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는 3일 날이 밝은 뒤에야 완료됐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 사이의 격차는 1%도 안 된다. 서울의 총 유권자수가 821만, 유효투표수가 430만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빙이라는 표현도 두터워 보일 정도의 아슬아슬한 신승이다. 개표 시작부터 3일 새벽까지 지옥을 체험한 오세훈 시장은 재선을 기뻐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얻은 13만표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인 패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서울의 전체 민심을 비튼 소위 '강남 3구'의 몰표가 아니었다면 오 시장의 당선은 언감생심이었다. '한나라당=부자당', '오세훈=강남 3구 시장'이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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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한 후보가 패했으나 서울시장 선거에 펄떡이는 명백한 심판론도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일주일 전까지 공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는 오세훈 후보의 낙승을 예상했다. 크게는 2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정치권과 언론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런 추세는 선거 전날까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숨어있던 바닥 민심은 무섭게 이명박 정부를 강타했다.
상지대 고원 교수는 "민심의 바다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혜량하기가 너무 크고 깊고 복잡해서 섣부르게 예단하고 분석하는 게 벅차다는 걸 새삼 느꼈다"며 "서울이 구조적, 인구학적으로 보수화됐다는 모든 가설은 이로써 다 깨졌다. 제로베이스에서 재분석 돼야 한다"고 했다.
익명의 정치컨설턴트는 예상과 달리 초박빙으로 전개된데 대해 "일차적 원인은 정권 심판론"이라면서 "심판론이 구현되고 발현되는 통로가 달라졌다. 스마트폰과 트위터 등이 새롭게 만든 시간과 속도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의 말대로 서울의 투표율은 오전까지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타전되는 투표율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명지대 정상호 교수는 "2년 반동안 유권자들에게 누적됐던 불만이 최근 2~3일 간 심판론의 흐름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러다가 또 싹쓸이 당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40대도 크게 흔들렸다는 평가다. 서울의 잠정 투표율은 53.8%. 54.5%인 전국 평균 수준이다. 20~30대 젊은층과 함께 40대 표심도 '심판론'으로 쏠렸다는 방증이다. 고원 교수는 "젊은층에서 40대까지 MB식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반칙 정치가 유권자들에게 누적돼 있었으나 여론조사는 이를 제대로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작정하고 조장한 북풍도 역풍이 됐다. 익명의 정치컨설턴트는 "지난 10년간 평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체제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가 안보를 선거에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게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정상호 교수는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택적 담론이 작용했다. 지방선거를 넘어선 의제로까지 발전했다"면서 "안보 의제는 수도권 유권자들에겐 예민한 문제인데, 한나라당이 승리할 경우 강공으로 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드러났다고 본다"고 했다.
꼭꼭 숨어있던 서울의 민심은 25곳의 기초단체장 선거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서울에서 15곳의 승리를 점쳤고, 일부 관계자들은 20곳을 넘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강남 3구'와 중랑구를 뺀 21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깃발을 꽂았다. 4년 전 25:0의 전패를 열린우리당에 안겼던 것에 비춰보면 경악스러운 반전이다.
이처럼 서울에서 벌어진 '파란'은 이명박 정부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의 파열음도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야권에는 연대와 연합 질서가 혁혁한 성과를 낸 만큼 향후 질서 재편 과정에서 부정하기 힘든 명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연대를 거부, 독자노선을 고수한 진보신당과 노회찬 후보는 '진보 탈레반'의 멍에를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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