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명숙 패배는 정말 노회찬 때문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명숙 패배는 정말 노회찬 때문인가?

[손호철 칼럼] 노회찬을 위한 변론

"김수영 시인의 절창처럼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는' 대중이 다시 한 번 일어나야 한다. 그것만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 피울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의 민중, 대중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이 돼 주었다. '지적 비관'을 상쇄할 수 있는 이 같은 '의지의 낙관'으로 새해를 향해 나아가자. 항상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지난 해 초 촛불이 사라진 뒤 이명박 정부의 대공세가 계속되는 가운데도 침묵하고 있는 대중을 바라보며 필자가 바로 이 지면에 썼던 칼럼입니다(관련기사 보기 : '2009 명박대첩', 의지의 낙관과 '신발'로 무장하자, 2009년 1월 1일자). 김수영의 '풀'처럼 대중이 지금 바람보다 더 빨리 누워 있는지 모르지만 조만간 다시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시 다시 한 번 대중은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났습니다. 침묵하던 대중은 여론조사 전문기관들뿐 아니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라는 '종이 짱돌', '종이 촛불', '종이 총탄'으로 오만한 이명박 정부를 확실하게 심판해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선거 민란'이었습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지방선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 이번 선거에서 완주해 3.3%의 지지율을 얻은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가 사퇴하고 한명숙 후보를 밀었다면 한 후보가 승리했을 것이라는 평가에 기초해 인터넷 등에서 노 후보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한 후보의 지지자들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 심판을 바라는 사람들이 한 후보의 안타까운 패배에 대한 아쉬움에서 이같은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프레시안
그러나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이는 잘못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녀사냥입니다. 개인적으로 2003년부터 올 봄까지 7년 동안 <한국일보>와 <프레시안>에 매주 정치평론을 게재해 오다가 올 2월 개인적 사정으로 당분간 정치평론은 절필을 하기로 하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 후보에 대한 비난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민주당이 진보신당과 연합의 정치를 통해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노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에 더 많은 책임이 있습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민주당은 패권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진보신당과 같은 군소정당과의 연합에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이 점에서 이번의 후보단일화 실패는 자업자득입니다.

두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현재 비난을 받고 있는 노 후보의 예를 들겠습니다. 노 후보는 2008년 총선에서 신생정당 진보신당의 후보로 노원구에서 출마해 선전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거에서 민주당은 연합의 정치를 통해 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당선가능성이 없는 자신의 후보를 냈고 이 후보는 17%를 득표해 노 후보의 패배에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그랬던 민주당이, 이같은 민주당의 자기중심적인 전략에 침묵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왜 이번 선거에서의 노 후보의 후보단일화 거부를 비난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반년 전에 있었던 10.26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입니다. 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이 안산 재보궐 선거에 대해 공동으로 임종인 전 의원을 반MB민주후보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기회만 있으면 반MB 민주대연합을 주장해 왔던 민주당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이 대승적 입장에서 민주당이 안산을 양보할 경우 민주당이 접전을 벌리고 있는 양산의 민주노동당 후보를 반MB 민주대연합차원에서 사퇴시키겠다는 대단한 양보 제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박희태 한나라당 전 대표를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에서 패배시켜 MB정권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에 민주당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매우 우호적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조차도 민주당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양산에서도 이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져놓고도 "재보선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희희낙락하는 민주당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고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 이같은 비판에 대해 "민주당이 큰형님이니까 통 크게 양보하라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지적이다. 정치집단은 신앙심으로 뭉쳐진 희생과 헌신의 심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다시 이 지면에서 "반MB 대연합은 이미 죽었고 이 같은 살해의 주범은 바로 민주당이다"고 지적했습니다(관련기사 보기 : "민주대연합이 정세균대권연합인가?", 2010년 1월 14일자). 나아가 "안산을 양보하라는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는 단순히 민주당이 맏형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안산이라는 작은 전리품을 양보하고 양산과 박희태라는 큰 전리품을 챙기라는, 나아가 내년 지자체 선거 등에서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와 협력이라는 더 큰 전리품을 챙기라는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이 얻은 12% 대의 지지, 10.28 재보궐 선거에서 임종인 전 의원이 안산에서 얻은 15% 대의 지지, 여러 조사에서 노회찬 진보신당대표와 심상정 전 의원이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로 보여주고 있는 10-15% 대의 지지를 민주당이 이번의 신뢰상실과 민주대연합 파기로 내년 지자체선거 등 결정적인 국면에 자신들의 지지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저는 경고했습니다.

이번 서울시 선거는 이 같은 저의 경고가 그대로 현실화된 것입니다. 안산과 양산이 보여주듯이 민주당은 패권주의에 빠져 군소진보정당들의 반MB연대를 묵살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아쉬워지자 반MB연대를 위해 후보를 양보하라고 하면 누가 양보하겠습니까? 뿌린 데로 거둔 것입니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당 같은 거대보수야당은 아니지만 진보신당과 같은 신생군소 진보정당은 "신앙심으로 뭉쳐진 희생과 헌신의 심성을 가진" 봉사단체란 말입니까?

