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2, 3학년인 이들은 대학에 다니는 아마추어 축구 선수지만 범죄 행각은 프로급이다. 저녁 시간 40대 여주인 혼자 지키는 미용실과 옷가게를 물색해 흉기와 테이프를 들고 침입해 여주인을 성폭행한다. 여주인을 성폭행 후 뺏은 신용카드로 현금 인출기에서 많게는 1100만 원까지 인출해 생활비, 유흥비로 탕진했다. 신고를 늦추려고 손발을 묶고 입에 테이프를 붙여 빠져나오면서 "너를 다 알고 있다. 신고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은 이 같은 강도 강간 뿐만 아니라 3건의 절도, 3건의 빈집털이를 추가로 자백해 경찰이 이들을 상대로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명은 작년 자신이 졸업한 모 고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 침입해 후배 9명의 지갑을 털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겁을 한 소속 대학교는 총장 주재 본부회의에서 축구부 해체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는 '부녀자 강간'인 탓에 크게 기사화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나 역시 이 사건이 '돌연변이'들에 의한, 다시 보기 힘든 사건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선수 생활도 했고 지금도 체육계에 내 몸의 절반쯤은 담그고 있는 내 생각에 이 사건은 외딴 섬의 돌발적인 사건은 아닐 것이다.
이 사건은 현실이다
먼저 우리나라 운동선수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하고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착하고 성실할 뿐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의 학생 선수들은 잘못된 운동 환경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대학 시절 이 학교 저 학교, 이 종목 저 종목에서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나는 그들로부터 "저 X, 따먹을래?" 하는 진지한(?) 제안을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았으므로 집단 '거시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있던 자리에서 그런 불상사가 성사된 적은 없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실제 그런 일을 행동에 옮긴 학생 선수들을 알고 있다. '그 일'은 일단 두들겨 패고 시작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는 사람 중엔 피해 여성도 있다는 점이다. 친한 친구였다. 워낙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됐기에 나는 그 친구를 위로할 기회도 없었다. 어쩌면 입 다물고 있는 게 그가 바라는 바였을 수도 있겠다.
나만의 경험을 가지고 일반화 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1990년 초 끔찍한 일이 있었다. 중부 지역 어느 고등학교 운동부가 방과 후 교정에서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양호교사를 집단으로 성폭행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 역시 워낙 듣기 불편한 뉴스였기에 크게 기사화 되지는 않았다. 그 운동부는 해체됐다.
▲ 2008년 2월 방송된 한국 스포츠에 만연된 성폭행 현실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 ⓒ프레시안 |
이처럼 특히 지도자에 의한 여자 선수 성폭행은 비일비재하다. 초등학생을 임신시키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데리고 있는 학생 선수들을 모조리 성추행한 경우도 있다. 그러고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밥 처먹으며 그랬단다.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
다시 이번 사건을 말해 보자. 스물 하나, 스물 둘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이미 강도, 강간, 절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범죄 기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범죄 기계'가 되었나. '운동 기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 외에는 세상에 대한 상식도, 타인에 대한 배려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엔 인간으로서 요구되는 바람직한, 적절한 판단을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역시 이 두 대학생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이 두 선수를 '죽일 놈' 만들어 체육계의 더러운 실상을 덮고 넘어갈 것인가. 그 학교 축구부 해체하고 이 둘만 매장시키면 되는 일인가.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자 한다. 한국 스포츠가 어떻게 썩었고 얼마나 비이성적, 아니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짐승들의 세상인지 말해 보겠다. 다 쓰려면 전화번호부 책보다 더 두꺼워질 테니 기억나는 것 몇 가지만 쓰겠다.
폭력으로 길들여지는 아이들
2003년 전북체고 레슬링부 김종두는 전국체전 출전을 앞두고 구타와 무리한 감량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해 훈련에서 이탈했다. 그러자 전북체고와 전북체육회는 퇴학을 들먹이며 부모를 협박했고 또 대회 참가를 역시 레슬링을 하던 종두 동생의 체고 입학 문제와 연계시키는 비열한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훈련에 복귀한 종두는 자전거에 허리와 팔이 묶인 채로 달리기를 하다 쓰러졌다. 쓰러진 뒤에도 숙소까지 100미터 가량을 기어갔는데 평소 종두를 개 패듯 패던 코치는 이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결국 열흘 동안 자신의 체중의 18퍼센트를 감량케 하는 살인 감량과 인간을 자전거에 묶고 끌고 다니는 가혹 행위 끝에 열일곱살 종두는 그 어린 생을 마쳐야 했다.
