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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이 '강간의 왕국'을 낳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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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이 '강간의 왕국'을 낳았다고?"

[홍성태의 '세상 읽기'] 좋은 교육은 어떤 교육일까?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 봉은사의 주지인 명진 스님이 안상수 대표가 조계사에 압력을 가해 봉은사를 조계사의 직영 사찰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안 대표와 조계사는 모두 펄쩍 뛰며 부인했다. 그러나 안 대표와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만난 자리에서 끝까지 배석했으며, 명진 스님에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전한 김영국 씨의 증언에 의해 의혹은 계속 커지고 있다.

김영국 씨의 증언에는 안상수 대표가 명진 스님을 가리켜서 '좌파', '운동권'이라고 불러서 듣기 거북했다는 대목이 있다. 안 대표가 조계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너무나 중대한 것이지만 나는 그가 명진 스님을 '좌파'라고 불렀다는 것에도 크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놀라운 의혹이 불거지기 며칠 전에도 안상수 대표는 큰 논란을 빚었는데, 그것도 다름 아니라 '좌파'라는 말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겨레>에서는 '메카시즘보다 독한 안상시즘'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정말 집요하게 '좌파'라는 말을 애용하고 있는 것 같다. 대체 그는 왜 이렇게 '좌파'라는 말을 애용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어떤 화용론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은근히 궁금증이 일었다.

김영국 씨의 증언에 따르면, 안상수 대표는 2009년 11월 13일에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서 명진 스님을 '좌파'라고 부르며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만 4개월이 지난 2010년 3월 16일, 안상수 대표는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교육국민연합' 창립 대회의 축사에서 '좌파 정권'의 교육으로 '아동 성폭력 범죄'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어 큰 물의를 빚었다. 이 보도에 대해 안 대표는 3월 17일에 반론을 발표해서 '왜곡 편집 보도'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 반론의 주요 내용이다.

"안상수 대표는 좌파 교육 정상화의 필요성과 법치주의 확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고, 특히 발언의 상당부분을 법치주의 확립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극악무도한 흉악 범죄,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직 이 땅에 정착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발언의 취지를 무시하고, 마치 좌파 교육 때문에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고 발언한 것처럼 왜곡 편집 보도했습니다." (안상수 의원실)

과연 법치주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좌파 정권'의 '잘못된 편향 교육'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 반론에 대해 안상수 대표의 발언을 가장 먼저 보도했던 <오마이뉴스>는 같은 날 그 발언의 전문과 발언하는 모습을 전부 기록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3월 19일에 기사를 썼던 기자가 다시 반박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 인용된 안상수 대표의 문제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지난 10년간의 좌파 정권 동안에 정말 교육이 엄청나게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잘못된 편향된 교육을 이제 정상화된 교육으로 바꿔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교육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박수) "법을 지키는 정신이 몸속에 체득돼 있어야 합니다.

지금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떼법이 난무하고 폭력이 난무하고 시위도 불법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선진 국가가 될 수 있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런 잘못된 교육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많은 세력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흉악 범죄들,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치주의가 아직 이 땅에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언 책임지지 않고 좌파 탓하는 안상수 원내대표', <오마이뉴스> 2010년 3월 19일)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국의 보수 세력이 정말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청맹과니로 만드는 '색깔론'의 사슬을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연합뉴스
이 인용문에서 잘 드러나듯이, 안상수 대표는 확실히 '10년간의 좌파 정권→엄청나게 편향된 잘못된 교육→아동 성폭력 범죄'라는 괴이한 논리를 구사했다. 여기서 찬찬히 따져봐야 할 문제가 아주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여항의 '우뻘'이 인터넷에 뱉은 '악플'이라면 그냥 무심히 넘길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당의 원내대표가 공식석상에서 한 말이니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지면의 문제로 몇 가지만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좌파 정권'이 '아동 성폭력 범죄'를 낳았다는 논리에 대해 살펴보자. 이에 대해서 좌파가 집권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서구는 아주 난리겠다는 식의 즉각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다. 잠시 몇 나라의 '강간'에 대한 간략한 통계를 보자. (한국은 다음의 기사를 참고했다. '35분에 1건씩 강간 발생…한국은 '강간 왕국'인가, <노컷뉴스> 2010년 3월 17일.)

미국 : 2008년 8만9000건. 시간당 10.16건.
스웨덴 : 2008년 5446건. 시간당 0.62건.
한국 : 2008년 1만5094건. 시간당 1.72건.


세 나라는 몇 해 전의 통계로 강간 순위 1, 2, 3위를 차지했던 적이 있다. 전체 건수는 물론이고 시간당으로 따져서 미국이 압도적인 1위이다. 미국은 '좌파'가 지배해서 이렇게 무서운 국가가 되었는가? 한국은 신고율이 극히 낮기 때문에 실제로는 압도적인 1위일 것이라고 한다.

정말 '좌파'가 지배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좌파'의 지배는 기껏해야 최근의 10년일 뿐이지 않는가? 그리고 한국의 추이를 보면, 2006년 1만3573건, 2007년 1만3634건에서 2008년 1만5094건으로 급증했다. '우파'가 정권을 쥐게 되고 이렇게 강간이 급증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러나 여기서 더 큰 문제는 결과에 관한 통계적 논의보다 '10년간의 좌파 정권'이라는 주체에 관한 규정일 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과연 좌파였는가?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을 선출한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노무현 대통령을 선출한 1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 사람들도 모두 '좌파'인가? 아니면 '좌파'에 속아서 '좌파'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불쌍한 바보들인가?

대체 '좌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보면, '좌파'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며,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벌이는 아주 나쁜 세력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런 세력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렇게 한 사람들도 모두 체포해서 처벌해야 하지 않는가? 국가보안법과 형법은 장식으로 있는 것인가?

지난 10년간의 정권을 '좌파'라고 규정하는 주장에는 별 근거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아동 성폭력 범죄'를 유발했다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 주장은 그야말로 적나라한 '색깔론'일 뿐이다. 이 주장은 '좌파'를 아주 나쁜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해서 지난 정권들을 아주 나쁜 존재로 낙인찍는 화용론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미 숭례문 화재, 이천 화재, 태안 기름 유출 등을 모두 노무현 정권의 탓으로 돌려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2008년 2월 11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의 발언). 노무현이 죽자 '노무현 탓'을 '좌파 탓'으로 바꾼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책임이 없어질까? 오히려 '색깔론'의 문제를 더욱 더 깊이 깨닫게 하는 교육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문제의 발언이 교육단체의 발족식에서 행해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연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일까? 현재의 문제를 무조건 이전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좋은 교육일까? 이전 정권을 무조건 '좌파'라고 주장하는 것이 좋은 교육일까? '좌파'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일까? 이런 교육으로 과연 세계인과 호흡하며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정말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청맹과니로 만드는 '색깔론'의 사슬을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좌파'라는 낙인을 찍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단순한 말로 가르쳤듯이, 좋은 교육은 자신의 문제를 깨우치고 바로잡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나라당과 같은 거대 정당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보수' 세력이, 반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좌파' 낙인찍기를 여전히 애호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문제는 좌와 우가 아니라 독재와 민주이다. 독재와 민주는 병립할 수 없는 것이지만 좌와 우는 상존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에 '진정한 선진화'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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