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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분노, 버핏의 삽질 중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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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준구의 분노, 버핏의 삽질 중단론

[홍헌호 칼럼] '매몰비용' 함정에 빠지면 4대강 재앙 못 막아

"일단 저질러라. 그럼 아무도 못 막는다."

사춘기 아이들에게서나 통할 이런 주장이, 나이 지긋한 정부 관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종종 본다. 4대강사업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풍경이다. 4대강사업을 옹호할 구실을 도저히 찾지 못하니까, "이미 시작한 일이라서 멈출 수 없다"고 우기는 게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매몰비용(sunk cost, 지출되었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 개념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매몰비용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게 경제학 상식이다. 그러나 4대강사업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 상식을 잊은 지 오래다. 매몰비용 때문에 4대강사업을 접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준구의 분노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지난달 30일 장문의 글을 통해 4대강사업 매몰비용 운운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가 자신의 개인홈페이지에 올린 글('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에는 4대강사업의 공정이 이미 30% 이상 진전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이비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제학의 기초만 갖고 있어도 이 논리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토목공사에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은 무슨 수를 쓰든 회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매몰비용의 성격을 갖는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매몰비용은 얼마가 되었든 잊어버려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미련 없이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4대강사업의 계속 여부를 고려할 때 이제까지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미래의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즉 공사를 계속해 우리의 국토를 더 망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여기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이미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더 이상의 파괴를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응당 잊어버려야 하는 매몰비용에 연연해 추가적인 파괴를 용인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이미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으니 공사를 계속하자는 사이비 논리는 비단 이번뿐 아니라 늘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도 이와 똑같은 논리가 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토건족은 언제나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일단 저질러 놓고는 이 사이비 논리를 동원해 공사를 계속할 빌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버릇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4대강사업과 관련해 그와 같은 사이비 논리가 발을 붙일 틈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


이 교수는 최근 펴낸 <36.5℃ 인간의 경제학>이라는 저서에서도 콩코드(Concorde) 초음속 여객기 개발사례를 예로 들어 매몰비용에 연연하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한 초음속 여객기 개발프로젝트는 생산비용이 높은 반면, 수입 창출에 문제가 있어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이미 많은 돈이 투입되었다는 이유로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투자를 하여 결국에는 엄청난 손실을 떠안고 이 사업을 포기한 바 있다.

▲부산지역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는 지난달 28일 오전 부산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 낙동강권역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항공사진, 동영상 등과 함께 공개했다. 오탁수로 오염된 낙동강.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제공

보수언론들에 실린 매몰비용 관련 글들

흥미로운 것은 보수언론들도 매몰비용에 연연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 <조선일보>는 지난 2월 20일 <의사결정의 함정을 돌파하라>는 민재형 서강대 교수의 글을 실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떠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이미 지불된 비용에 연연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매몰비용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앞으로의 의사결정에는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몰비용에 근거해 그 후에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가 더 이상 매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에 이미 투자한 비용 때문에 계속 진행하는 잘못을 범한다. 이미 낸 돈이 아까워 상한 음식일지라도 계속 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글에서 민 교수는 "매몰비용의 포기를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가치 있는 정보에 대한 대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필요하다"며 워런 버핏(Buffet)의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인용했다.

"당신이 구덩이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

<매일경제>도 지난 4월 14일 '매몰비용은 엎질러진 물'이라는 기사를 통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매몰비용에 대한 철저한 무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역시 2007년 1월 31일 기사에서 "매몰비용은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그 대신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추가로 들어가야 할 비용만을 비교하면 된다"고 썼다.

<한국경제> 또한 2007년 8월 3일 기사에서 도박꾼들이 패가망신하게 되는 원인을 매몰비용의 오류로 설명했다. 도박꾼들은 "돈을 잃으면 본전을 찾을 때까지 버티다 결국 남은 돈마저 다 잃"게 되는데 이것은 이들이 "미래 가치보다는 과거에 편향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몰비용과 주식투자

많은 설명을 해 주어도 여전히 매몰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필자가 평소 들려주는 두 가지 사례도 소개해 본다.

