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땅' 팔당을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농민들의 외침은 1년 넘게 계속됐지만, 개발의 삽날은 냉정했다. 지난달 29일, 팔당 농민들에겐 마치 '사형 선고'와 같았던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공탁 신청이 이뤄지면서, 팔당 유기농 단지에 대한 행정대집행도 한 달 앞으로 부쩍 다가왔다. 사실상 '강제 철거'가 눈앞에 닥친 셈이다.
'농지보존·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회' 유영훈 위원장(57)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단식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농민들이 올 겨울 딸기 농사만이라도 짓게 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였다.
사실 그가 단식 농성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19일 동안 끼니를 굶어가며 서울에서 팔당까지, 꼬박 50km를 도보 순례했던 그였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4대강의 '삽날'은 팔당 농민들이 30여 년간 일궈온 친환경 유기농 단지에도 들이닥쳤다. 정부는 이곳의 비닐하우스와 텃밭을 밀어낸 후 자전거도로·테마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9일 오후 서울 정동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앞. '민족의 젖줄, 4대강을 훼손하지 마라'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이날 오전부터 단식 농성에 돌입한 유영훈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안 해본 것 없이 싸웠는데…벼랑 끝에 몰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프레시안 : 지난해 첫 단식을 시작할 무렵, "최후가 아니라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단식"이라고 말했었다. 이제 팔당 유기농 단지 강제 수용을 위한 최후의 절차만 남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단식 농성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
▲ 팔당 유기농 단지 보존을 촉구하며 9일 단식 농성에 돌입한 유영훈 팔당공대위원장. ⓒ프레시안(선명수) |
프레시안 : 팔당 유기농 단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벌써 1년 3개월째다. 이렇게 긴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나.
유영훈 : 쉽게 끝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힘겨운 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 농민들이 많이 지쳤다. 공탁 결정이 난 이후로, 많이 허탈해하고 힘겨워한다. 위원장으로서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농민들은 희생을 감수하고 마지막 강제 철거까지 버틸 것인지, 아니면 투쟁을 중단하고 공사를 허용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싸워보자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프레시안 : 어느덧 팔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유영훈 : 이곳 농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워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팔당은 무엇보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정부에 말하고 싶은 것은, 최소한 농민들이 올 겨울 딸기 농사만이라도 짓게 해달라는 것이다. 공탁 결정이 난 이후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과 면담을 했는데, 공탁 철회는 물론이고 이 요구조차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4대강 사업으로 팔당의 유기농 단지를 밀어버리는 것은 단순히 농민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만이 아니다. 매년 2월부터 6월까지 3~4만 명의 시민들이 팔당에 딸기 체험을 하러 온다. 연간 15만 명이 팔당을 찾아 직접 땅을 일구며 농사의 기쁨을 느낀다. 그만큼 팔당은 훌륭한 생태 교육장이자 생명의 가치를 느끼는 체험의 장이다. 행정대집행이 이뤄지면, 당장 내년 겨울 많은 아이들이 딸기 체험을 할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4대강 저지' 싸움 끝내지 않을 것…'생명의 일꾼'인 농민의 소임"
프레시안 : 팔당 지역에서만 30년 넘게 터를 잡아왔다. 유기농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유영훈 : 1975년부터 남양주 일대에 살면서 농민 운동을 해왔다. 농민들과 함께 가톨릭농민회, 우리밀살리기운동 등을 해왔다. 원래는 1990년 말에 우리밀살리기운동을 정리하면서 팔당에서 옥수수빵 장사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협 이사장과 팔당생명살림 회장을 맡게 되면서 유기농과 만나게 됐다. 생산자, 소비자들과 관계 맺으면서 생협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다시 농민 운동에 뛰어들게 된 셈이다.
나는 '밥은 곧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농본주의자다. 유기농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며 호흡하는 상생과 평화의 농업이다. 팔당의 유기농 단지를 지키는 것은 하나의 상업으로서의 농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농업적인 세계관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당장 강제 수용을 앞둔 두물머리 지역만 봐도,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길이 만나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터전이다. 이런 곳에 생명, 평화의 상징인 친환경 유기농지를 밀어내고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팔당의 가치는 잘 포장된 자전거도로나 테마공원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
▲ 지난 5월 팔당에서 서울까지,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삼보일배를 진행한 유영훈 위원장. 그러나 청와대를 최종 목적지로 진행한 삼보일배는 끝내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다. ⓒ프레시안(선명수) |
프레시안 :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
유영훈 : 9월 행정대집행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철회 시키려면 8월에 승부를 내야한다. 지방선거 이후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은 이제 제 2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단식을 통해 4대강 사업 저지 운동의 군불을 떼려고 한다. 종교계, 정계, 시민사회와 연대를 강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포보, 함안보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이 너무 안타깝다. 나라도 단식을 해서 그들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해지고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부는 팔당 유기농지에 대한 공탁 결정으로 농민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팔당에 들이닥친 공사 장비를 농민들이 막아선다면 업무방해로 형사 입건되거나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강제 철거가 진행되면 농민들이 그 비용까지 부담하게 돼 2중, 3중의 고초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싸움을 여기서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팔당 유기농지가 이대로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내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싸움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명의 일꾼'인 유기농민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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