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프랑스의 공영방송 '프랑스 텔레비전(France Television)'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임명한 레미 플림렝(Remy Pflimlin) 사장이 취임한다. 공영방송 도입 이후 대통령이 임명한 최초의 '프랑스 텔레비전' 사장이다. 기자 노조와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반대 이유는 하나.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공영방송 사장 임명…기자 노조, 야당 반발
대통령이 자기의 대선 홍보참모를 공영방송 사장으로 임명한 나라에서 보면 오히려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권력을 감시하고 비평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 매체의 사장을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언론독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반대 이유를 곧 이해하게 된다. 언론의 독립이 민주국가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안다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기자노조와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물론 사르코지 정부의 바로엥(Baroin) 예산장관까지도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실제로 '라디오 프랑스(Radio France)'에서는 1년 전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처음으로 공영방송 사장에 임명된 장뤽 에스(Jean-Luc Hees) 사장이 취임 한 이후 친 정부 보도와 방송의 정권 봐주기로 인해 기자들이 항의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라디오 프랑스'의 선례가 '프랑스 텔레비전'사장의 대통령 임명 반대의 정당성을 더욱 부각시켜 주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텔레비전' 사장의 취임이 마치 대통령의 첫 공영방송 임명처럼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같은 방송이라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영방송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에서 현직 국가권력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나라가 방송 장악으로 악명 높은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사르코지의 프랑스 말고 또 있느냐는 항의도 나왔다.
'사장 선임권' 차지한 사르코지, 그의 '솔직한' 논리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임명하는 것이 민주주의 철학이나 언론독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러데 취임 초부터 방송개혁(?)을 주장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9년 3월, 미테랑 정부가 방송위원회(CSA) 제도를 도입한 이래 CSA에서 심사하고 임명해 오던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물론 반대가 많았다. 권력이 언론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권력이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과거 공영방송 사장 임명에 정치권의 개입을 배제한다며 권력에서 독립한 방송위위원회에서 임명하게 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의중 인물들이 계속 사장이 선정돼 왔지 않느냐, 이제 위선을 그만 두고 솔직해지자. 그 대신 권력이 아무나 공영방송 사장에 앉힐 수 없도록 CSA의 심사 인준 절차는 존속시키고 새로이 상하(上下) 양원의 문화위원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검증을 받게 하며 청문회에서 5분의3이 반대하면 임명을 취소하도록 하겠다. 의회에 비토권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임명한다고 해서 아무나 마음대로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는 논리를 댔다.
사르코지의 '솔직한' 논리는 언론인이나 야당을 설득하지 못했다. 지난 6월 사르코지는 후보 순위 1위로 마음먹은 라디오 '유럽1'의 봉파르(Bompard) 사장을 포기하고 모두가 무난하다고 보는 레미 플림렝 전 '프랑스3(France 3)' 사장을 프랑스 텔레비전 사장으로 지명했다. 플림렝은 7월 12일 방송위의 인준과 상원 문화위원회의 청문을 통과하고 13일에는 하원 청문회도 통과했다. 그러나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불건전한' 임명 방식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당의 미셸 프랑세(Michel Francaix)의원은 "우리가 무슨 권리로 공영방송 사장의 직업적 적격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 참모들의 역할도 아니다" 라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사회당의 마리 엘 아미아블 의원은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비난했다.
"문제는 '누구'가 아니라 '절차'다"
플림렝 사장(56)은 개인적으로는 존경받는 방송인이다. 미셸 프랑세 의원도 플림렝 사장을 언론인으로서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명 방식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반대 이유가 사장 개인이 아니라 임명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영방송 노조(SDJ)의 입장도 같았다. 7월 21일 대통령이 플림렝을 공식으로 프랑스 텔레비전 사장에 임명한 후 공영방송노조는 ·AFP 통신에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플림렝 사자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경계한다.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그가 보여준 직업 정신을 의심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이 임명한 프랑스 텔레비전 사장은 방송의 공익 봉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결정은 하나하나가 결국 압력에 의해 나온 것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영방송 사장이 안을 수밖에 없는 결정정적인 결함을 지적했다.
대통령의 공영방송 임명에 프랑스 여론이 특히 민감한 것은 대통령 선거가 2년 안으로 다가온다는 사실과 사라코지 자신이 언론보도에 자주 개입한 '전과(前科)'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사르코지는 자신이 구축한 언론사 사장 인맥을 통해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는 철저히 막아온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6월에는 <르몽드> 매각 때도 자신이 꺼리는 인물을 입찰 후보에서 배제하라고 압력을 가해 논란을 일으킨 일까지 있다. 따라서 대선이 다가오면 플림렝이 고도의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 <르몽드>의 전망이다. 플림렝 임명 직후 르몽드가 마련한 인테넷 토론에서 미디어 전문기자인 다니엘 프세니(Daniel Pesseny)는 그것도 간접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압력이 오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사실 언론노조나 야당은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도록 무리하게 방송법을 개정한 이유가 대선을 노린 정치적 포석으로 보고 있다. 그로나 프세니 기자는 언론의 독립이 사장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으로는 기자들이 지키는 것이라며 언론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MB정부와 사르코지의 결정적인 차이
그러면 사르코지는 왜 자기 사람을 사장에 앉히지 않고 플림렝을 임명했느냐 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프세니 기자에 의하면 플림렝 사장은 '이상적인' 선택이다. 좌우 어느 쪽에도 기울이지 않은 무난한 실무 관리인이다. 현 상황에서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것이 프세이의 분석이다. 이상적인 플림렝의 임명도 반발이 있는 상황에 만약 사르코지가 자기 사람을 사장에 임명했다가는 거기서 촉발될 정치적 지진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결점이 많지만 여론을 읽는 지혜는 있는 정치인이다. 22일 임기를 다 채우고 자리를 떠나는 파트릭 드 카롤리스 사장도 사르코지의 말을 듣지 않고 공영방송의 독립을 지킨 '반대자'로 유명해진 방송인이지만 그의 무리한 교체가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서 사르코지는 그의 임기를 보장했다. 임기가 법으로 보장됐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와 MB 정권의 차이이며 프랑스와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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