아직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10.26 선거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만행'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은 5+4라는 민주대연합 논의에 참여했습니다(5+4의 4는 노동이 아예 배제되고 이해찬 전 총리가 대표로 있는 특정 정파조직이 참여하는 등 우리의 시민사회를 대표하지도 않고 공정성에도 문제가 많은 잘못된 형식의 논의였지만 이 문제는 지면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저 역시 '선진보대연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이라는 '진보적 민주대연합론'을 주장했습니다. 즉 우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과 같은 진보세력들이 연대해 진보대연합을 만든 뒤 이에 기초해 민주당과 민주대연합을 나섬으로써 민주당의 패권주의를 깨고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한편 민주당의 노선도 더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노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나서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을 만들어 개입해 들어갔지만 민주노동당이 진보대연합에 소극적이고 민주당과의 연합을 선호함으로써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5+4도 민주당의 패권적 태도에 의해 먼저 진보신당이 탈퇴했고 남은 4+4도 결국 결렬되고 만 뒤에 지역단위수준의 개별적인 후보단일화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오만한 MB정권의 심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진보를 추구하는 진보사회세력의 경우, MB심판을 위해 자신들과 너무도 다른 민주당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여러 공적이 있지만 노동을 비롯한 진보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도 문제가 많았던 정부였습니다. 우선 무비판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을 통해 김영삼, 노태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전두환, 박정희보다도 더 양극화를 시킨, 분배지표상 '가장 반서민적인 정권'이었습니다(다행히 부끄러운 그 기록은 이명박 정부가 깨주고 있습니다). 연 평균 노동자 구속자수가 김영삼 정권 126명, 김대중 정권 178명. 노무현 정부 208명, 이명박 정권 141명으로 가장 노동자를 많이 구속시킨 정권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소를 수입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탄압했지만 애당초 한미 FTA를 추진했고 이에 반대하는 농민을 진압과정에서 2명이나 구타해 죽인 것은 노무현 정부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도 문제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수경스님 등의 목숨을 건 3보1배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사업을 강행했고(저 역시 이 3보1배에 참여해 무릎병신이 됐습니다) 부안에 방패장을 설치한다고 인구 2만의 도시에 8천명의 전투경찰을 투입해 '노무현판 광주'를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부안사태를 보니 집시법에 문제가 있다는 노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집시법을 개악했습니다. 또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비정규직 확대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거기에 이라크전쟁 참전,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등 그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처럼 일정한 한나라당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 역시 시장만능의 반노동적이고 반서민적인 신자유주의적 정권으로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른다면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노 대통령 역시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의했다가 열린우리당이 반발하자 "사실 한나라당과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는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결국 민주당이 그간의 반서민적, 반노동자적 정책에 대해 사과를 하고 반서민적 신자유주의정책으로부터 탈피할 것을 약속하는 한편 "내 지지율이 가장 높으니 나를 지지하라"는 식의 지금까지의 패권적인 태도를 버리고 낮은 자세에서 진보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음으로써 진보신당과의 연대 나아가 4+4가 깨어진 것입니다. 나아가 후보수준의 단일화 노력과 관련해서도 노회찬 후보는 한명숙 측에서 후보단일화를 위한 접촉을 그동안 전혀 해오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네가 알아서 사퇴하라"는 오만한 태도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목할 것은 선거 후 서울시장 선거에 투표한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입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투표자중 15%가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찍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그 15%에게 "그러면 원래 좋아하는 후보가 누구냐"고 묻자 38%가 답하지 않았고 26.1%가 오세훈 후보, 24.3%가 노회찬 후보라고 답했습니다. 즉 이 답 그대로 계산하면 서울시장 후보 투표자의 3.9%와 3.6%가, 답을 하지 않은 사람을 같은 비율로 계산할 때 투표자의 6.3%, 5.9%가 각각 평소 오세훈 후보와 노회찬 후보를 지지하지만 MB심판 때문에 한명숙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노후보가 후보를 사퇴하지 않았지만 노 후보의 지지자중 다수(투표자의 3.6%-5.9%)는 이미 이명박 정부 심판을 위해 한명숙 지지로 옮겨 갔습니다. (아마도 이 같은 경향이 이미 선거운동 막판의 여론 조사에서 일어나 한명숙 후보 측이 노 후보에게 적극적인 후보단일화에 나서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노 후보를 찍은 지지자들의 경우 경기도의 심상정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설사 노 후보가 사퇴를 했더라도 한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기권을 했거나 노 후보에게 사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주목할 또 다른 현상은 구청장 수준에서 반MB후보들이 얻은 표를 다 더하면 한명숙 후보가 얻은 표보다 훨씬 많아 한 후보가 구청장수준에서 반MB후보들이 얻은 표만 다 얻었다면 노 후보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시장을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 후보의 패배가 노 후보 때문이 아니라 한 후보 측의 문제 때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민주당과 한 후보 측은 이번 선거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습니다. 한 후보는 최근 검찰의 수사와 관련해, '박해받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고 많은 동정표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 나서면서 '준비된 서울시장 후보'인 이계안 전의원과의 공개토론과 경선을 거부하고 여론조사방식의 밀실공천을 채택함으로써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온실의 화초'의 이미지를 갖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경선과정을 거부함으로써 오세훈 후보와의 공개토론에서 당내경선의 경험에 기초해 보다 잘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진보신당, 그리고 진보진영은 심상정 후보의 막판 후보사퇴와 노회찬 대표의 선거완주 등과 관련해 격렬한 내부논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쟁과 평가와는 별개로 단순히 노 후보가 획득한 표가 오세훈-한명숙 격차보다 크다는 이유로 서울시장 선거패배의 책임을 노 후보에게 돌리는 마녀사냥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승리가 자신들이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따라서 오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를 교훈삼아 2012년 대선과 총선과 관련해 연합정치에 대해 보다 겸허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민심의 역풍은 언제 다시 불지 모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