국가 대표는 또 어떻게 패는지 한 번 감상하시라. 그 유명한 쇼트트랙 여자 선수들이다. 2004년 대부분 10대 후반에 불과한 선수들을 코치가 손바닥, 주먹 뿐 아니라 스케이트 날집, 로그게이지, 축구화, 하키 스틱 등 사실상의 흉기까지 사용해 구타했다. 때리는 방법도 엽기적이다. 쓰러진 선수 계속 때리고, 눈을 피해 숲 속이나 천막으로 끌고 가 때리고, 머리채 잡고 흔들며 때리고, TV 볼륨 올려놓고 때리고, 피자에 밥까지 먹여놓곤 바로 체중이 늘었다고 때렸다. 선수들이 그랬다. "죽고 싶다."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운동한 날이 없다." "여자로 태어나 머리가 긴 게 원망스러웠다." "남자도 이렇게 맞을 수 없을 겁니다."
이러한 폭력은 프로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2002년 기아타이거스의 김모 감독은 야구 방망이로 선수의 머리를 쳐 헬멧을 썼음에도 선수가 실신하고 여섯 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2005년 LG 프로배구단의 신모 감독과 대한한공프로배구단의 문모 감독은 선수들에게 일명 머리박기를 시키고 구타를 했다.
작년 국가대표 배구팀 이상렬 코치는 박철우 선수를 "눈빛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팼다. 거구의 젊은 선수가 뇌진탕 판정을 받고 얼굴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팼다. 더 무서운 건 감독 김호철이었다. 그는 박철우의 하소연도 무시해 버리고는 오히려 선수들에게 "너희들도 조심해라"며 위협하기까지 했다.
국가대표, 프로, 체고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다른 곳은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운동 선수 인권 상황 실태 조사' 결과를 내놨다. 충격적이었다. 중·고교 학생 선수 78.8퍼센트가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경험했고 63.8퍼센트는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것이다.
뺨을 때려요…. 별 이유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있거든요. 피하다가 고막이 나가서 수술했거든요. 그러면 안 때려야 되잖아요. 삼일 지났다가 또 때려요. 비 온 뒤에 땅에 미끄러졌거든요. 그러면 왜 미끄러지냐고 때리고. 지가 때리는 것은 상관 안 하고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때린다는 거예요. 우리가 몇 대 더 맞는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여중 3년생)
경고를 하시다가 이제는 때리시고. 그렇게 운동을 하잖아요. 잠이 들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나서 무서워요. 또 다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그런…. (남고 3년생)
아무리 선수라도 모르는 게 있잖아요. 이 상황에서 모르면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게 당연한데, 선생님이 알아서 하라고 막 때렸어요. (여중 3년생)
네, 엄청 맞아봤죠. 초등학교 때는 진짜 50대 이상까지 맞아봤어요, 한 번에. 이제 기록이 안 나오면요, 어떤 선생님은 때리는 걸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이 있고요. (여고 1년생)
버림받은, 불쌍한 운동 기계들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화(Socialization)' 과정이다. 인간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양식과 규범 등 문화를 학습하면서 그 사회에 동화하는 과정을 뜻하는데 이 사회화는 보통 유아기 때 가정에서 시작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은 운동을 시작한 어린 나이부터 사회화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운동 기계로만 살아간다. 운동에서 은퇴한 다음에야 비로소 '사회화'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은퇴 후의 사회화 과정마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전 프로야구 이호성 선수처럼 부녀자 일가족 네 명을 살인하는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생각해보자. 이호성 선수는 광주일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이른바 "한국 사회 최고의 명문" 학교만 골라서 다녔다. 또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남들 보기에는 멀쩡한 사회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그런 끔찍한 살인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폭행사건에서 드러났듯 많은 감독, 코치들은 학생 선수들이 컴퓨터도 못하게 하고, 도서실에서 책도 못 빌리게 하고 출입까지 통제시킨다. 심지어는 강제로 싸이월드에서 탈퇴하게 하고 서로 말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감독들은 선수들이 수업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운동부 아닌 친구들 사귀는 것도 싫어한다. 왜? 세상을 알게 될까봐. 자기 말 안 듣고 담임선생 말 들을까봐. 자기가 부리기 힘들어질까봐. 그래서 그들은 그 어린 선수들을 가둬 놓고 사육하듯 훈련시키기 원한다.
