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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셋이라 든든? 기초수급만 못 받게 하지"

[한국의 워킹푸어] 죽을 때까지 노동의 굴레 못 벗는 빈곤 노인들

지난 6일 오전 11시. 대표적 '쪽방촌'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서 만난 김순애(80) 할머니는 아들과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두 평이 안 되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 차려진 밥상을 슬쩍 보았다. 맨밥에 김치, 나물이 전부였다.

한창 나이의 손주 재롱을 볼 나이. 그러나 김 할머니는 여전히 단촐한 집안의 가장이다. 김 할머니와 아들(48)이 구청에서 실시하는 근로사업에서 벌어오는 돈이 가구 소득의 전부다. 여기에 나라에서 기초생활급여 일부(약 18만 원)를 지원해줘 2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86만 원)를 겨우 맞춘다. 방세 25만 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삶이다.

"뭐… 동네 청소도 하고, 쓰레기 수거도 하고 그러지. 하루 2만 원씩, 한 달에 32만원 (받아). 아침밥 먹고 7시 50분에 동사무소 가서 일하고, 점심 먹고 가서 오후 3시까지 일하고…. 노령연금 나오고 그러면 40만 원 조금 넘나? 아들이랑 합쳐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벌지. 이제는 봉사하는 사람들 도움 없으면 밥도 못 먹지."

나이 마흔을 넘은 아들은 얼마 전 막노동판에서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나 장애 4급 판정을 받지 못해 여전히 근로능력자다. 어머니 김 씨와 함께 일하는 조건부로 기초생활급여 일부만 수령하는 이유다.

쪽방촌만 전전하다 장가를 못 가 아쉽지만, 예전에는 무거운 짐도 거뜬히 들던 아들이다. 김 할머니는 이제 아들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처지다. 일주일에 사흘은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비로 돈이 빠져나가니 고기는 고사하고 생선구이를 해먹기도 쉽지 않다. 올해는 동자동에 들어온지 10년 째다.

▲동자동 쪽방촌은 낮에도 어둡다. 쪽방이 다닥다닥 붙은 빌딩에 볕은 잘 들지 않는다. 희미한 전깃불이 계단을 위태롭게 밝히는 게 전부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일으켜세운 고난의 삶

김 할머니는 경기도 개성 출신이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대구로 피난했다. 전쟁 전 개성은 남한 땅이었다. 남편이 군인이었기에 김 할머니는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서울에 자리잡은 때는 남편이 특무상사(원사)로 전역한 직후인 1961년 봄, 5.16 군부쿠데타가 나기 직전이었다.

부부는 함께 공사장 일을 시작했다. 당시는 집이 부족해 건설 경기가 내려갈 일이 없던 때였다. 착실히 돈을 모아 면목동과 돈암동에 집도 장만했다. 그러나 크게 사기를 당해 부부는 길바닥에 나앉았다. 설상가상으로 75년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전쟁 영웅이었던 남편은 국가유공자 신청을 해두지 않았었다. "나보다 더 다친 사람도 많은데 신청을 왜 하나." 원망스러운 남편의 소신이었다.

"옷 공장서 나염 찍고, 이삿짐센터도 나가고 했지. 결국 아들이랑 공사판에 돌아왔고. 일산 가고 평촌 가고…. 제주도 빼고 다 갔어. 공사판 안 돌아다닌 데가 없어. 나중에 IMF 터지고 나니 빌딩 청소하는 일만 있더라고. 단양 볼링장, 원주 볼링장…. 거기서 유리 닦고, 계단 물청소하고."

힘들게 모은 돈도 떼이기 일쑤였다. '어려울수록 나누는 정' 따위는 없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사기가 횡행했다. 김 할머니는 옷 공장에서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87년, 아들은 공사판 동료에게 돈 1200만 원을 사기당했다. 이들 모자가 갈 곳은 쪽방촌밖에 없었다. 빈곤의 늪에 빠진 것이다. 한국의 찬란한 현대사에 가려진 오늘날 노인 세대 상당수의 모습이다.

늘어나는 노인 빈곤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이들 가구가 '미래의 희망'은 고사하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수준의 저소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절대 빈곤율은 35.9%(2008년)에 달한다. 10가구 중 4가구는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다는 얘기다. 이는 2006년 대비 2.7%포인트 늘어났다. 여성 및 아동가구주의 절대빈곤율 22.3%, 8.2%을 크게 앞지른다.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 연금 수령액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평균소득은 전체 가구 평균소득의 67%에 불과하다. 30개 조사국 중 29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수도권 직장인들이 아침마다 보는 풍경. 출근길 직장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노인이 한국에는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박현태(67, 가명) 할아버지의 사례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10일 출근길 오전 지하철 2호선 시청역. 박 할아버지는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을 헤집고 다니며 지하철 선반 위 신문들을 수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켠에는 이미 한 자루 가득 들어찬 신문이 쌓여 있었다. 박 할아버지는 서울 사는 직장인들에게는 낯익은 풍경인 '존재하되 인식하지 않는 이'의 대표격인 폐종이 수거자다.

