2만 324개가 인증을 받았다. 약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 등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터라 인증 절차 도중 중도 포기한 어린이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절차를 최종까지 마친 어린이집 중 93% 가량이 인증을 받는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어린이집 인증에 권리금이 붙어 매매까지 이뤄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증 결과는 한국보육진흥원 평가인증국(www.kcac21.or.kr), 전국보육정보센터(www.educare.or.kr)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퇴출'은 커녕 인증에서 탈락한 곳도 공개되지 않는다. 이상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은 "이제까지 평가인증제를 통해 퇴출된 시설은 하나도 없다"면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 성폭력이나 안전사고, 보건관리 등의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져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퇴출'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례 두번째에서 홍지선 씨가 겪은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문제가 된 사람이 다시 어린이집을 열 수 있는 것도 '퇴출'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형 어린이집 역시 마찬가지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성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시 어린이집의 구상대로 민간시설이 준공영으로 가게 하려면 시설의 운영방식을 어떤 식으로 준공영화할 것이냐는 고려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이 지원만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익, 지출구조도 공개되어 있지 않고 각 시설장들의 독점권은 규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뉴시스 |
"민간끼리 경쟁해서 서비스 향상? '이윤창출' 잘하는 곳만 남는다"
'경쟁'이나 '평가 인증' 등을 통해 어린이집의 서비스나 시설 수준이 좋아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국공립 보육시설이 극도로 적은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만약 국공립 어린이집이 어느 지역이든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당연히 경쟁을 통해 국공립이 민간 시설을 견인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차피 국공립 시설은 자리가 적기 때문에 민간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민간 시설 끼리의 경쟁만 이뤄질 뿐 전혀 국공립 시설의 서비스 질 견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기준 한국의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의 5.4%, 1917개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전체 어린이집 5684개 중에 626개가, 경기도는 1만 465개 중 423개가 국공립 어린이집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그나마 나은 편. 다른 지역으로 가면 국공립 어린이집의 수는 크게 떨어진다. 부산에는 1655개 중 136개, 대구는 1500개 중 36개, 대전은 1417개 중 29개, 전북은 1506개 중 45개, 전남은 1114개 중 62개가 국공립이다. 서울 경기의 압도적인 인구밀도를 감안하더라도 지방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실제로 보육시설의 대부분을 민간 시설에 의존하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매우 드문 사례다. 출산정책에 성공한 스웨덴과 프랑스의 경우 대부분의 보육시설은 국공립으로 운영된다. 프랑스의 경우 국공립 시설이 98.5%에 달하고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7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더해 프랑스는 총 2억 유로를 들여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국공립 보육시설을 신설 또는 확대했고 2012년까지 20만 석의 보육시설을 확충할 예정이다.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민간인들이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제일 첫번째 목표는 당연히 이윤창출"이라며 "정부는 '민간 시설끼리의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사고방식이지만 현실에서는 이윤창출을 잘하는 곳이 버티는 것일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적정한 보육교사를 고용하는 등 양심적인 운영을 하는 어린이집이 적자가 나서 운영을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는 말하자면 비용이 많이 드는 국공립의 수를 늘이는 대신 난립한 민간 어린이집을 지원한다는 애매모호하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면서 "지금 서울형 어린이집은 과도하게 선전, 포장되고 있는 면이 있으나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보육교사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 외에 서비스의 질 차원에서 큰 차이를 못 느낀다. 다만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간판으로 민간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설장 독점이 아닌 민주적 통제로
정부 차원에서 '퇴출' 구조가 없는 상황에서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부모들이 비교적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시설의 특징에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과 법인 시설의 경우 교사 인건비 및 원장 급여를 정부에서 받는다. 원장이 어린이집의 '이윤창출'에서 자유로운 것이 합리적인 운영의 바탕이 된다는 지적이다.