교육을 받고 책임과 의무와 사회의식을 갖춰야 할 중요한 시기에 학생 선수들은 운동만 하다가 갑자기 사회로 튕겨져 나온다. 축구만 해도 고교 3년생이 1500명에 이르는데 이 중 프로, 실업, 대학으로 가서 축구를 계속하는 숫자는 4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축구에서만 매년 1000명이 넘는 선수들이 강제로 축구에서 은퇴해 사회로 떠밀려 나온다. 상당수는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 운동한 것을 후회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이들에게 우리는 정상적인 성장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는 신문기사 내용인데 마음이 찡하다.
고교 졸업 사진 찍을 때 '쟤 누구야'라는 소릴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 사회는 인맥이 재산인데 다양한 친구를 못 사귀어 놓은 것이 참 안타깝다.
합숙할 때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아이들을 창문 너머로 보면서 많이 울었다. 수학여행 버스가 운동장을 떠날 때는 코끝이 찡했다.
약속 장소를 정해 놓고 영어 간판을 못 읽어 헤맨 적도 있다.
고교 때 심하게 다쳐서 독일에서 재활을 한 적이 있다. 그곳 아이들은 수업을 다 듣고 와서 운동을 했다. 운동 후에도 각자 취미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자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선 절대 축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 없는 메달은 반칙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던 학교체육법이 부결됐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합숙 훈련을 금하고, 훈련도 방과 후와 주말에만 하게하며, 일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게 요지다.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를 모두 거쳤고 수차에 걸친 공청회까지 했는데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반대를 주도해 결국 부결됐다. 지역구가 송파구여서 그런가. 송파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은 이미 공개적으로 학교체육법에 반대 의사를 표한 바 있다. '한국 체육의 적들'이다.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한다. 금메달에 흥분하고 체육강국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세계에서 우리처럼 스포츠에 감동하는 국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씁쓸하기만 하다.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과 최소한의 교육도 빼앗아 버리고 오직 운동만 시켜서 이기고 메달을 따는 것은 한마디로 반칙이다.
스테로이드 먹고 메달 따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승부 조작, 심판 매수만큼 나쁜 것이다. 운동만 시켜서 메달 못 딸 사람이나 국가는 없다. 때리고 운동만 시켜서 메달 따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외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운동 시키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협회와 감독을 위해 체육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무식한 일이 가능하다.
출장길 기차 안이지만 글을 마치며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에서 권상우가 외쳤던 말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다 X까라 그래."
이 글이 발행된 후,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이 "공개적으로 학교체육법에 반대 의사를 표한 바 있다"는 나의 주장을 놓고 근거를 대라는 독자가 몇몇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박용성', '학교체육법'으로 검색을 해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확인 요청을 한 독자를 위해서 몇 자 추가한다. 박용성 회장은 지난 2009년 8월 7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에서 학교체육법을 공개리에 반대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학교체육법안을 발의했다"며 "세계 스포츠계가 엘리트 체육에 열을 올리는데 이러한 법안을 발의하는 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학교체육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용성 회장은 더 나아가 "이 법안대로 되면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나라를 빛내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며 "운동을 할지, 공부를 할지는 학생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공부 못하게 하는 것은 비교육적·반인권적이고, 운동 못하게 하면 교육적·인권적이라는 건지 되묻고 싶다"고 학교체육법의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칼럼은 지금도 <중앙일보> 홈페이지를 가면 누구나 찾아 읽을 수 있다. (☞관련 기사 :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 나는 그 후로 박용성 회장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듣지 못했다. 만약 박 회장의 생각이 바뀌었다면, 본인이 공개리에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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