"작년에는 kg당 50원까지 떨어졌는데, 이번달부터 160원으로 올랐으니 괜찮지. 이거 정도면 한 5000~6000원 할거야. 차비 버는 거지."

박 할아버지가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신문을 모으는 이유는 월소득만으로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아내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달 병원비만 100만 원이 넘는다. 종이라도 줍지 않으면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구리에 사는 박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관악구청으로 출근한다. 회사가 구청에서 수도 파이프 설치, 도로 차단벽 설치 등의 일을 떼오면 아무 일이고 닥치는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받는 일당은 9만 원. 그마저도 이날(10일)은 날씨가 좋지 않아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한 달에 절반을 채 일하지 못한다.

사라진 국가의 역할, 갈 길 잃은 부양의 의무

박 할아버지 부부는 그나마 아직 자력으로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미 굽어진 허리의 박 할아버지는 "아직 이런 건 거뜬하다"며 기자의 도움을 뿌리쳤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근로 능력마저 상실한 노인 가구에 있다. 이들 가구 중 일부는 나라의 지원마저 받지 못한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려면 돈을 버는 자식도 없어야 하기 때문. 수급 희망자가 노동 능력이 없고 재산도 없다 하더라도 일정 소득을 올리는 자식이 있다면 극소액의 노령연금만이 실질적인 국가의 지원액 전부다.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최명호(72, 가명) 할아버지가 그렇다.

최 할아버지는 평생을 탄광촌에서 일하다 진폐증을 얻었다. 정상적인 거동을 하지 못하니 일도 못한다.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오른쪽 겨드랑이에 커다란 혹이 생겼다. 덜컥 겁이 났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최 할아버지가 받는 돈은 노령연금 8만8000원이 전부다. 아들 삼형제가 있다는 이유다. 최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서운한 게 많다고 하소연했다.

"내가 얼마나 답답하면 아들 욕을 하겠어. 자식이라고 있어봐야 아무 도움도 안 돼. 연락도 없고. 방세가 17만 원인데, 여기 봉사하러 오는 양반들 도움 없으면 진작에 굶어죽었지. 그래도 그 양반들이 고맙지. 쌀도 갖다 주고, 라면도 갖다 주고, 고추장도 갖다 주고."

▲이 방은 최 할아버지 부부가 등을 뉘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취침실이자 주방, 식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가난은 대물림한다. 앞서 박 할아버지 부부 역시 딸 넷을 뒀으나 별다른 도움을 얻지 못한다. 그저 미혼인 셋째 딸이 동거하며 부모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정도가 전부다. "애들이 가난하니 병원비 달라고 손을 못 벌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로(早老)한 박 할아버지는 수줍게 웃으며 혀를 끌끌 찼다.

이들 노인의 사례는 극단적인 게 아니다. 노인 상당수가 빈곤에 노출돼 있다. 노인 복지 수준이나 일자리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상, 이들은 죽을 때까지 일해도 빈곤층을 벗어나기 어렵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국내 빈곤층의 구조적 특징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작년말 현재 전체 빈곤 가구 중 노인 가구 비중은 2006년 대비 7.5%포인트 늘어난 42.6%에 달한다. 60대 이상 총 가구주 가운데 고령빈곤가구 비중은 59.7%다.

노인 가구의 60%가 빈곤층이며, 이들의 수는 전체 빈곤 가구에서도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빈곤 문제 자체를 치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빈곤 가구를 "OECD 기준에 따라 전체 인구 중위소득(소득 수준으로 인구 순위를 매긴 후, 정확히 가운데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의 절반 미만인 가구"로 정의했다.

동자동 쪽방촌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곳일 뿐이다.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동자동 전체 1000여 가구 중 노인 가구가 400여 가구"라고 말했다.

대형 빌딩 숲 속 빈곤의 늪, 동자동 쪽방촌

동자동은 영등포2가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이다. 보증금 없이 매달 일정액의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몸을 뉘이는 공간이다. 동네 곳곳에 위치한 허름한 빌딩 안에 2평도 되지 않는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화장실, 세면대 모두가 공동 공간이다. 방은 건장한 성인 남성 한 명이 두 다리를 쭉 뻗기 힘들 정도로 좁은 게 보통이다.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역 건너편 벽산빌딩 옆 골목에 자리 잡았다. 바로 건너편에는 대형 조선업체 STX의 본사가 있다.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며 '세계'와 맞설 때, 바로 도로 하나를 사이로 한국에서도 몸 둘 곳을 잃은 1000여 가구는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쪽방에서 하루를 보낸다.

