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누가 '세월호 시대의 바느질'을 말하는가?"
[창비 주간 논평] 세월호와 문학의 자리
4월 10일, 세교연구소 주관으로 '세월호 시대의 문학'이란 이름의 공개 심포지엄(발표 : 함성호, 함돈균, 심보선, 남상욱)이 열렸다. 심포지엄의 기획에 참여하고 사회까지 맡게 된 처지라 청중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120석 객석이 부족해 수십 석의 보조석을 마련해야 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심포지엄은 6시를 넘겨 끝났다. 마지막 종합 토론 시간에
정홍수 문학평론가
키드랏 타히믹 감독의 질문과 꿈
[창비주간논평] 꿈과 질문들, 그리고 다른 세계의 상상
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필리핀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키드랏 타히믹(Kidlat Tahimik, 1942~ ) 감독의 특별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독재자 마르코스,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아키노 상원의원, 1986년 ‘피플 파워’의 시민혁명 등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 뿐 오랫동안 별다른 관심을 가져본 적 없던 필리핀이 새삼 가까운 아시아의 이웃으로 다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창비주간논평] 우리사회가 강요하는 '투명인간'의 모습
H. G. 웰즈(Wells)가 투명인간의 꿈을 꾼 최초의 인물은 아닐 테다. 웰즈의 소설에서 투명인간은 결국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려는 꿈에는 분명 은밀한 해방의 계기가 있다. 기실 어릴 적 한번쯤 투명인간이 되는 공상에 잠겨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1
밀양 할매들의 행복
[창비주간논평] <밀양전>에도 국가는 없었다
"추억이지. 기억 나는 게 너무 많지. 쭈욱 우리가 사워온(싸워온) 거, 그거 이리 추억해보믄 아아. 여름에 저 땜(댐) 우에서 하루 저녁 잘 때는 세면 바닥에, 거게(그게) 팔월달 아이가, 세면 바닥에 누워 있으이까 밤중 넘어가이 밑이 뜨뜻하이, 군불 많이 여놓아(넣어놓아) 좋다 카고, 우리가. 그래 웃으민서 군불 많이 여조서(넣어줘서) 좋다 카민서, 그
일본과 한국 사법부가 고백해야 할 '슬픔과 수치'
[창비주간논평] 용서의 시작
얼마 전 인터넷으로 뉴스를 훑다가 '이 분노에 답한 독일의 기립박수'(중앙일보 2014.1.29)라는 기사에 눈길이 멎었다. 기사를 읽고는 링크된 방송 동영상까지 보게 되었고, 몇 안되는 숫자지만 트위터 친구들에게 리트윗도 했다.보도에 따르면 '홀로코스트의 날'을 맞아 독일 연방하원에서 '레닌그라드 봉쇄' 생존자인 러시아 작가 다닐 그라닌(Daniil Al
넬슨 만델라의 걸음
[창비주간논평]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1918~2013)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 1994; 한국어판 아태평화출판사 1995/개정판 두레 2006)은 제목 그대로 '자유'를 향한 멀고도 험한 인간 여정의 기록이다. 1993년 6월 3
장 키플스타인 그리고 게리 워커 존슨
[창비주간논평] 자기의 이름으로 살 수 없었던 사람들
지난 연말에 영화 한편을 봤다. 프랑스 루이 말(Louis Malle, 1932~95) 감독이 1987년에 발표한 〈굿바이 칠드런〉이란 영화였다. 제목에서 비치는 대로, 소년들이 나누는 슬픈 우정의 전말이 차가운 겨울 풍경 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원제 '오흐부아 레장
인간 열망의 한없는 연대기
[창비주간논평]
역사의 진보란 무엇일까. 최근 김연수가 펴낸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문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동만주 간도에서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혁명을 꿈꾸며 싸우다 죽어간 젊은이들의 이야기. 그들은 살아서 천국을 보고자 했으나 그
어떤 작가 연보의 감동
[창비주간논평] <몰개월의 새>가 숨기고 있던 시간
월남으로 가는 남지나해의 뱃전에서 바닷속으로 던져버린 조잡한 오뚜기 인형 한쌍. 출국명령을 받고 떠나는 군용트럭 위로 포항 몰개월의 '똥까이' 미자가 던져준 유치한 이별의 선물을 받아들이기엔 소설화자 '나'는 아직 젊었고 인생의 시련을 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