또 주목할만한 사례는 부모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동육아'다. 성미산 어린이집 등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공동육아'의 가장 큰 특징은 부모와 교사가 육아에 함께 참여해 교육과정이나 먹거리 등에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함께 만든다는데 있다. 즉 운영과정의 공개와 민주적인 통제가 제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민간 시설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적 통제다. 현재도 학부모위원회 등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맡긴 입장에서 여러가지 비효율과 부조리를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다. 부모가 교육과정이나 먹거리 등 시설 운영에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하는 것. 이상훈 사무처장은 "자기 아이를 맡긴 시설에는 '된 소리'를 못하는 정서가 있는 만큼 같은 동네 시설끼리 학부모를 바꿔 시설 검사를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제갈현숙 위원은 '보육교사'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사실 어린이집의 교육과정이나 먹거리 문제 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보육교사"라며 "지금은 시설장과 보육교사의 관계가 종속적이기 때문에 보육교사가 이런저런 부조리를 보면서도 대부분 침묵하지만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내부적으로도 견제와 균형, 투명성이 확보되는 단초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퇴출'과 국공립시설의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 이상훈 사무국장은 "정부가 평가 인증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서 부실, 문제 어린이집을 퇴출하고 그런 시설을 기부채납 받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한다면 국공립에 대한 수요도 채우고 민간 어린이집의 부실 문제도 단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어린이집 유해물질 '전면전' 선포 3년이 지났지만 매년 여름만 되면 나오는 기사가 있다. "여름철 물놀이 용품 유해물질 심각." 이 못지않게 해마다 심심찮게 발견되는 기사가 "어린이집 유해물질 다량 검출"이다. 학교, 놀이터, 어린이집의 각종 유해물질이 심각해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과 천식 등의 환경성 질환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2007년 5월 환경부는 환경보건법을 제정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주기적인 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2008년 12월에는 어린이들 스스로 유해환경물질을 파악하고 대처하게 한다는 취지로 '어린이 환경과 건강 포털사이트(www.chemistory.go.kr)'도 열었다. 그러나 환경부가 2010년 1월 발표한 내용을 보면 참담하다. 서울 및 수도권 놀이방 어린이집, 유치원, 실내놀이터 등 168개 어린이 시설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시설에서 포름알데히드, 디클로르보스 같은 발암물질이 높은 농도로 검출된 것이다. 포름알데히드는 접착제와 페인트, 가구, 장남감 등에서 나오고 디클로르보스는 살충제 용도로 쓰이는 화학물질인데, 2007년부터 사용 금지 물질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들이 사용 중인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2009년 지식경제부가 시중에 판매되는 유모차, 보행기, 완구 등 79개 어린이제품을 조사한 결과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 지식경제부는 2010년 4월에도 조사를 했는데, 조사 대상 492개 제품 중 10%에 가까운 48개의 제품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 이와 같은 어린이용품이 어린이집에 대량 납품돼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KPS(안정인증) 등 인증을 받은 완구와 가구 등이 들어가야 하는데, 많은 어린이집들이 인식 부족, 단가 등의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아무 물건이나 들여 놓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 PB/MDF 소재의 가구를 실내 사용 금지 시키고 친환경 소재 페인트로 도장된 원목 가구를 사용케 하고 있지만, 국내 어린이집에서는 완전 대체를 못 하고 있다. 환경부는 "실내 사용 건축자재로 환경마크나 HB마크 인증을 받은 자재를 사용하도록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고, 환경보건법에는 "어린이활동 공간에 설치된 시설의 개선명령 또는 환경안전관리기준의 준수명령에 따르지 않은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제31조 제1항 제2호)이 돼 있으나 유명무실한 상태다. 개선 속도도 더디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에 입주한 어린이집들은 새로 건물을 짓거나 완전히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비용 부담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가 지난 3월 친환경 페인트와 바닥재, 벽지 등 친환경 마감재로의 시설 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불과 10개소 시범사업일 뿐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행정 체계에서는 보육 시설의 문제는 예산 부담을 거의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저출산 대책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획기적 대책과 지원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