동자동 쪽방촌은 일제 강점기에 윤락가로 만들어진 게 시초다.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윤락의 메카였던 종로3가(종삼)와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윤락가였다. 지금도 제대로 된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생활하기에 극도로 불편하다.

24시간 내내 축축하고, 어둡다. TV 한 대, 소형 냉장고 하나, 가재도구를 놓을 작은 수납장 하나를 두면 몸을 뉘일 공간이 전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오를 곳도 없는 이의 얼굴이다.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은 떠나더라도 쪽방촌을 전전하기 마련"이라며 "쪽방촌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거주자 상당수는 종교단체 등의 봉사활동으로 연명한다. 이들 봉사단체가 정기적으로 먹을거리를 지원하고 의료봉사단체에서 무료 건강점검을 해준다. 이 지원마저 끊긴다면 최 할아버지처럼 국가와 가족에게서 버려진 이들은 살 길을 잃는다.
노인 무임승차제도도 재검토하겠다는데…

노인 빈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노령연금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대상을 넓히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 나라가 언제까지고 제 역할을 민간 봉사단체에 떠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당장은 요원해보인다. 적자재정이 갈수록 불어나 복지 관련 예산을 늘리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 추세대로면 올해 407조 원인 국가채무는 오는 2013년 493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재정 문제를 이유로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게 대표적 사례다. 노인 무임승차제는 늘어나는 지하철공사 손실을 이유로 지난 참여정부 때부터 각종 단체·기관을 중심으로 폐지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반면 당장 시급한 문제인 노령연금 등 현실화 계획은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 현재의 노령연금 급여액은 월평균 8만8000원 정도로 최저생계비인 50만 원의 5분의 1에 못미친다. 대표적 노인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노령연금,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합산할 경우 이들 총액은 약 9조6000억 원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사회개발대학원 원장)는 "선진국의 경우 대략 15% 정도를 차지하는 노인들에게 GDP의 5~14%가량의 연금을 지급한다"며 "한국의 노인들이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고령사회 국가가 됐으나, 사실상 한국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 관련 기사 :당신들은 '눈치인생'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다)

▲한국 노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다. 노인 복지 확충은 가능할까. ⓒ프레시안(최형락)

가난 대물림 이어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마련된 한국의 대표적 복지제도다. 지난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돼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올해 기준으로 수급 대상자가 최저생계비 이하를 벌 경우에 한해 나라에서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준다.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가 월 50만 원, 2인 가구는 86만 원이며 4인 가구일 경우 월 136만 원이다.

독거노인의 경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부양의무자(자식)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한다. 자식의 신체가 건강하거나, 현재 일정 소득을 벌 경우 홀로 지내는 노인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우산을 쓰지 못한다. 자식이 부양능력이 있더라도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나라에서 일정액의 부양비를 지원하도록 돼 있으나 사실상 명목뿐이다. 이유는 이렇다.

복지부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가구의 최저생계비와 피부양자 가구의 최저생계비 합산액의 130% 이상을 부양의무자 가구가 벌 경우, 피부양자 가구는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한다.

쪽방, 혹은 월세로 생활하는 독거노인 A씨와 대도시에서 8000만 원 전세로 4인 가구를 꾸린 A의 아들 B씨의 상황을 가정하자. 이 경우 A씨 가구와 B씨 가구의 최저생계비 합계액은 월 186만 원이다(50.4+136.3). 그리고 이들 가구 최저생계비 합계액의 130%는 약 243만 원이다.

따라서 월소득이 최저생계비 합계액인 243만 원을 초과할 경우, 복지부가 작성한 올해 부양능력 판정기준표에 따르면 B씨는 부양의무자다. 당연히 국가에서 부양비를 따로 지원하지 않는다. 부양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기준이 얼마나 현실성이 떨어지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씨의 월소득이 250만 원이라고 가정하자. 이 경우 B씨는 부모 A에게 최소 월 50만 원(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비를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도시에서 4인 가구를 거느리고 월 200만 원으로 생활하기란 매우 어렵다. 만일 아내의 부모도 자급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생활은 더욱 쪼들릴 것이다. B씨의 가구 소득이 월 177만 원 이상이어도 부양 능력 '미약자'로 판정돼, A씨 부양 의무액의 일정 부분(약 22만 원)을 B씨가 충당해야 한다.

당연히 저축이 어려워지고 사교육 등 자식에게 돌아가야 할 지원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가난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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