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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명은 황하(黃河) 문명?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여덟 번째 이야기
1969년에 사학과로 옮기고 그 이듬해부터 중국 사상사를 전공 분야로 잡았다. 그리고부터 몇 해 동안은 고대사에 공부를 집중해서 학부 졸업 논문도 석사 논문도 그 영역을 다뤘다. 그러나 고대사에 관심이 묶인 것은 아니었고, 사상사를 통시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점을 고대사에서 찾은 것이었다. 통시적 관점을 추구한 것은 역사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김기협 역사학자
2019.07.06 00:45:59
10년 전과 달라진 북한 관광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일곱번 째 이야기
6월 14일 06:00 버스로 연길 출발. 07:40 화룡(和龍)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국에서 출국 수속. 10:00 고성리(古城里) 구안(口岸)에서 입국 수속. 11:00~13:30 조선 삼장리 구안에서 삼지연까지 버스로 이동. 15:30 점심식사 후 삼지연 혁명성지를 참관하고 평양행 비행기 탑승. 17:00 평양 도착 후 만경대와 김일성광장을 구경하고 저녁
2019.06.29 00:15:22
산샤(三峽) 댐을 바라보는 굴원(屈原)의 시선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다섯 번째 이야기
내게 이번 여행의 중심 주제는 단연 장강(長江, 창장)이었다. 예전에는 양자강(揚子江, 양즈장)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장강 하류 지역에서만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선교사 등 서양인들이 하류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장강'을 '양자강'으로 근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인식해 온 사실이 두 나라 사
2019.06.15 12:31:07
안경이여, 잘 있거라!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세 번째 이야기
여행 다니며 구경을 잘 하려면 안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안경을 꺼내 봤다. 지난 2년 동안 안경을 전혀 쓰지 않고 살았다. 중학교 때 흑판 보기가 힘들어져 시력을 측정하니 양쪽 다 0.1이 나와 쓰기 시작한 안경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책 볼 때와 잠잘 때 외에는 거의 안경을 벗는 일 없이 수십 년을 살았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안경과
2019.06.01 13:17:34
43시간, 중국 대륙을 달리는 겁나는 기차여행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두 번째 이야기
5월 23일. 07:18분 연길을 떠나 11시에 창춘(長春)역에서 집결, 12:05분 출발 열차에 탑승. 25일. 07:18분 충칭(重慶)역 도착. 몇 군데 구경한 후 버스로 3백여 공리(公里, 킬로미터) 동쪽의 언스(恩施) 투자족-먀오족 자치주로 이동. 26일. 언스 일대 관광. 27일. 언스 일대 관광 후 완저우(萬州) 부두로 가서 19:00분 출항하는
2019.05.25 11:38:51
'문명의 위기' 앞에서 '적응주의'를 생각한다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한 번째 이야기
영국의 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근황을 적어 보내다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Retreat Diary'라고 했다. 쓰면서 생각하니 '퇴각일기'보다 '피정일기'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퇴각(退却)'에 '피정(避靜)'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상생활의 틀을 벗어나 마음을 다듬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피정
2019.05.18 09:34:00
제주살이 10년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 번째 이야기
1990년 여름 교수직을 떠난 뒤, 얼마 동안 프랑스에서 자료 조사를 하고 돌아온 후 제주도에 자리 잡았다. 몇 가지 이유가 어울려 작용했다. 첫째,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고 싶었다. 그 무렵 유럽에 많이 가서 지내보는 동안 한국의 도시 생활이 너무 자연과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케임브리지 같은 소도시는 말할 것 없고, 파리 같은 대도시의 환경도
2019.05.11 11:57:41
'반전유인(盤前有人)'의 바둑 자세
[김기협의 퇴각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이번 연길 체류 중 한 가지 일과가 자리 잡았다. 마작(麻雀)이다. 아내와 언니 세 분, 4자매가 별다른 사정 없으면 점심 후에 큰언니댁에 모여 저녁 전까지 판을 벌이는데, 나는 후보 선수다. 주전 선수가 다 있을 때는 4시경에 가서 휴식 원하는 분을 교체해 드린다. 한 분이 사정이 있으면 나도 선발 선수로 뛰는데, 내 일하는 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개장
2019.05.04 10:54:34
달만 쳐다보지 말고 손가락도 들여다보라!
[김기협의 퇴각 일기] 여덟 번째 이야기
1969년 내가 사학과로 전과할 때 서울 문리대 사학과가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분과되고 있었다. 그 해 신입생은 분과된 각 학과로 지원해 제1회 입학생이 되었는데, 2학년으로 전과한 나는 사학과의 마지막 회에 끼어들었다. 사학과 학생들은 기존 커리큘럼에 따라 학점을 이수하고 국-동-서 중 어느 분야라도 골라 졸업논문을 쓰게 되어 있었다. 분과
2019.04.27 10:32:48
40세에 교수직을 떠난 이유
[김기협의 퇴각 일기] 일곱 번째 이야기
내 여권에는 이름이 'Orun Kihyup Kim'으로 되어 있다. 1983년 첫 여권 발급을 신청할 때 정한 이름이다. 두 형이 197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 갔는데, 원래 이름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적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름을 만들었다. 그런데 'Ki Bong Kim'과 'Ki Mok Kim'이 같은 시기에 버클리에서 지내는 동안 이름 때문에 불편을
2019.04.20 11:3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