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양평의 눈물 "트랙터 몰고 논밭 대신 청와대로 갑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양평의 눈물 "트랙터 몰고 논밭 대신 청와대로 갑니다"

[현장] '4대강' 강제 수용 앞둔 팔당…농민 '트랙터 순례' 시도

"땅을 지키기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농기계를 이끌고 청와대로, 경기도청으로 가려고 하겠습니까. 지난 2월 공권력이 투입되었을 때처럼, 1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끌려가리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청와대로 갈 것입니다. 갈 수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초로의 농민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트랙터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농지 보존·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팔당공대위)' 유영훈 대표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생명의 땅' 팔당을 지키고자 기약 없는 싸움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 그동안 몇 차례의 공권력 투입이 있었고, 그 때마다 농민들은 번번이 끌려가야 했다.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수십 년 일궈온 농토를 잃게 된 팔당 농민들이 "이대로 농사짓게 해 달라"며 싸워온 그 1년 동안, 수백 명이었던 농민들은 이제 십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싸움은 기약이 없었고, 땅에서 빨리 떠나라는 정부의 압박은 점차 심해졌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11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일대엔 새벽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경기도가 이날부터 4대강 사업 구간인 이곳 두물머리에서 토지 측량과 감정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 11일 4대강 사업 구간인 양평군 양사면 두물머리 일대에는 경찰과 농민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난달 28일 국토해양부는 "주민 반발로 감정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는 두물지구에 대해 사업 일정을 고려해 최대한 빨리 감정 평가를 실시하겠다"면서 공권력 투입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10월과 지난 2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의 유기 농지에 측량을 위한 공권력을 투입한 바 있으며, 지난달 28일엔 팔당 유기 농지의 강제 수용 방침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팔당공대위 서규섭 집행위원은 "어제 저녁 경기도에서 6월 지방선거 때까지 강제 측량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고 말했다. 사실상 선거 이후로 공권력 행사를 미룬 셈이다.

공권력 투입에 따른 강제 연행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농민들의 고립은 더욱 심해졌다. 이날 경찰의 행동은 '두물머리 고립 작전'을 방불케 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두물머리로 들어오는 차량을 통제했다. 진입로 하나만 차단하면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농민들의 농성 소식을 듣고 찾아온 환경단체 회원들은 두물머리로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유기농 단지의 '딸기밭 체험'을 하러 온 초등학생들도 덩달아 불편을 겪었다.

트랙터 몰고 "청와대로"…그러나 청와대는 멀었다

"봄철 누구보다 바빠야 할 농사꾼들이, 자식보다 소중한 농토를 버리고 아스팔트로 나갑니다.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팔당 상수원 더럽히지 마라'라고 쓰인 펼침막을 앞세워 트랙터 두 대가 시동을 걸었다. 100일 넘게 두물머리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천주교 사제들과 농민 50여 명이 그 뒤를 이었다. 정부의 4대강 사업과 토지 수용 방침에 항의하며 청와대와 경기도청을 향해 '트랙터 도보 순례'를 벌이기로 한 것.

그러나 청와대로 가는 길을 멀었다. 이들의 행렬은 채 100미터도 나아가지 못한 채, 경찰 버스의 차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농민들은 "평화적으로 도보 순례를 하겠다는 것인데 왜 막아서는 것이냐"고 저항했지만, 경찰은 "도보 순례 역시 미신고 불법 집회"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맨 앞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던 농민 노태환 씨는 "1년 전 정부가 4대강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이 싸움이 이렇게 힘들게 진행될지는 몰랐다"며 "그동안 유기 농사를 짓는 게 자랑스러웠는데, 그동안 유기농을 장려하던 정부가 4대강 사업 발표 직후 태도를 바꿔 우리더러 '상수원 오염의 주범'이라고 비난할 때 그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씨는 "우리는 농사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무조건 농사짓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더욱 친환경적으로 농사짓는 대안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무조건 나가라니 말이 되는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 경찰이 도보 순례를 진행하려는 팔당 농민들을 가로막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날 청와대로 향하려는 농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 사이에는 약간의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경찰과 대치 중인 팔당 지역 농민들. ⓒ프레시안(최형락)

팔당, '눈물의 땅' 되어버린 '녹색의 땅'

팔당 지역은 국내에서 유기농의 '태동지'로 꼽힌다.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단지로, 수도권의 35만 가구에 친환경 식품을 공급한다. 1975년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뒤부터,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가 유기농이었다.

한 때 정부의 지원도 활발했다. 1995년부터 경기도와 농협은 상수원 보호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며 직거래 판로를 열어줬고, 정부는 이곳을 '유기 농업 특구'로 지정하고 유기 농업을 적극 권장했다.

농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팔당에서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린다.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는 '악조건'을 친환경 농업으로 이겨낸 사례가 인정받으면서 아시아 최초로 유기농 대회를 유치한 것.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농민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해 "팔당을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팔당의 신화'는 여기까지다. 지난해 정부가 4대강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부는 하천 부지의 비닐하우스를 철거해 유기농 단지를 없앤 뒤, 자전거 도로·테마 공원 등의 위락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사라질 면적은 총 21만여 평. 전체 유기농 단지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정부의 느닷없는 발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농민들도 100여 가구에 이른다. 그렇게 '녹색의 땅' 팔당은 한 순간에 '눈물의 땅'이 됐다.

두물머리에서 10년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팔당공대위 서규섭 집행위원은 "유기농은 땅 속의 생명체와 대화하며 일구는 상생과 평화의 농업"이라며 "정부가 지원금까지 주며 장려하던 유기 농업인데, 이제 와서 4대강 사업을 한다며 우리를 '불법 점유자' 취급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 두물머리에 투입된 경찰 병력. 뒤로 '친환경 농업 특구'라는 홍보 간판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 "우리 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 팔당 농민들이 농성장 입구에 설치한 펼침막. ⓒ프레시안(최형락)

한편, 이날 팔당 농민들과 천주교 사제들은 오후 2시께 경찰과의 대치를 중단하고 농성장으로 돌아갔다. 팔당공대위는 토지 측량과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이날부터 4박 5일간 철야 농성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농성은 매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천주교 사제들의 '생명·평화 미사'와 야간 문화제,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팔당명랑텃밭 가꾸기' 등의 행사로 진행된다.

팔당생명살림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오랜 시간 팔당 농민들과 인연을 맺어온 김양현 씨는 "팔당 유기농단지는 소비자와 농민이 함께 만들고 가꿔온 공동체"라며 "아이들과의 추억이 살아있는 팔당 유기농단지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