예를 들어 어느 은행이 A기업에 1000억 원을 대출해 주었는데, 그 기업이 중대한 경영실책으로 부도직전에 몰렸다고 하자. 추가대출을 해서 이 기업을 살려야 하나. 아니면 추가대출을 포기하고 1000억 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나.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 기업을 살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1000억 원의 손실을 떠안는다. 왜냐하면 손실을 만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독에 물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1999년 무렵 코스닥 열풍에 힘입어 얼마간 목돈을 마련한 필자는 투자자들에게 항상 이렇게 조언한다.

"세상은 넓고 강세장에서 차익을 안겨줄 주식은 많다. 손실을 줄이려 약세장에서 김 빠진 주식을 들고 모험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약세장이 도래할 낌새가 보이면 미련없이 시장을 떠나고, 사둔 주식에 대한 매수열기가 없으면 미련없이 그 주식을 버려라."

매몰비용과 4대강사업

4대강사업도 마찬가지다. 매몰비용이 아깝다고 4대강사업을 지속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본전을 되찾겠다고 지속적으로 도박판에 돈을 끌어들이는 도박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4대강사업을 중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전혀 없다. 미련없이 중단하면 된다. 필자는 바로 앞에서 이렇게 썼다.

"세상은 넓고 강세장에서 차익을 안겨줄 주식은 많다. 손실을 줄이려 약세장에서 김 빠진 주식을 들고 모험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공공투자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넓고 공공투자에도 효율성 높은 부문은 많다. 손실을 줄이려 낭비만이 예정된 부문에서 모험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했듯이 워런버핏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구덩이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

공공투자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낭비만이 예정된 부문에서 삽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이런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장마철이 다가오기 때문에 공정률을 높여야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국민들을 협박한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이다.

장마철 홍수피해를 막는 최선의 길은 4대강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 중단하고, 그 예산 중 일부를 사업장 홍수피해 예방에만 쓰는 것이다. 그리고 장마철 종료와 함께 모든 사업을 종료하는 것이다.

국민들도 국토부의 궤변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보 축조나 준설의 공정률을 높이는 것이 올해 장마철 홍수피해를 막는 최선의 길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 중단이 애국의 길

그렇다면, 장마철 홍수피해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재원배분방안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민주당이 국토해양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 때까지 확정된 4대강사업 본사업비는 14조 원 정도였다. 22조 원 중 나머지 4조 원은 4대강 사업에 포함되지 못한 섬진강 유역 등에 거주하는 주민불만 해소를 위해 쓰여지고, 나머지 4조 원은 보 축조가 수질을 악화시키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이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쓰여진다. 즉 별도의 추가적인 수질개선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쓰여진다.

14조 원 중 6,7월 사업비 전액을 4대강사업이 아닌 사업장 장마철 홍수피해 예방에 쓸 경우 어느 정도 예산이 확보될까.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4대강사업 공정률은 5월 13일과 6월 3일 사이 13.9퍼센트에서 15.6퍼센트로 1.7퍼센트 포인트 높아졌다. 20일간 1.7퍼센트 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한달간 2.6퍼센트 포인트씩 높아진 셈이니 두 달이면 5.2퍼센트 포인트이고, 이는 14조 원 중 7280억 원에 해당한다.

이 돈으로 4대강 본사업 공정율을 높이는 것이 장마철 홍수피해를 막는 적절한 방법일까, 아니면 그것을 전면 중단하고, 7280억 원의 전부 혹은 일부를 홍수피해 예방에만 쓰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까. 필자는 후자의 홍수피해 예방효과가 전자보다는 최소한 5배 이상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일은 4대강사업 미집행액 삭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가경정예산이 하루라도 빨리 편성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삭감되지 않은 일부 예산도 4대강 본사업 공정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장마철 홍수피해를 막는데 쓰여지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보수언론에서는 4대강사업 중단에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다. 야당출신 지자체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지 몰라도 야당이 할 일은 매우 많다. 4대강사업 미집행액 삭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가경정예산이 하루라도 빨리 편성되도록 압박하라. 그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다. 도박꾼 가족들이 도박꾼을 하루라도 빨리 도박장에서 빼내는 것이 패가망신을 막는 지름길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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