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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정치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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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정치의 회복'이다"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에 마취된 정신을 일깨울 때"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장안의 화제다. 첫 문장이 나오는 3쪽 '추천의 글'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의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비자금, 로비, 경영권 불법 승계 등…"으로 시작한다.

"물질과 평판에 대한 욕심이 가라앉자,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또렷하게 보였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끝없이 타락시키면서 '악의 축'으로 군림하는 재벌의 실체를 고발하는 것, 양심고백을 결심했다"는 게 저자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다. 마지막 쪽을 열어 보니 474페이지란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747'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웃음이 밴다.

▲ '개그콘서트' 속 '동혁이 형' ⓒ프레시안
'삼성'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사카린이 뭐지? '화학식 C7H5NO3S. 분자량 183.19, 녹는점 229도' 라는데 전공 아니면 알 수 없다. 인공 감미료라는 것 정도를 넘어 특별히 많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눈에 번쩍 띄는 낱말은 '밀수'다. 범죄란 말이다. 돈을 벌겠다고 일명 '돈'병철이라는 이건희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는 말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가? 죄 지은 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은 미개인들의 나라야 뭐야. "이거 아니잖아"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동혁이 형'의 말)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기업이 돈 벌어 국민이 잘 살게 되었다는 말은 돈 벌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이다. 삼성이 돈 벌었으면 국민인 내가 잘 살아야 그들의 말이 맞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 당연한 논리다.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판국에 자본의 연결고리인 기업 이익이 늘어난들 서민대중의 평등, 평화를 좀 먹는 신자유주의의 병폐만 더없이 난무할 따름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고위 당국자도 나서서 나를 회유하고 협박했다"고 했다. 참여정부 시절, 어느 사회 원로는 김 변호사에게 "삼성의 비리를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너만 바보 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노무현 정권의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처참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이 참여정부의 면죄부가 될 것이란 착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있기 직전, 삼성구조본 홍보팀장이었던 윤순봉은 김 변호사에게 "언론은 모두 장악되어 있다"라고 했다. 과연 장악되어 있는 것인지, 장악이 가능한 것인지, 장악한다고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재벌들이 고개 처박고 슬슬기던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지 못했기에, 미흡하나마 단죄되었던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삼성의 언론장악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소멸하게 될 지를 이명박 정부와 관련하여 살펴볼 때다.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은 자신의 '육체'라는 '황무지'로부터 끊임없이 '깨어나려는 영혼'의 투쟁이다. 탐욕의 미망을 버리고 저 '산꼭대기'에까지 이르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행로 속에서, 자신을 가이드해 줄 '진리'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나그네 길이 인생이다. 항상, 부지런하고 경건한 진실 탐구자에게만이, '발견'이라는 결과가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생노정에서 대대적인 상업 광고는 어둠이 내리 깔린, 저 아래에 남겨둔, 황무지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시지프스의 신화와 닮았다.

기업의 언론 장악은 광고라는 형태의 자본 분배로 시작한다. 광고는 인종차별과 서구 우월주의도 조장한다. 모델은 국내의 유명연예인이 아니면 백인이며, 광고의 배경도 대개는 유럽과 미국이다. 광고는 세계화의 지름길이다. 광고 찍으러 비행기타고 세계 어디든지 간다. 결국은 다 소비자 돈이다. 모델료와 제작비는 광고주가 지불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후불제로 내는 것이다. 이렇게 소비자를 담보로 한 자본여력이 있는 거대기업이 결국은 약육강식에 의해 작은 기업을 먹어치울 수밖에 없는 게 신자유주의 기업환경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 '상품물신주의' 라는 장에서 "노동의 산물", "생산자들의 관계", "사회적 관계" 등의 용어들이 나온다.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면 따라가기가 쉬워진다. 마르크스는 차, 컴퓨터, 소프트웨어, 구두, 가구, 책 등 세상의 모든 상품들이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 자신의 개별 '노동력'을 그것을 생산하는 데 투입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심지어 우리가 어떤 상품을 사기 위해 사용하는 화폐도 누군가의 노동에 의한 생산품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른 자본의 횡포만이 살벌하다.

광고는 소수 대기업의 막강한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핵심적 요소이다. 기업들은 단지 상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을 필요로 한다. 대기업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매체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다. 기업의 권위는 광고 물량에 비례해 높아진다. 엄청난 광고 물량은 기업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만들고 그런 사실은 기업에 대한 공신력을 높인다.

광고를 통해 획득된 높은 판매고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다"는 가정 속에서 다시 기업의 권위를 증명해주는 근거로 쓰인다. 기업의 광고 이미지가 법률심판의 본질을 가리는 대표적 경우가 삼성이다. 광고는 경영권 불법 승계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사법부 재판진행 관심도마저 떨어뜨린다. 최종심 결과가 한국 미래경제에 미칠 파장 등에 국민들은 관심을 덜 갖게 된다. 국민들은 인지부조화의 미궁 속을 헤매게 된다.

억만장자들은 원래 인간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가난한 사람의 이익 증진에 격렬히 반대한다. 노골적인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는 방송조차 광고주의 요구 때문에 자본의 이익을 증대하라는 부추김을 받게 된다. 삼성이라는 광고주는 각 매체에 다량의 광고를 한 후 삼성 이건희의 부정적인 내용을 포함한 기사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특정 매체에는 광고를 아애 주지 않음으로써 압박하기도 한다. 미디어의 절대 다수는 우리의 정치·경제적 선택을 왜곡해 전달함으로써 진실보도를 제한하는 일에 한몫을 한다. 부정한 자본의 미디어 통제는 바로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시민의 눈을 가려온 거대한 벽이다.

우리나라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여 권력이 시장의 우위에서 서민대중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우리 시민들은 자본권력의 횡포를 올바로 인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말은 2005년 5월 16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과의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발언에 담긴 의미는 다양하다. 헌법 제 1조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올바로 행사할 생각은 못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시장으로 권력을 넘겼다는 의미라면 이는 국민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더 심하다. 서민대중의 보다 안락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이 없다. 정치를 시장 세계화, 신자유주의 경제의 예속물로 만들어 버린 1등 공신이다.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심층 극대화시키는 장본인이다.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이라면 그 힘을 되찾아, 국민에게 도로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포기해버렸기에 마침내 국민은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정권은 유한하고 국민은 무한하다. 그 결과로 빚어지는 것은 결국 이명박 세력의 운명을 달리 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또한 국민의 착하고 여린 심성에 상처를 주는 무례함이요 우둔함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치인의 영원성은 국민 절대다수인 서민대중의 생활건강과 복지향상을 최우선한 정치에 있다. 경제주권의 헌납이라는 한미FTA의 예에서 보듯 세계화 신자유주의 '경제'에 끌려 다니는 예속의 '정치'가 아니라 적절한 보호무역의 병행으로 자국의 번영을 더 높이는 협상력의 '정치'가 회복 되어야 한다. 두루 국민이 잘 사는 평등 경제에 대한 정치의 배신을 국민이 배척함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가격의 다소를 차치하고 신자유주의가 미칠 부정적 파장을 예고하는 가치를 행간 가득히 담고 있는 멋진 책이다. 서민대중의 보다 편안한 삶을 위한 어더한 노력도 배제한 독단의 정치는 곧 몰락이다. 이러한 패망의 정치사를 거듭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무지는 재벌가나 권력자나 국민 모두에게 있어 전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시장과 국민의 힘 사이의 권력 향방에 대한 오판이 스스로의 화를 자초하는 참담한 결과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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