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득표율 15% 획득, 300 공직자 배출'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웠던 민주노동당이 예상 밖의 결과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급 단체장 선거보다 정당 득표율과 광역, 기초의원 선거 결과에 더 주목해 온 민노당의 기류상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오기까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선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전국정당 목표 달성 실패…있던 구청장 자리도 내 줄 판
31일 오후 6시 KBS-SBS 합동 출구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민노당의 정당 득표율은 9.7%에 불과했다. MBC 출구조사에서는 13.2%로 나타났지만 모바일 조사가 포함되어 있어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민노당은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8.13%, 2004년 총선에서는 13.5%의 정당득표를 얻었었다.
이에 따라 전국 16개 광역시도 의회에 모두 비례대표 의원을 진출시켜 유일한 전국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인천, 대전, 충북, 충남, 경북, 대구 광역의회에서는 당선이 힘들다는 것. 민노당은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9개 광역의회에 비례대표 의원을 진출시킨 바 있다.
물론 기초단체장 2명을 포함해 45명의 공직자를 당선시켰던 지난 2002년보다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오겠지만 당초 기대와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짙다.
또한 민노당은 246개 광역·기초 단체장 선거에서 한 석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울산광역시장 후보로 나선 노옥희 후보가 2위를 달리고 있을 따름이다. 지난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던 울산 동구와 북구 역시 당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진보정치'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울산의 각급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에 완패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관심이 집중됐던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3%대 득표로 민주당 박주선 후보에게도 뒤져 4위로 밀려났다.
"정권심판론 먹혔지만 결국 표는 한나라당으로 갔다"
민노당이 열린우리당을 향해 먼저 공세적으로 '사표론'을 제기했을 정도로 그간 지긋지긋하게 민노당의 발목을 잡아온 '사표론'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막상 '실리는 없었다'는 분석이다.
민노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노무현 정권, 우리당 심판론은 아주 잘 먹혔었다"면서 "그러나 돌아보니 그 표가 고스란히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권심판론에는 한 몫 했지만 막상 반(反)정권의 대표주자는 한나라당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당직자는 "기초, 광역의회 선거 결과는 좀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각 시도 광역의회의 나눠먹기식 선거구 쪼개기를 막지 못한 피해도 클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번 선거에 총 800명의 각급 후보를 출마시킨 민노당은 공식적으로는 '정당 득표율 20%, 각급의원 300명'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내부적으로는 "15% 득표, 200명 당선이라는 결과만 나와도 아주 선전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전북지역에서 25%를 상회하는 정당 득표가 예상되고 제주, 강원 등지에서도 20% 가까운 득표가 점쳐지긴 하지만 '돌풍을 일으키겠다'던 인천, 경기 광역단체장 득표율은 한 자리 숫자에 그치고 기존 강세지역이던 울산, 부산, 경남 등 '영남진보벨트'의 광역단체장 후보들만 두 자리 숫자 득표가 점쳐지고 있을 뿐이다.
'정체성 강화' '대중성 강화' 두 마리 토끼 잡으려 했지만
특히 노옥희 시장 후보가 27%의 지지율로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시절부터 구청장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동, 북구의 패배도 확실시 되는 울산 선거결과는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노조, 자치단체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서 '차별성'을 보여줬던 두 기초단체를 놓침으로서 '진보적 행정'을 보여줄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또한 '대공장 조합원 중심 사고를 탈피해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반성'의 차원에서 '현장추대'후보로 경선에 나서 지명도에서 월등히 앞선 김창현 전 사무총장을 꺾고 본선에 뛰어들었던 노옥희 후보의 참패는 더 뼈 아프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송철호 후보가 거둔 43.1%의 득표율과 비교해 봐도 반 토막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계급성 강화를 통한 정체성 확립'이 '대중성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것.
이에 대해 김선동 사무총장은 지난 28일 "기존 핵심지지층에 플러스 알파를 어떻게 더 보태느냐가 문제인데 당의 정체성을 저버리면서까지 대중성 쪽만 강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선거 이후 울산사례를 면밀히 분석해 중장기적 해답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경남 거창에서 발생한 민노당 초유의 '현금살포' 사건은 이와 정반대 지점에서 숙제를 남기고 있다. 쌀개방, 한미 FTA 등으로 인해 기존 정치권에서 이탈한 농심(農心)이 일부 민노당으로 돌아섰고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 100여 명이 민노당 간판으로 출마하기도 했지만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다.
당 조직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던 경남, 전남의 일부 지역에서 급조된 후보들 일부가 기존 관례나 지역적 특수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고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민노당의 정체성을 익히기는 고사하고 입당조차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선거운동에 뛰어들기도 한 것이다. 결국 '대중성의 강화'가 남긴 상처인 셈이다.
대선후보군 조기 과시화로 국면전환 가능할까?
5.31 지방선거가 당장 지도부 총사퇴 등 극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선거 결과를 현 지도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땅한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지도부 총사퇴까지는 가기 힘들겠지만 지도부 책임론은 안 나올 수 없을 것"이라며 "한바탕 소용돌이를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민노당 내에선 다시 '혁신론'이 높아지는 한편 대권후보군을 조기에 가시화해 국면전환을 꾀할 가능성이 짙다. 천영세 원내대표는 이미 "다른 당에 못지않게 우리도 대권 후보들이 역동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고 말했었다.
당 안팎에서 유력주자로 꼽히는 권영길, 노회찬 의원 역시 의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권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솔직히 2007년 대선도 고민의 대목"이라며 "역사적 소임도 있을 것이고, 당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요구도 있을 테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역사적 소임을 달성하기 위해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사실상 출마 의사를 밝혔다. 권 의원은 "추대보다는 경선 형식이 더 낫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 의원도 30일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당원들과 당 주변의 여러 경륜 있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계획은 다 짜놨다"면서 "대선 후보를 당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당의 철학을 후보가 따라가는 게 민노당에서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TV토론 능력, 대중성 등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냉정한 현실'을 확인한 민노당이 어떤 모습으로 위기를 돌파할지가 '5.31 이후'의 또 다른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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