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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靑春 투표'를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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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靑春 투표'를 가로막는가?

[의제27 '시선'] '나쁜 정치인'의 생존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면…

89.2→81.9→80.7→70.8→63.0.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선거의 투표율(%) 변화 추이이다. 약 20년의 기간 동안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무려 25% 이상이 떨어졌다. 75.8→71.9→63.9→57.2→60.6→46.1 이 역시 민주화 이후 역대 국회의원 총선의 투표율 변화 추이이다. 여기에서도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2008년의 제18대 총선의 투표율은 아예 50% 이하로 내려갔다. 68.4→52.7→48.9→51.8. 1995년 1차 지방선거 이후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 역시 이제 50%에 턱걸이하고 있다.

투표율이 계속 떨어져 이 같은 매우 낮은 투표율로 당선될 경우 과연 선출된 공직자는 국민 대표로서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나? 일례로, 지난 2007년의 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선거 참여 유권자의 48.7%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의 25.2% 지지에 비하면 아주 압승이었다. 그러나 17대 대선의 투표율이 63.0%인 점을 감안할 때, 이명박 후보가 투표 불참자까지 포함한 전체 유권자에게서 얻는 지지율은 30.7%에 그칠 뿐이다. 다시 말해, 불참 유권자까지 포함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유권자 10명 중 겨우 3명의 지지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젊은층의 선거 불참과 그 원인

민주화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투표율이 계속 떨어졌던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가장 커다란 원인은 젊은층의 투표율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매 선거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20대, 30대의 투표율은 50대, 60대 투표율의 대략 절반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젊은층은 투표하지 않는 것일까?

가장 흔하게 들 수 있는 이유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즉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사익을 탐하는 질 나쁜 인간들로서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질 나쁜 인간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투표에 불참한다면 그 불참은 결과적으로 질 나쁜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방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투표 불참은 나쁜 정치인들의 생존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투표 불참자들에게는 그 불참의 이유가 분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수의 불참자들은 그저 귀찮고 무관심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서 굳이 투표 불참의 이유를 찾자면, 그것은 그들의 관심이 사적인 개인사에 집중되어 있고 공적인 문제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나하고 상관이 없는 정치에 관여해야 하는가? 그것은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일일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공적인 것으로부터 도피하여 사적인 생활에 침잠하는 극히 개인주의적인 태도가 선거 불참의 이유인 것이다.

투표 불참의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대학 이전까지는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취직 경쟁을 내몰리는 상황,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살벌한 현실에서 생존 이외의 문제를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그것은 투표 불참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8일 2010 승리 국민주권운동본부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투표 참여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부끄러운 시민, 민주주의의 퇴보

위에서 언급한 투표 불참의 원인들은 젊은층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원인들이다. 그러나 나이든 세대들에게는 투표가 거의 의무로 인식되고 따라서 습관화되어 있는 반면, 투표를 자유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젊은층에서는 위와 같은 여러 원인들로 투표에 불참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정치공동체의 한 시민으로서 그 공동체를 이끌 대표를 선출하는데 불참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과거 민주주의의 역사는 왕이나 귀족 등 사회의 특권층에 대해 평민의 정치 참여를 위해 부단히 싸워온 역사였다. 이를테면, 고대 민주주의의 귀감으로 여기는 아테네 민주주의는 여러 차례의 개혁을 거쳐 평민들의 지위가 향상된 결과이며, 그 결과로서 그들은 민회와 시민법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공적인 일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사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는 자는 이디오테스(ideotes: 영어 idiot의 어원), 즉 '얼간이' 또는 '바보'였다.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도 노동자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의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은 지난한 것이었다. 시민혁명 이후 교양과 재산을 가진 부르주아지의 특권층만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이를 넘어 모든 성인들에게 투표권을 확대시키기 위한 투쟁은 거의 200년 이상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결과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투표 참여의 당연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 증대는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 발전의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에 불참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무임승차의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투표일은 대개 공휴일로 정해진다. 투표 참여를 위한 공휴일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불참하고 이를 개인의 사적인 휴일로 사용하는 것은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6.2 지방선거, 젊은층이 투표에 앞장서야 한다

여러 문제들이 많지만 그래도 한국은 제3 세계의 수많은 나라 중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모범사례이다. 특히 민주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자랑스러운 성과이다. 새삼스러운 것이지만, 1987년의 6월항쟁 구호는 '대통령 직선제'였다. 쿠데타에 의한 대통령 찬탈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대통령을 뽑자는 것이 바로 당시의 국민적 요구였다. 그리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전두환 정권에 맞서 20일간을 거리에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년이 조금 지난 지금 민주주의 위기의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이후 젊은층들이 대거 투표에 불참하고 있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거창한 시위와 구호만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수호와 그 발전은 시민 하나하나가 투표에 참여하는 작은 일부터 실천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이 투표에 앞장서고 그럼으로써 우리 민주주의가 수호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 계기는 6.2 지방선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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