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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외침…"뉴타운을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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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외침…"뉴타운을 경배하라!"

[김영종의 '잡설'·17] 용산 참극과 파우스트 ①

용산 참극과 파우스트 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만나서 제목을 이루고 있다. 독자는 기묘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나 또한 두 단어를 신속히 용해시켜 직설적이고 상투적으로 말하고 싶다. 단어들의 생경한 조합이 주는 충격을 즐기기에는 사태가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자."

나는 한마디로 이 말을 하고 싶다. 여기에 쓴 글은 내 나름의 고백과 회개라고 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는 데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용산 참극 관련 시국 미사 안내문이 계기가 됐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2009년 2월 2일 저녁 7시 청계광장에서 용산 참극을 기억하는 시국 미사를 연다는 공지 아래, 제1독서라고 해서 <열왕기> 상권 21, 1-16의 내용이 나와 있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것은 파우스트와의 관련 때문이었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성서 본문'과 '용산 참극'과 '파우스트'를 동시에 생각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몇 해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심씨부녀전>에 파우스트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 <심씨부녀전> 때문에 나는 용산 참극이 벌어진 순간부터 파우스트를 떠올렸다. 괴테의 원작에서 파우스트는 용산 참극과 똑같은 사건을 저지른다. 이 사건은 '파우스트'를 이해하는 난관이자 관건이다.

아무튼 <파우스트>의 위대성은 근대 전체를 포괄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파우스트를 넘어서면 근대를 넘어서는 것이 된다. 내가 용산 참극을 파우스트와 관련지어 보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용산 참극은 근대 너머에서 봐야만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가 관객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옛날에 있었던 일이 여기서 일어나는군요. '나봇의 포도원'이라는 게 벌써 있었지요."

이 말은 바로 내가 외치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사제단도 외치고 싶은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지다니!

'나봇의 포도원'은 시국미사 안내문에서 제1독서로 지정한 성서 본문의 내용이다. 좀 길지만 아래에 그대로 옮겨보겠다.

○옛날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마리아를 다스리고 있는 아합 왕의 별궁 근처에 있었다. 어느 날 왕이 나봇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원은 내 별궁 근처에 있으니 나에게 양도하게.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원을 마련해주지. 만약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시가로 따져서 현금으로 계산해줄 수도 있네." ○그러나 나봇은 왕의 청을 거절하였다.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이 포도원을 임금님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천벌을 받을 짓입니다."

○나봇이 선조의 유산이란 이유로 요구를 거절하자 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음식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 이세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상심이 되시어 음식까지 물리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나봇이란 자에게 그의 포도원을 시가대로 팔거나, 아니면 다른 포도원과 바꿔달라고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포도원을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이오."

○그랬더니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답게 처신하십시오. 제발 일어나셔서 기분을 돌리고 음식을 드셔요. 내가 나봇의 포도원을 당신께 선물로 드리리다." ○여자는 왕의 이름으로 밀서를 써서 옥새로 봉인하고 그것을 성읍 시의회에서 나봇과 한자리에 앉아 있는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에게 보냈다. ○밀서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단식을 선포하고 백성들 앞에서 나봇을 상석에 앉힌 다음, 무뢰배 둘을 그 맞은편에 앉혀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욕하였다고 고발하게 하여라.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서 죽여라."

○성읍의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은 이세벨이 밀서에서 지시한 대로 하였다. 그들은 나봇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인 다음, 이세벨에게 보고하였다. 이세벨은 왕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나봇이 팔지 않겠다고 한 그 포도원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왕은 일어나 나봇의 소유였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려갔다.


읽어본 소감이 어떠한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봇, 아합 왕, 이세벨 왕비,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 무뢰배들. 이들은 용산 참극에서 어떤 역을 맡은 걸까?

악마 메피스토의 외치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옛날에 있었던 일이 여기서 일어나는군요. 나봇의 포도원이라는 게 벌써 있었지요."

관객들은 '용산 참극'을 방불케 하는 연극 <파우스트> 5막을 관람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관객들은 지금 간척 사업을 하는 파우스트가 노부부를 강제로 이주시키다가 불에 태워 죽인 사건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그게 궁금하다.

나는 여태껏 파우스트가 저지른 만행을 비난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사태가 이 정도면 인류 전체가 집단적으로 최면에 걸려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까닭은 현대인이 근대적 인간의 전형(파우스트)이 추구하는 '지고의 가치관'에 최면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확언한다. 이 점은 차차 설명하겠다.

ⓒ김용철

그러면 파우스트가 과연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간단하게나마 알아보자. 죽기 직전 파우스트는 황제한테 하사받은 해안 지대를 매립해 개간지를 만든다. 그곳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인류애 가득한 계획을 세운다. 개간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전망대를 세우려 하는데, 거기에는 노부부가 평생을 두고 살아온 오두막이 있다.

파우스트는 저 오두막 하나 때문에 자신의 유토피아를 망친다며 악마 메피스토를 불러 개간지 중에서 좋은 땅을 떼어주고 거기로 옮겨 살게 하라고 명령한다. 악마가 깡패 부하들을 데리고 오두막집으로 갔지만, 노부부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악마와 깡패들이 강제 철거를 시작하자 숯불이 짚으로 옮아붙어 노부부와 (머물러 있던) 나그네가 함께 불타 죽는다.

이 장면을 보고 어느 누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분노는커녕 오히려 훌륭한 일로 미화되고 있다. 이것이 고급 문학계의 현실이자 현대 문명의 자화상이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하겠다.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면 '파우스트 만행'에 대한 평가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어렵기로 악평이 난 <파우스트>를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그런 무모한 이야기가 아니다. 근대적 거인상을 갈망하는 우리의 가치관을 비판하자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용산 참극'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초라한 것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 이쯤에서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와 함께 살펴보자. '나봇의 포도원'을 요약하면,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욕심으로 나봇에게 하느님과 왕을 욕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인 내용이다. 요즘 식으로 보면 하느님과 왕을 욕한 죄는 이데올로기와 법을 어긴 죄에 해당한다. 하느님을 욕하면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듯 파우스트는 노부부의 오두막집을 빼앗았다. 자신의 유토피아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만인의 행복을 위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다. 아합 왕도 하느님을 들먹거리며 빼앗았으니 이 역시 이데올로기다. 용산 참극도 다르지 않다. 뉴타운 건설이라는 게 뭔가?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면 사람을 그렇게 참혹하게 죽여 놓고도 법과 질서 운운할 수 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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